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8일차 - 니스에서 마르세이유로

by 이 범수

새벽부터 부산했다. 오늘은 니스 관광을 마치고 저녁에는 마르세이유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빡빡한 하루였다. 생트파라트 대성당 주변과 니스 항구 주변, 두 구역으로 나누어 효율적으로 돌아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계획이라는 것이 항상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새삼 깨닫고 있다.

주차의 고통, 그리고 깨달음

성당에 도착하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더 큰 문제는 주차장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단연 주차 공간을 찾는 일과 주차비용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렌터카 비용보다 주차비용이 더 많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파리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했기에 이런 고통을 전혀 몰랐는데, 남프랑스에서는 차 없이는 여행이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물어 물어 찾은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테슬라의 무인 자율주행 기술이 하루빨리 상용화되어 전 세계 사람들이 직접 차를 소유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로봇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주차 걱정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사고로부터도 안전할 텐데...그래서 테슬라에 좀더 투자를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나의 여행을 도와주고 10년 후에는 나에게 커다란 부를 안겨준다고 믿기에.

어제도 전 세계에서 4,000명이 자동차 사고로 생명을 잃었고, 일 년에는 무려 120만 명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모순을 안고도 효율성만 쫓아 지난 100년을 살아왔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발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 후 여행을 하면서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생긴 것도 어쩌면 축복일지 모른다.

니스 구시가지, 시간이 멈춘 듯한 아름다움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며 구시가지를 둘러보았다. 벼룩시장이 펼쳐진 좁은 골목길은 중세 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곳의 건물들 대부분은 17세기와 18세기에 지어진 것들로, 바로크 양식과 이탈리아 리비에라 특유의 파스텔 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살레야 시장(Cours Saleya)**에서는 색색의 꽃들과 신선한 채소들이 가득했다. 18세기부터 이어져 온 이 시장에서 화가 마티스가 자주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예술가의 눈에도 특별한 곳이었나 보다.

**마세나 광장(Place Masséna)**에 도착했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840년대에 조성된 이 광장은 나폴레옹의 원수였던 마세나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광장을 둘러싼 붉은 건물들은 '니스 레드'라고 불리는 특별한 색으로, 지중해의 햇살과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광장 바닥의 흑백 체커보드 패턴은 고전적인 건축물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훌륭한 사례다.

**가리발디 광장(Place Garibaldi)**은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 가리발디의 이름을 딴 곳이다. 흥미롭게도 가리발디는 니스에서 태어났는데, 1860년 니스가 프랑스에 합병될 때 이를 반대했었다. 그럼에도 그의 동상이 광장 중앙에 당당히 서 있는 것을 보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장메드생 거리(Avenue Jean Médecin)**는 니스의 메인 쇼핑가로, 19세기 니스 시장을 지낸 장 메드생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갤러리 라파예트, 프랭탕 등 유명 백화점들이 들어서 있어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인다.

**프롬나드 뒤 빠삐용(Promenade du Paillon)**에서는 잠시 쉬어갔다. 원래 이곳에는 빠삐용 강이 흘렀는데, 1980년대에 복개되면서 그 위에 공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2013년 완전히 재정비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춘 이 녹지공간은 니스 시민들의 소중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태양의 분수(Fontaine du Soleil)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1956년 제작된 이 분수는 높이 7미터로, 태양을 상징하는 아폴로와 다섯 대륙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지중해의 태양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니스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성당에서 만난 예술적 감동

노상카페에서 간단히 커피 한 잔으로 여유를 만끽한 후, 해변으로 가는 길에 **생트마리 드 라 메르 성당(Basilique Notre-Dame de l'Assomption)**에 잠시 들렀다. 1864년부터 1879년까지 15년에 걸쳐 건축된 네오 고딕 양식의 이 성당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성당의 쌍탑은 높이 65미터로 니스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였다. 내부로 들어서니 스테인글라스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었다. 특히 직경 10미터에 달하는 장미창은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주제로 한 섬세한 작품이었다. 주제단의 피에타 조각품도 인상깊었는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라고 한다.

건축에 대한 단상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을 거닐면서 가장 놀라운 것은 그 오랜 세월을 견뎌낸 건물들이 아직도 훌륭하게 보존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고대 로마 제국 시대부터 중요한 상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던 니스는 중세를 거치며 건축된 건물들이 지금까지도 활용되고 있다.

이 건물들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우선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겨울철 혹독한 추위나 여름철 극심한 무더위가 없어 건축재료의 손상이 적었다는 점이다. 또한 석회암과 사암 등 현지에서 나는 천연석재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내구성이 뛰어났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처음 설계할 때부터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들은 단순히 당대의 필요만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후세대까지 고려한 설계를 했다.

