유럽4일차 실수가 만든 특별한 하루

by 이 범수

루브르 박물관으로의 험난한 여정

아내는 루브르 박물관을 좀 더 상세하게 보고 싶어 했다. 과거 두어 번 관람했을 때는 20개월 된 아이와 함께여서 작품 감상에 제대로 몰두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때를 떠올리며 아내는 "그때는 아이에게 신경쓰느라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었다“ 면서 이번에는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으로 그 루브르의 작품들과 마주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거 몇 번이나 루브르를 관람했던 나는 모두 현장에서 표를 구입했었는데, 지금은 예약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었다.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프랑스의 관광 산업이 그동안 엄청나게 성장했구나. 국가 경제에 상당한 보탬이 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어쩌면 오랜 직장 생활이 만들어 낸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은퇴한 지금, 이런 관점이 오히려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루브르 박물관 공식 사이트를 방문했지만 예약이 쉽지 않았다. 웹사이트는 복잡했고 모두가 프랑스 어였다. 결국 다른 상업용 예약 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진행했다. 돈이 결제되고 확인 메일도 왔는데, 정작 티켓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든 안내문이 프랑스어로 되어있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분명 번역 기능이 있을 텐데 일부만 한국어로 번역되고 나머지는 여전히 프랑스어였다. 젊었을 때는 이런 상황이면 포기하거나 화를 냈을 텐데, 지금은 '이것도 여행의 일부구나' 하며 웃으려고 노력하지만 자꾸만 긴장이된다.

호텔 직원의 따뜻한 도움

노트북을 들고 호텔 카운터로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젊은 직원이 지금 티켓을 발행 중이니 두 시간 정도 지나면 메일이 올 것이라고 했다. 두 시간 후에 티켓이 메일로 온다는 말이 이해는 잘 안 갔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그의 친절한 미소와 차분한 설명에서 진정한 서비스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물랭루즈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와 바로 노트북을 열고 메일을 확인했지만, 루브르 티켓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

밤새 고민이 되어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아내는 "괜찮아요, 다른 곳을 가도 되잖아요"라고 위로해 주었지만,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보낼 수는 없었다. 새벽이 되어 다시 노트북을 들고 카운터로 내려갔다. 야간 근무를 하는 다른 직원이 있었는데, 그가 나의 티켓을 찾아주었고 프린트까지 해주었다.

이 직원은 IT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아르바이트로 야간에 호텔 카운터에서 일한다고 했다. "한국의 기술과 문화에 정말 관심이 많아요. 특히 한국의 IT 발전상을 직접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을 관광차 방문하고 싶다길래 한국에 오면 반드시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건네주었다.

프린트된 티켓을 들고 방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어려움을 해결해 준 그 젊은 직원의 친절함이 고마웠고, 한국에 관심을 보여준 것도 반가웠다. 무엇보다 이런 따뜻한 만남이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세계 어디를 가도 사람의 마음은 통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보너스

방으로 돌아와 티켓을 자세히 보니 1인당 22유로였다. 그런데 나는 어제 114.26유로를 결제했다. 혹시 내가 중복 예약을 했나 싶어 다시 카운터로 내려갔다. 직원이 또 다른 티켓을 찾아주었는데, 유람선 티켓 두 장이었다.

어? 어제 유람선을 탔는데 또 타야 하나? 알고 보니 내가 예약한 것은 루브르 박물관과 유람선을 묶은 패키지 티켓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웃으면서 아내에게 오늘 또 유람선을 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아내는 "유람선 관광을 어제 했는데 또 무슨 유람선이야?"라고 했다. 사실을 설명해 주니 아내도 크게 웃었다. "당신의 실수가 가끔은 이런 선물을 가져다주네"라며

그래서 오늘 에펠탑 버스킹을 마치고 야간 유람선을 타자고 했다. 지금까지 유람선은 낮에만 타봤지 야간 유람선을 타본 적은 없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실수로 야간 유람선 관광까지 하게 되었고, 아내는 너무 좋아했다. 작은 실수가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준 셈이었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오히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루브르에서 만난 인파의 바다

우여곡절 끝에 손에 쥔 루브르 입장권을 가지고 버스를 타고 루브르로 향했다. 항상 지하철로만 이동하다가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다양한 시내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파리 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 아침 햇살을 받은 건물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일찍 도착하여 입장 차례를 기다리며 루브르 주변 관광을 했다.

