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라, 큰 꿈의 땅으로
아침 일찍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모나코로 향했다. 니스 숙소에서 불과 30분 거리지만, 그 짧은 여정은 마치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것 같았다. 구글 맵에 모나코 대성당을 목적지로 설정하고, 지중해의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차를 달렸다.
가는 길에 니스의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졌다. 산등성이를 따라 그림처럼 배치된 집들을 보며 문득 우리나라의 토지 활용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국토의 70%가 임야인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산지를 나무를 심어 키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물론 산림 보존을 통한 자연환경 보호도 중요하지만, 서울의 아파트 용적율이 400%를 넘나드는 현실에서 전 국토의 70%에 달하는 산지를 너무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법은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마치 신이 정해주는 것처럼. 그러나 그게 아니다. 법은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대로 변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우리보다 인구 대비 국토 면적이 훨씬 넓다. 프랑스 국토 총면적은 약 547,026㎢에 인구는 약 6,666만 명이고, 우리나라는 100,365㎢에 약 5,168만 명이다. 프랑스 인구는 우리보다 30% 정도 많지만, 국토 면적은 5.45배나 크다. 예전 출장길에 하늘에서 내려다본 프랑스 땅의 절반은 푸르고 절반은 황토색이었는데, 옆자리 프랑스 승객에게 물어보니 황토색 부분은 올해 경작하지 않고 휴경하는 땅이라고 했다. 그때 속으로 '참 여유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숨 막히는 도시, 모나코
모나코에 들어서자 도시의 모습이 숨 막힐 정도로 복잡했다. 모나코는 면적이 약 2.02㎢로 여의도(2.9㎢)보다도 작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다. 가장 작은 나라는 바티칸(0.44㎢)이고, 모나코의 인구는 약 3만 9천 명으로 인구밀도가 세계 1위다. 1인당 국민소득이 약 19만 달러에 달하는 이곳에서는 억대 연봉자도 최빈자 구호 혜택 기준에 못 미칠 정도라고 한다.
길은 미로처럼 복잡하고 좁았다. 마치 개미지옥을 헤쳐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곳에서 무슨 매력으로 세계의 부자들이 살고 싶어 할까? 세상은 내 잣대만으로 세상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강하게 들었다.
주차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모나코 대성당 근처에서 넓은 공터를 발견했는데,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마침 경찰복을 입고 근무 중인 사람이 있어 차를 세우고 주차 가능 여부를 물었다. 경찰관은 깜짝 놀라며 그 구역에서는 절대 주차할 수 없다고 했다. 공용주차장 위치를 구글 맵으로 찾아달라고 해서 겨우 주차장을 찾을 수 있었다.
모나코의 역사 속 인물들
주차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니 모나코 박물관 근처였다. 박물관과 대공궁 입장권을 함께 구매하면 할인된다고 해서 두 장을 샀다. 시간을 보니 근위병 교대식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대공궁 관람을 먼저 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몬테카를로 항구의 멋진 호화 요트들과 산 위에 자리한 아름다운 주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공궁은 모나코 왕족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었다. 특히 그레이스 켈리의 유물과 활동 모습이 전시된 방에서는 그녀가 모나코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레이스 켈리(1929-1982)는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였다가 1956년 모나코의 레니에 3세 대공과 결혼하면서 모나코 공비가 되었다. 그녀는 단순히 왕실의 일원이 아니라 모나코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할리우드 스타였던 그녀의 결혼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는 모나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크게 높였다. 풍전등화와 같았던 모나코를 중흥의 길로 이끈 그녀가 교통사고로 52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모나코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작은 나라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215년 제노바 공화국이 이곳에 요새를 건설한 것이 모나코 역사의 시작이다. 1297년 그리말디 가문이 모나코를 점령한 이후 700년 넘게 이 가문이 통치해오고 있다. 현재의 알베르 2세 대공은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의 아들로, 2005년부터 모나코를 통치하고 있다.
근위병 교대식을 관람하고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주차하려다 경찰에게 제지당했던 그 공터가 바로 대공궁 정면의 근위병 교대식 장소였던 것이다. 경찰이 그토록 놀란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소박한 왕궁과 특별한 박물관
대공궁 관람을 마친 후의 솔직한 느낌은 나라 규모가 작은 만큼 왕궁도 소박하고 아담하다는 것이었다. 언론을 통해 접하던 화려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인상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이나 다른 유럽 왕궁들의 웅장함과 비교하면 정말 소박했다.
