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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Nov 10. 2024

낯선 도시에서 만난 인연

마라톤 대회에서 만나요

타지의 생활을 겪는 일은 외롭기도 했지만 종종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이 이어지며 꽤 흥미롭고 따뜻한 생활이 되기도 했다. 프리랜서 생활을 계획하고 왔지만 사전 조사를 하지 않고 무작정 지방의 도시로 이주했던 자신을 탓하는 것이 이미 의미가 없었다. 어쨋든 신혼부터 떨어져 지낼 자신이 없기도 했고 모든 계획이 틀어져 있었지만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조금은 달라진 인생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게 벌써 2년째 타지생활에 젖어드는 중이였다. 머물고 있는 집의 전세기간이 다 되어 살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두번째 터전을 정했다. 상대적으로 경기도나 서울권보다는 집값의 부담이 덜 해서 이제 막 분양을 끝낸 새 집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새집 냄새가 풀풀 나는 "나는 새집입니다. 환영합니다. 새집 냄새가 너무 좋지 않나요?"이런 상태의 집에 짐을 들이며 지방으로 내려오지 않았다면 30년된 사택에 머물고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정도 타지에서의 외로움도 적응되어 갈때쯤 새로 시작한 핫요가 센터에서 만난 지인과 종종 밥을 먹기도 했다.  지인은 항상 밥이나 디저트를 먹으러 가면 양을 많이 시켜서 남겼다. 나는 적당히 먹을 만큼 시키는 걸 선호했지만 지인의 양을 잘 모르니 얌전히 있어야지 했는데 늘 한끼분량의 음식을 남기는 게 영 탐탁치 않아 한번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언니~ 우리가 먹기엔 양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여기서 적당히 먹고 디저트까지 먹으면 많이 배부를 거 같은데 메뉴 하나는 빼도 좋을 거 같아요"


"다 먹어보고 싶은데 오늘만 다 시키고 다음엔 생각해 보자"


"...네. 뭐. (더치페이 하기 싫음)"


한번은 새로 산 패딩을 입고 요가를 하러 갔다가 지인이 했던 말에 적잖히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거 얼마짜리야? 이쁘지도 않구만. 내꺼 가격대비 이쁜데. 이런거 사지"


'... (전혀 내스타일의 옷이 아님. 내 옷이 조금 비싸지만 나한테 잘 어울리고 내 눈에는 예쁨)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말을 하는거지'


연락도 없이 집에 찾아온 지인은 갑자기 옷방에서 반바지를 꺼내와 빌려달라고 하고 가져가 버렸다.


'옷 빌려주는거 안좋아 하는데..ㅠㅠ'


프리랜서 준비를 하느라 인강을 들으며 공부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드느라 지인에게 거의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을때는 왜 연락이 없냐는 지인의 투정을 듣고 있어야 했다.


점점 나와는 다른 성향의 사람에게 마음이 멀어져 갔다. 그래도 타지가 낯설었는데 성향이 많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이사를 하고 짐정리를 끝낸 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옆집 사는 사람과 처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사이가 좋아 보이는 젊은 부부는 굉장히 차분하고 온화해 보였다. 그렇게 오며 가며 종종 마주치다가 어느 날은 옆집 언니가 집에 한번 초대해 달라며 먼저 얘길 꺼냈다. 새로운 인연에 대한 거부감이 없던 외로운 타지인은 그 자리에서 당장 내일도 좋으니 집으로 와도 좋다는 메세지를 전했다.  


부족한 솜씨로 음식을 준비하고 깨끗히 청소도 마친 두번째 집에 새로운 인연이 첫 발을 디디는 순간이였다. 다행히 반려견 두마리를 좋아해주는 언니 덕분에 좀 더 편안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 임신초기에 입덧때문에 계속 게워내는 나를 옆집 언니는 애처롭게 봐주며 먹을 게 있으면 항상 나눠주거나 같이 먹곤 했다. 그리고 언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언니네 부부는 크족이였고 성격이 예민하고 사람을 가리는 성향이였다. 그리고 집이 굉장히 깔끔했다. 기본적인 예의와 개념만 있으면 그리 사람을 가리지 않는 나는 옆집 언니와 잘 맞았고 외로움도 잊고 잘 지낼 수 있었다.


아이가 없으니 대신 토끼나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는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다가 고양이는 그렇다치고 토끼를 아파트에서 키울 수 있는지 물었다.


"발코니에서 키우다가 겨울엔 집으로 들일지 생각해 봐야 겠어요"


굉장히 깔끔한 언니가 토끼를 키우는 일이 잘 상상이 되진 않았지만 실제로 언니는 우리가 다시 서울발령이 나서 복귀했을때 토끼를 집으로 들였었다.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얘기나눴던 계획안에 있던 토끼를 보았을때 반가운 마음이 컸다. 언니에게 토끼의 근황을 종종 물어보며 월동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궁금해져 통화가 길어지기도 했다.


어느 날은 언니가 피자를 주문했다며 집으로 오라고 했는데 남편이 입이 짧아서 피자를 주문해도 먹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언니의 남편분은 평소 먹는 양이 굉장히 적어서 언니가 음식을 하는 재미를 못느낀다는 것이었다.


"언니 저는 음식하는거 자체가 노동이라고 생각되서 별로 안좋아해요. 근데 언니는 음식하는건 좋아하는데 먹일 사람이 없는 거죠? 그럼 저 주세요 전 잘 먹어요ㅎㅎ"


이딴식으로 되지도 않는 농담으로 실없는 웃음을 선사해 주기도 했다. 이런 농담에도 재밌어 해주던 사람이였다. 남편분은 드시지 않는 피자를 대신 맛있게 먹으며 즐거운 대화가 끝날 무렵 기름진 음식의 여파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속이 부글부글거리더니 곧 게워낼 것 같은 입덧의 조짐때문에 더는 언니의 집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속을 좀 비워내고 나서야 진정이 됐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늘 게워내야 하는 일이 고통스러워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외로움과, 입덧을 많이 잊게 해준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일이 많은 위안이 되었다.


준비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언니에게 설명하는 일도 너무 즐거웠다. 언니는 IT분야의 흐름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었고 창작의 고통에 대해 많은 의견을 이야기해 주었다. 언니와의 대화는 행복했다. 이토록 공감을 얻는 일과 타인의 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이는 대화는 바람직하고 흥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분의 마라톤 연습에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언니도 내년에 남편과 함께 서울에서 개최하는 하프마라톤대회에 참가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 때 우리는 이미 서울발령이 나있을 때여서 서울 오게 되면 연락하기로 했다.


한참 센터에서 러닝연습을 하면서 실력이 쌓이고 근육이 붙으면 언젠가 하프마라톤을 도전해 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마라톤대회의 수많은 사람들중에 따뜻한 대화를 나눴던 언니와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수 없더라도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우리에게 한번 정도는 있지 않을까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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