드디어 입장하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었다. 명절 귀성객들로 북적이는 기차역에 버금갈 정도였다. 우리가 교과서 등을 통해 알고 있던 작품들에게는 접근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모나리자 앞에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모나리자 애호가들로, 나는 사람 구경만 해야 할 정도였다.

과거에는 모나리자 바로 앞에서 섬세하게 감상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5~6미터 멀리서 모나리자가 저기에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내는 실망하기보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네요. 모나리자를 보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다른 관람객들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작품 앞에서 같은 감동을 나누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내가 관심 있는 작품들 중심으로 관람하며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특히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이 그림에서는 희망이 느껴져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도 그림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파리 거리의 소소한 문화 체험

간단한 점심 식사를 위해 노상 카페 제일 앞줄에 앉았다. 파리의 대표적인 문화를 즐겨보고 싶어서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점심 식사를 하는데, 파리지앵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부러웠다. 급하게 걷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걷고, 친구들이 웃으며 대화하고, 어르신들이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소낙비가 내렸다. 우리는 테이블과 의자를 최대한 안쪽으로 이동하여 비를 피했다.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무도 당황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파리의 소낙비도 운치가 있네요"라며 서로 웃고 있었다. 우리도 그 여유로운 분위기에 동화되어 비 오는 파리 거리를 감상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는데 주문 목록에 물이 빠져있었다. 나는 그것을 종업원에게 알려주니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물은 공짜로 서비스한다는 것이었다. 어? 물을 공짜로 준다고? 프랑스에서.......식당에서 물이 공짜인 한국의 문화와 물까지 비용을 청구하는 프랑스 문화의 차이 때문에, 잘못된 오해로 한국의 요식업 경영자들은 비싼 술만 마실련지 물어보고 물은 절대 묻지않는다고, 비싼 술만 팔기를 유도하는 한국의 요식업 종사자들이 나쁘다고 비난을 했던 프랑스 동료와 도쿄에서 간단하게 언쟁했던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때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으로만 판단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각 나라마다 다른 역사와 전통이 있고, 그에 따른 문화가 형성된 것인데 섣불리 판단하고 나에게 한국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길래 한국의 모든 식당은 물은 공짜라고 이야기 해주었때 당황해 했던 그 친구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 친구는 지금은 무었을 하고 있을까?

개선문에서 바라본 파리의 전경

다음 여행지는 개선문이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350여 개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갔다. 중간중간 쉬어가며 올라가는데, 함께 올라가는 다른 관광객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어떤 할머니는 "나이 들어서 이런 계단을 오르다니, 정말 용기가 필요해요"라며 웃었고, 젊은 부부는 "이것도 추억이 될 거예요"라며 서로를 격려했다.

개선문 위에서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을 보면서 놀랍다는 생각만 들었다. 샹젤리제 거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파리가 왜 '빛의 도시'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건물들이 모두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 같았다.

옛날 젊었을 때 관광했을 때는 규모의 놀라움, 아름다운 조각들이 나를 놀라게 했는데, 이제는 좀 다른 면에서 자꾸 감탄하게 된다. 우리가 보는 개선문의 외부와는 달리 개선문 내부에는 관광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1806년 건립 당시에 이러한 완벽한 관광 상품으로의 발전을 생각하고 설계했을까?

개선문 내부의 공간을 이렇게 설계하지 않았다면 연간 175만 명이나 찾아와서 지불하는 비용은 없을 것이다. 200여 년 전에 설계한 설계자의 혜안 때문에 엄청난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수익을 올린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 신기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장기적 비전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런 장기적 관점에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펠탑 트로카데로 광장에서의 버스킹

개선문을 떠나 에펠탑을 구경하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이번 여행 중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에펠탑 버스킹을 위해 트로카데로 광장을 향했다. 아내는 이번 버스킹을 좀 더 멋지게 한국적인 분위기에서 할 수 있도록 개량 한복을 준비 해 주었다.