간단한 점심을 해결했는데, 간단하지만 비용은 한국의 진수성찬보다 훨씬 많이 들었다. 문득 하루 종일 주차해둔 차의 주차요금이 얼마나 나올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모나코 박물관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박물관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박물관 대부분이 수족관으로 채워져 있었고 해양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정식 명칭은 '모나코 해양박물관(Musée océanographique de Monaco)'으로, 1910년 알베르 1세 대공이 설립했다. 알베르 1세는 해양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군주였으며, 직접 해양 탐험을 하기도 했다. 이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해양 연구소의 기능도 겸하고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양학 연구 기관이기도 하다.
꼬마기차로 돌아본 모나코
모나코 전체를 둘러보기 위해 모나코 투어 꼬마기차를 타기로 했다. 약 40분 동안 모나코의 유명한 곳곳을 소개해주는 투어였다. 소개해준 곳 대부분이 카지노, 호텔, 쇼핑센터, 그리고 요트 정박 항구였다.
모나코는 1863년 몬테카를로 카지노가 개장하면서 도박과 관광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샤를 3세 대공이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카지노 설립을 허가한 것이 오늘날 모나코 번영의 기초가 되었다. 카지노 이름 '몬테카를로'는 샤를 3세(Charles III)의 이름을 딴 것으로, '샤를의 산'이라는 뜻이다.
꼬마기차에서 내려다본 모나코는 정말 독특한 도시였다. 좁은 땅에 고층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그 사이사이로 F1 모나코 그랑프리가 열리는 서킷 도로가 지나간다. 1929년부터 시작된 모나코 그랑프리는 F1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 중 하나로, 도심 한복판을 달리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카지노와 호텔 등 유흥 상업이 번성한 곳이니 야경도 장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꼬마기차 투어를 마치고 해변이 보이는 공원을 잠시 산책한 후, 호텔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해가 진 후 야경을 구경하러 다시 오기로 했다.
예상보다 합리적이었던 주차요금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이곳 물가를 생각하니 주차요금이 어마어마하게 나올 것 같아 불안했다. 모나코의 물가는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전 10시경부터 오후 4시까지 주차한 요금이 18유로였다. 생각보다는 비싸지 않았다. 주차요금이 합리적인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미 이곳 물가에 적응이 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기대했던 야경, 그리고 현실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저녁을 먹은 후 야경 구경을 위해 다시 모나코로 향했다. 낮에 본 화려한 카지노와 호텔들을 생각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본 야경은 생각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건물 내부는 어떨지 모르지만, 외관상으로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모나코의 진짜 매력은 화려한 외관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각국의 부유층들이 찾는 이유도 단순히 볼거리 때문이 아니라 세금 혜택, 프라이버시 보장, 그리고 같은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환경 때문일 것이다.
작은 나라가 주는 큰 깨달음
하루 종일 모나코를 돌아보며 든 생각은 '크기가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여의도보다 작은 이 나라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모나코는 작지만 전략적으로 잘 위치해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 지중해에 면한 이곳은 유럽의 부유층들이 접근하기 좋은 곳이다. 또한 1869년부터 소득세를 폐지해 전 세계 부유층들의 세금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 모나코 시민권자가 되면 소득세,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모나코 시민권을 얻기는 매우 어렵다.
은퇴 후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세상이 정말 넓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 전부가 아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모나코처럼 작은 나라도 나름의 생존 전략과 매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통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복잡한 도로, 비싼 물가, 숨 막히는 도시 구조 등은 분명한 단점이었다. 하지만 그런 단점들도 모나코만의 독특한 특징이자 매력의 일부인 것 같다.
여행 7일차를 마치며, 모나코라는 작은 나라가 주는 교훈을 생각해본다. 크기나 자원이 부족해도 아이디어와 전략, 그리고 독특한 매력이 있다면 세계 무대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나는 자주 우리 대한민국의 대단함을 이야기할 때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의 주요 수출 품목 중 하나가 석유 제품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처럼 노력하는 한계는 없을 것이다. 이는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 아닐까 싶다.
내일은 또 다른 도시, 또 다른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은퇴 후의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런 새로운 시각과 깨달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