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 입성 후 두 달 만에 목욕탕에 갔다. 기숙사에서 7분 거리에 있었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동안 어딜 찾아 헤맸는지. 생각보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혼자 가면 8원인데 아들하고 같이 가니 1원 할인해서 15원이란다. 중국 돈 1원.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80원 정도이니 8원이면 약 1450원 정도 되었다.
목욕탕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시장 입구에 있었다. 중국 스럽게 간판은 온통 빨간색이다. 궁금증 반, 불안감 반쯤이 나를 긴장시켰다.
벽에는 무뚝뚝하게 '목욕'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고, 빨간 간판에는 '아늑한 목욕'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리고 주의 사항에 '성병, 에이즈, 고혈압, 심장병과 각종 피부질환 환자는 목욕탕 입장을 엄중히 금한다고 적혀 있었다. 목욕은 8원, 때 미는 것은 5원이라는 안내까지 읽어보고 들어갔다. 15원을 계산했는데 그뿐이었다. 아무런 안내도 없었다.
안이 어두컴컴하여 두리번거리다 스위치 두 개를 발견하고 동시에 내렸더니 옆 탕에서 '아'하고 비명을 질렀다. 불을 켠 다는 것이 옆에서 목욕하고 있던 방의 등을 끈 것이었다. 에구머니나. "对不起(뚜에 부치,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정중하게 스위치를 올려 주었다. 예감은 급속하게 불안 쪽으로 곤두박질쳤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말이 목욕탕이지 딱히 문자로 표현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해수욕장 샤워 부스처럼 두 칸으로 나뉘었고, 두 개의 수도관 중에 한쪽은 온수 다른 쪽은 냉수가 나오게 정밀하게(?) 설치되어 있고,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물을 틀었는데 졸, 졸, 졸. 아직 날씨가 추운데 온수는 생트집 중. 비누도 수건도 없었다. 오랜만에 등도 좀 밀어볼 생각이었는데 아예 포기했다. 거금 15원을 냈으니 본전을 뽑아야 했다. 수도꼭지를 쥐어짜가며 온수를 끌어내 머리를 감는데 한 움큼씩 빠졌다. 혹시 물 때문이 아닐까? 화학성분을 잔뜩 집어넣은 게 아닐까? 의심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머리도 많이 빠지고 귀도 좀 먹은 모양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건만 어째 많이 슬프다. 엊그제는 아들 학교 운동장에 앉아서 얘기하던 중 아들이
"중국에도 초코송이가 있내"라는 말을 듣고
"뭐, 중국에 축구선수가 왔어?"라고 되물은 적이 있고,
또 어느 날 근처 한국 국제학교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도중
"내일 아침에 축구하러 가야지, 한번 가는데 60원 한다고 그러던데"라는 말을 듣고
60원을 "유치원이라고?" 되물었던 적도 있었다.
장난이 아니었다. 늘 아들한테 한 번 더 말해 달라고 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러면 아들도 "또 안 들려?"라고 묻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같이 유학을 간 다른 부처의 비슷한 또래의 유학생과 만날 때마다 둘 다 한 번에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래도 너무 걱정이 된 나머지 큰맘 먹고 시내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시내에 있는 중의원으로 갔는데 한참 걸려 접수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에게 한국 사람이라고 거듭 강조를 하고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했더니 청력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처럼 여자 간호사가 검사를 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쪽 손을 드세요”라고 했다. 개미 기어 가는듯한 작은 소리까지 들렸다. 의사는 청력검사 결과를 보더니 이상이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상이 있는데…… 답답했지만 더 이상 어떻게 설명을 못하고 나왔다.
청력검사 결과가 이상 없다는 것과 실제로 대화를 듣는 것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였다. 그 후에도 여전히 한 번에 정확히 알아듣지 못한 상황은 계속되었다. 베토벤처럼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에 몹시 불안했다.
청력은 그렇다 치고 이번에는 저녁마다 발가락에 통증이 심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날이많아졌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연락 없는 통풍이었다.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어 아내에게 전화하여 '이러이러한 증상이니 병원에 가 가서 얘기를 하고 약을 지어서 들어오라고 말해 두기까지 했다.
통풍은 귀족병이라고 했다. 출국한 이후 집 밥은 아예 먹지 못하고 자주 한인식당에서 먹다 보니 진짜로 통풍이 온 것일까. 그동안 중국어 듣기 공부한답시고 이어폰을 너무 오래 끼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윈난대학에서의 어학연수도 순조롭게 끝나 가는데 건강의 중요함을 다시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