해가 지고 에펠탑 조명이 들어온 후에 버스킹을 하는 것이 가장 멋진 장면이겠지만, 버스킹 후 야경 관광을 위한 유람선을 타야 하기에 그렇게는 할 수가 없었다. 일몰 시각에 맞추어 에펠탑 조명이 9시 50분에 들어오는데, 그러면 마지막 유람선이 10시 30분에 출발하니 탈 수가 없다. 조명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8시부터 시작했다.

나의 마음속에 중요하다고 깊이 생각해서인지, 지금까지 몽마르트, 퐁네프 다리에서와는 다르게 긴장이 많이 되었다. 손가락이 제대로 움지기지 않아 불협 화음이 나고. 긴장한 탓인가 호흡 관리가 원활하지 않았다. 첫 곡을 시작하려는데 평소보다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긴장을 풀기 위해 두 곡을 하고 나에 대한 소개와 대금이라는 악기에 대한 소개로 긴장을 풀고 나니 호흡 관리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이 범수라는 사람입니다. 대금이 좋아서 아내와 대금연주를하면서 여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 악기는 대금이라고 하는 한국의 전통 악기로 약 1500년전 신라시대에 개발된 악기로 재료는 대나무예요"라고 서툰 영어로 소개하니 긴장도 조금 풀어졌다.

에펠탑 관람의 성지인 트로카데로 광장답게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주었다. 동영상도 찍고 연주가 끝나면 박수도 쳐주고, 4번째 곡의 연주가 끝나자 초등학교 딸아이를 둔 프랑스인 아빠는 자기 딸아이와 같이 사진을 한 장 찍어줄 수 있겠냐고 했다. "제 딸이 동양 음악을 정말 좋아해요. 이런 경험을 기억에 남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하고 자연스러운 포즈로 사진 촬영에 협조했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정리를 하는데 지금까지 앞자리에서 열심히 박수를 쳐주던 20대로 보이는 레바논에서 왔다는 여성이 인스타를 하냐고 물었다. 나는 인스타는 하지않고 페이스북을 한다고 하고 페이스북 ID를 알려주었다.

대금을 시작하면서 언젠가는 한번 해보고 싶었던 에펠탑 트로카데로 광장에서의 버스킹을 부족하지만 순조롭게 마쳤다. 그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꼈다. 나이 들어서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해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새삼 깨달았다. 젊었을 때는 체면이나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하지 못했을 일들을 이제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은퇴 후 삶의 큰 축복인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선물, 세느강 야간 유람선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유람선 선착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실수로 만들어진 일정이지만 처음 경험하는 세느강 야간 유람선은 실수를 넘어 또 하나의 즐거운 추억거리였다.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파리의 불빛들, 세느강 위로 비치는 건물들의 야경은 낮에 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들이 조명을 받아 환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특히 에펠탑이 매시간 정각에 반짝이는 순간은 정말 마법 같았다. 유람선 안의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며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다.

아내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이런 실수라면 언제든 환영이야"라고 웃으며 말했다. 유람선이 달리자 강바람과 부딧혀 조금은 추웠지만 저멀리 펼쳐지는 파리의 야경을 바라보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옆자리에 앉은 노부부는 결혼 50주년을 맞아 파리에 온 것이라고 했다.

유람선이 퐁네프 다리를 지날 때는 어제 이곳에서 즉석 이곳에서 버스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지금은 강 위에서 다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같은 장소라도 보는 각도가 다르면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어려운 상황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강바람이 살짝 차가웠지만 상쾌했다. 아내와 나는 갑판에 나가 파리의 야경을 더 가까이에서 감상했다. 세느강 위를 지나가는 다른 유람선들의 불빛, 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도시의 야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돌이켜보니 하루 종일 작은 실수들과 예상치 못한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티켓 예약의 혼란, 중복으로 산 유람선표, 개선문 엘리베이터 고장... 젊었을 때라면 이런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고 여행이 망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이 여행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었고,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은퇴 후의 삶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완벽하게 계획된 것보다는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기쁨을 찾아가는 것. 작은 실수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 젊은 호텔 직원의 친절에 진심으로 고마워할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이 모든 순간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파리의 야경처럼, 인생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오늘 하루도 그런 하루였다. 실수투성이였지만 그 실수들이 모여서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루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유럽여행 3일차 - 파리에서 배운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