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찾아가는 마음
지금까지 바쁘게 달려왔다. 언제나 마음은 청춘이니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강행군을 한 것 같다. 다행히 현재까지 컨디션은 괜찮다. 그렇지만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마르세이유 시내를 중심으로 구경을 하자고 했다. 날이 갈수록 요령이 생기고 여유도 생겨진다.
아침 일찍 구글 맵에 방문 예정지를 모두 입력하고 효율적인 여행이 되도록 준비를 했다. 다시 한 번 구글의 좋은 서비스에 감사하다. 기술의 발달이 우리 같은 노년 여행자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새삼 깨닫는다. 예전 같으면 지도를 펼쳐놓고 헤맸을 텐데, 이제는 손바닥 안의 작은 기계가 길잡이가 되어준다.
파로 궁전에서의 명상
나폴레옹 3세를 위하여 1858년에 지어졌다는 파로 궁전은 탁 트인 바다와 마르세이유 시내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멋진 장소에 있었다. 의자에 앉아 멀리 옥빛의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니 아무런 생각이 없고 마치 명상을 하는 것 같았다.
바다는 참 신기한 존재다. 나이를 먹을수록 바다 앞에 서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젊었을 때는 바다를 보면 뭔가 웅장한 감정에 사로잡혔는데, 이제는 그저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이 든다. 옆에 앉은 아내도 같은 마음인지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런 순간들이 여행의 진짜 선물이 아닐까 싶다.
편견을 깨뜨린 타투 전시
올드 채리티 센터에는 여러 가지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이하게 느껴진 전시가 타투 전시관이었다. 솔직히 나는 지금까지 타투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전시를 보는 순간 타투도 하나의 예술적인 분야로 자리를 잡아가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의 상당한 부분은 타투의 역사성을 알리는 데 힘을 쓴 것 같았다. 몇 백 년 전에도 타투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이 들어서 여행을 다니는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젊었을 때는 내 기준으로만 세상을 보려 했는데, 이제는 다른 문화와 관점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내와 전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세대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지만, 그것도 하나의 문화겠지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리카 전시관에서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얼굴 형상이 왜 저렇게 표현되었을까 궁금했다. 좁고 길게, 때로는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각 문화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벽화 거리의 발견
올드 채리티 센터 앞의 오래된 도시 거리의 벽화들을 감상하였다. 다행히 옆에 영어로 해설을 해주는 팀이 있어 그 팀을 따라가며 도보 관광을 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거리를 걸었다. 벽화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마르세이유의 역사와 현재가 벽에 그려져 있었다. 이민자들의 이야기, 항구 도시의 삶, 지중해의 문화가 모두 벽화 속에 녹아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벽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재미있네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벽화 거리가 있으면 좋겠어요." 아내의 말에 공감했다.
마르세이유 대성당의 웅장함
마르세이유 대성당은 지금까지 보아온 노트르담 대성당, 아미앵 대성당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건축물이었다. 1800년대에 건축되었다고 하며 네오비잔틴 양식으로, 나의 눈에는 단순함과 중후함이 보였다.
성당 안에 있는 많은 유물들의 소개는 네이버 파파고의 도움으로 좀 더 알찬 관광을 만들어주었다.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과거에는 외형적인 것만 감상하는 데 그쳤는데, 이제 파파고 덕분으로 알찬 여행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기에 기부된 나폴레옹 3세 주교의 의장석" 등등... 작은 기계 하나가 우리의 여행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어주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아내가 성당 안을 돌아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정말 웅장하네요. 이런 걸 보면 신앙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알 것 같아요." 종교가 다르지만 이런 건축물 앞에서는 경건한 마음이 절로 든다.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의 전망
도보 여행을 마치고 외곽지는 차로 이동하면서 관광을 했다.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은 높은 언덕에서 시내와 지중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정말 멋진 성당이다. 건축은 네오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864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이국적인 풍광을 즐겼다. 이게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젊었을 때는 빨리빨리 많은 곳을 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며 여유롭게 감상하는 맛을 안다. 성당에서 내려다본 마르세이유의 전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붉은 지붕들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주차 전쟁의 현실
롱샴 궁전을 찾았을 때 다시 주차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번 여행의 옥의 티가 주차 전쟁이다. 좁은 골목길에 양쪽으로 빽빽히 주차된 길을 주행하고, 요행히 빈자리가 있으면 행운이다. 공공 주차장이라도 만나면 너무 반가웠다.
"여기 어떻게 주차하지?" 아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좁은 길에 차들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고, 우리가 끼어들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한 바퀴, 두 바퀴 돌다가 겨우 조금 넓은 곳을 발견했다. "조심히 천천히 해보세요." 아내가 차 밖으로 나가서 거리를 재어주었다. 앞뒤로 몇 번 후진과 전진을 반복한 끝에 겨우 주차를 완료했다.
"휴, 이제 좀 숨이 트이네요." 서로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런 작은 시련들이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나의 염원인 로봇택시가 하루빨리 보편화되어 다음 여행에서는 자동차가 나를 짓누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게 나의 너무 성급한 바람일까.
함께 헤쳐나가는 힘
일찍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앞으로의 일정을 검토하였다. 모두가 낯선 상황이니 항상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한다. 결과가 좋으면 함께 환호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서로 위로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오늘도 여러 번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길을 잃었을 때, 주차할 곳을 찾지 못했을 때, 메뉴를 읽지 못해 당황했을 때... 그때마다 아내와 나는 서로를 의지했다. "괜찮아요, 천천히 해봐요." "여기서 한 번 더 찾아볼까요?" 이런 말들이 오간다.
옆에서 함께하는 아내가 큰 힘이 되었다. 혼자였다면 포기했을 일들도 둘이 함께하니 해결할 방법을 찾게 된다. 여행은 밖으로부터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지만, 아내와의 대화도 한층 많아지고 내적으로도 믿음을 더해가는 좋은 시간인 것 같다.
저녁 식사를 하며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다. "오늘 정말 알찬 하루였네요." 아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게요. 특히 타투 전시는 정말 신선했어요." 나도 웃으며 답했다.
젊었을 때는 여행에서 계획한 것을 다 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함께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와 경험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계획에 없던 발견들,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 그리고 그것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과정 모두가 여행의 일부이고, 우리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렘과 약간의 걱정이 교차하지만, 아내와 함께라면 어떤 일이든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