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이 나를 슬프게 할지라도
열정페이는 받지 않겠습니다
간절하고 희망적인 염원을 담아 제비뽑기함에 손을 집어 넣는다. 첫번째 종이를 건드렸다가 이내 다른 종이를 건드려 본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 차례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으므로 오래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래. 운에 맡기는 수 밖에.. 이제 운명은 정해졌다.
운명의 글자가 숨어있을 빨간색의 꽤 두께가 있는 종이를 슬며시 펼쳐 보았다. 하... 대기 1번.
아이의 돌봄교실 뽑기가 있는 날이였다. 좋은 기분으로 좋은 기를 모으고 싶어서 아무도 관심없을 패션에 한껏 멋을 부렸다. 이렇게 꾸미고 나가는 날은 왠지 모를 자신감이 뿜뿜(상승)하고 구름에라도 닿을 듯한 주체되지 않는 텐션 또한 무엇인가.
이렇게 공을 들였건만. 대기 1번이라니..
곧 마음을 고쳐 먹기로 한다. 대기 1번이 어디야.라고..
한달 뒤. 다행히 티오가 났다.
힘들게 들어간 돌봄교실을 가지 않겠다고 온갖 핑계를 다 대는 아이. 1학년 학기초에 이미 반 이탈, 방과 후 수업 두번 이탈, 2학년때 방과 후 수업을 또 이탈하는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놀랍지도 않다. 자유영혼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를 억지로 가둬놓을 일도 아니였다.
내 시간은 날라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분노를 단단히 눌러내며 아이의 손을 잡고 향한 곳은 빵집이였다. 빵과 음료를 테이블에 놓아주니 그제서야 웃는 아이.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가 음료를 쏟은 탓에 받지 못했는데 불현듯 "거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일단 수습을 하고 젖어버린 티셔츠가 괜찮을리 없지만 연신 괜찮다며 아이를 진정시키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직감은 틀린적이 없지. 면접 제의였다.
아침 등교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면접갈 채비를 하고 최대한 단정한 옷차림에 잘 신지 않는 불편한 구두까지 장착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잘 해보자.
숨이 막혀 오는 따뜻한 공기에 메이크업이 반쯤은 지워진것 같다. 아이라인이 팬더가 되진 않았을까? 아 몰라. 입술만이라도 다시 바르고 가자. 아침 루틴으로 조금은 지친 탓에 화장을 다시 고치는게 매우 번거롭고 귀찮았다. 사무실을 찾아 헤메는 일은 덤이였다. 결국 이 미로같은 산업단지에서 '길치'임을 증명해 내고 나서야 마지막 자존심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곳은 어떻게 찾아 가야 하나요?"
업무 이야기가 오고 가고 열심히 브리핑중인 면접관의 이야기에 난 이미 다른 궁금한걸 질문하길 기다리느라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풀타임이 어려워 파트타임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 지고 있었다. 구인광고에 적힌 급여를 보고 오긴 했지만 경력도 있고 실력도 나쁘지 않다는 알량한 자존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급여는 민감한 부분이기는 하나 면접때 제대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기에 용기를 내 보았다.
"그런데......구인광고에 적혀 있는 이 시급으로 책정되는게 맞는 건가요?"
조금은 건방지고 당당하기까지 한 맨트에 면접관의 동공이 흔들리고 표정변화가 있는 걸로 보아 올게 왔다. 면접관은 애써 아주 조금 인상된 시급으로 이야기하며 상황을 정리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제 너는 끝이야.라는 시그널을 자꾸만 내뿜으며 굉장히 친절했지만 상당히 불편하게 면접이 끝났음을 알렸다.
'망했다.!!'
풀타임이라면 원하는 연봉을 바로 불렀겠지만 파트타임은 같이 일하는 동료들한테도 눈치가 보이고 나 역시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하기에 적당히 타협해 보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어쩌면 풀타임이 불가능한 파트타이머들의 애환일수도. .
그렇다고 해서 열정페이를 받아가며 내 시간과 노력을 쏟고 싶진 않았다. 내 가치를 바닥으로 내동냉이 치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건 어려웠다.
나의 오만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스템에 대한 불만족과 사업자의 마인드에서 기인했다. 비용 대비 효율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 이내 마음에서 접었다.
오늘도 망했다.
그래도 기분은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