이를 보면서 현대에 맞게 잘 개조하여 살아가는 현재의 거주자들도 대단하지만, 처음 설계한 이들의 시야가 얼마나 넓었으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40년도 되지 않은 1기 신도시의 재건축 문제가 연일 뉴스의 화제가 되는 우리나라 현실을 볼 때, 이제는 우리도 100년, 200년을 사용할 수 있는 건축의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지난 일들은 그 시절로서는 최선의 결과였을 것이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 과정에서 빠른 시간 내에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제는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건축물을 남겨주는 것이 우리 세대의 책임이 아닐까.

니스 해변, 에메랄드빛 지중해의 선물

드디어 기대했던 니스 해변에 도착했다.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를 따라 펼쳐진 해변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무엇보다 바다 색깔이 환상적이었다. 에메랄드빛과 코발트블루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지중해의 색채는 사진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해변은 모래가 아닌 자갈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이내 그 매력을 알게 되었다. 자갈 해변 특유의 투명한 바닷물은 발끝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고, 파도가 자갈을 굴리며 만들어내는 소리는 마치 자연이 연주하는 음악 같았다. 모래 해변에서는 들을 수 없는 독특하고 운치 있는 소리였다.

해변에 앉아 바라본 지중해는 수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바다 표면에 반짝이며 만들어 내는 빛의 향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들었다. 바다 색깔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도 신기했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때로는 깊은 청색으로, 때로는 밝은 터키석 색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보석 같았다.

19세기부터 유럽 왕족과 귀족들이 이곳을 휴양지로 택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이 세 차례에 걸쳐 이곳에서 겨울을 보낸 후 '니스의 겨울'이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이 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 에메랄드빛 바다와 온화한 기후, 그리고 한적한 분위기는 바쁜 일상에 지친 마음을 치유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La Chaise Bleue De SAB를 바라보면 묘한 감정까지 느께게해주네요.

해변가 카페에서 주문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은 그야말로 호사였다. 은퇴 후에야 누릴 수 있는 이런 여유로운 오후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 젊었을 때는 이런 풍경을 봐도 사진 찍기에 바빴을 텐데, 이제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마음속 깊이 담아둘 수 있게 되었다.

시티투어 버스에서 바라본 니스의 전경

해변에서 한참을 즐기다가 근처에 시티투어 버스 출발지가 이곳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간도 절약하고 편안하게 나머지 구간을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아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2층 오픈 버스에서 바라본 니스의 전경은 걸어서 볼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버스가 프롬나드 데 장글레를 따라 달릴 때 위에서 내려다본 에메랄드빛 바다는 더욱 환상적이었다. 1820년대 영국인들이 건설을 제안해서 만들어진 이 산책로는 폭 90미터, 길이 7킬로미터의 웅장한 대로가 되었다. 1931년 니스 시가 영국인들의 기여를 기념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영국인의 산책로)'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코트다쥐르(Côte d'Azur)의 중심 도시답게 니스는 곳곳에서 지중해적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야자수가 늘어선 해안도로, 파스텔 톤의 건물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유명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정말 그림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다본 니스 항구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하얀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는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고, 그 뒤로 보이는 구시가지의 붉은 지붕들이 절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마르세이유로의 여정과 예상치 못한 행운

구글 내비게이션 덕분에 니스에서 마르세이유로 가는 길은 마치 우리 집에서 서울 가는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 기술의 발달이 가져다준 편리함에 새삼 감사했다. A8 고속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는 약 200킬로미터의 여정은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했다.

중간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오늘 밤 묵을 호텔을 예약했다. '주차 지정석'이라는 말에 마음이 끌려 재빨리 계약했는데, 막상 호텔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들어가려니 차단기가 열리지 않았다. 주차장이 만차라는 황당한 상황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주차 문제를 문의하니 근처 사설주차장을 소개해준다. 하루 30유로라니, 또 다른 부담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향하던 중, 호텔 앞 도로에 주차 공간 하나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재빨리 주차를 했는데 주차요금을 지불하는 기계가 보이지 않았다. 호텔 카운터에 문의해보니 그곳은 무료 주차 구간이라는 것이 아닌가! 30유로를 아낀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통쾌했다. 때로는 이런 예상치 못한 행운이 여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마르세이유에서의 첫날밤

마르세이유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기원전 600년경 그리스인들이 세운 마살리아가 그 시작이다. 2,600년의 역사를 품은 이 도시가 내일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현재 프랑스 제2의 도시이자 지중해 최대의 항구도시인 마르세이유는 파리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중해적 느긋함과 다문화적 활력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곳이라니, 니스에서 본 에메랄드빛 바다와는 또 다른 지중해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편히 쉬고 내일 마르세이유 관광을 제대로 해보자는 다짐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여행 8일째의 소감

여행 8일째, 주차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니스의 아름다운 구시가지를 거닐며 건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었고, 무엇보다 그 환상적인 에메랄드빛 지중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주차 행운도 만났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들을 만나는 기쁨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은퇴 후의 이런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런 여유로운 성찰의 시간이다. 젊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천천히,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니스 해변에서 바라본 에메랄드빛 바다의 아름다움처럼, 인생도 때로는 멈춰 서서 그 빛깔을 제대로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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