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좋지 못한 상태에서 진통이 시작된 듯 했다. 배가 뒤틀릴 것 같은 통증의 간격이 점점 줄어들었고 예상 시나리오대로 이쯤 되면 병원을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연락했다. 입원실 앞에서 끝나지 않는 입덧과 함께 통증의 강도가 세지면서 신에게 빌었다. 제발 이 고통이 되도록 빨리 끝나게 해주세요..라고.
짧은 주기로 찾아온 통증을 점점 견디기가 힘들어져서 무통주사를 놔달라고 간호사선생님에게 울면서 애원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통증을 견뎌내기엔 채 끝나지 않은 입덧과 함께 고통을 가중시켜 주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입덧의 고통보다 통증의 세기가 강해져 입덧은 느껴지지 않게 되었고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둘중 하나의 고통만 느끼기에도 이미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18시간째 진통이 이어지도록 아기가 좀처럼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무통주사바늘을 분명 꽃고 있는데도 통증은 가시질 않았다. 진통시간이 길어지면서 무통의 효과도 감소한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고통의 절규를 바라보는 남편도 쉽지 않아 보였다. 오늘 안으로는 이 고통도 지나가겠지..하는 마음으로 버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19시간째. 진통이 느껴지는 순간 힘을 주어야 한다는 말에 아픈데 힘까지 주라니... 마지막 몸부림이 시작되고 얼마 있다가 외계인같이 생긴 아기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정말 외계인같이 생겨서 놀랐고 남편보다 아버님을 너무 닮아서 놀랐고 왜 예쁘지 않은거지?못생긴 모습에 또 놀랐다.
그렇게 아이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조리원에서 수시로 모유수유 호출이 왔다. 늦은 밤에도 작은 아이에게 수유하는 산모들 틈에서 열심히 아기에게 수유를 하며 아직은 조심스러웠던 아기를 한참 바라보았다. 우리 곧 친해질거야.
귀가 후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고 밤에도 서너번씩 깨는 아기에게 수유를 하느라 잠을 못자고 피로가 누적이 되었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여서 아기가 잠들면 매우 빠른 속도로 헤치우거나 굶거나 자거나 선택을 해야만 했다. 모유수유때문에 밥을 안먹을 순 없었지만 때로는 식사 대신 잠을 택하기도 했다. 아기 울음소리에 귀가 예민해져 금방 깨긴 했지만 짧은 잠을 청하는 일은 누적된 피로를 달래는 데 꼭 필요한 일이였다.
아이가 옹알이를 할때 쯤 아이의 입에서 처음 엄마라는 소리를 들었을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뭉클함이 밀려왔다. 그때부터 아이의 말을 녹음하기 시작했는데 말 수가 늘어나면서 아이가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기 전까지 중국어로 들리는 비슷한 억양의 외계어를 하는게 신기해서 녹음해둔 파일을 아이가 조금 컷을때 들려주기도 했다.
한동안 녹음 음성이 최고의 놀잇감이였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은 어린시절의 본인들 음성이 재밌는지 몇번을 반복하며 듣다가 흉내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커져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가 살아온 세월들을 반영해 주었다. 아이들은 나를 많이 닮아 있었고 아이들에게서 보여지는 모습을 통해 나의 유년시절을 돌아보곤 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땐 나도 같이 1학년의 시절을 겪고 있었다. 나의 유년시절을 같이 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아이가 걸음마를 하기 시작할때 처음 시멘트 바닥에 발을 디디기 위한 신발을 사주었다. 걷다가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아이는 몇일 새 더 성장했고 넘어지는 횟수가 줄고 시간이 더 지나 넘어지지 않고 걷게 되었을땐 아이의 성취감을 함께 느끼며 아이도 나도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글자를 배우기 전 고사리 손으로 숫자를 써 내려가던 아이는 책에 있는 한글을 따라 쓰면서 글자를 익혔다. 쓴다기 보단 그림에 가까웠지만 점점 글자의 모양을 갖추면서 아이는 스스로 한글을 터득해 나갔다. 책을 읽어 주기만 하다가 한글을 읽게 된 아이가 책을 읽어 보겠다고 했을때 한페이지를 읽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최선을 다해 읽어 내려간 아이는 다음 페이지를 한번 더 도전해 보기도 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의 책가방과 원피스. 그리고 코트를 사고 입학식때의 드레스코드를 맞춰보며 함께 설레이는 입학을 맞이했다. 작은 아이가 어느새 초등학생이라니. 또 한번 뭉클함이 찾아왔다. 받아쓰기를 60점을 받아와 울상인 아이에게 6개나 맞았다고 칭찬해주며 함께 예습을 해나갔다. 성실도에 따라 더 잘 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된 아이의 모습에서 나 또한 귀감이 되기도 했다.
아이는 나의 거울이 되어 주었고 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해 주었고 유년시절을 한번 더 경험하게 해준 사람이었다. 우리가 잘 지낼 수 있도록 나의 인생 또한 더 멋지게 계획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들이 나에게는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특별하고 감사할 일이 많은 일상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함께 일궈 온 시간들이 앞으로 함께 할 인생의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기에 오늘의 우리는 또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고 매일이 특별한 일상이길 꿈꾼다.
너를 처음 만난 그때를 자세하게 말해 줄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정말 따뜻하고 너무 포근해서 좋은 그런 느낌이 있었지
서태지와 아이들 [너와 함께한 시간속에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