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옆에 두고 싶은 몇가지가 있는데 음악, 글쓰기, 디자인, 소중한 사람들 정도로 정의했다. 나름의 인생 역경과 누적된 경험치의 결과로 얻은 답안지인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왜 'MONEY'가 빠졌는지 반문한다면 큰 자산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크게 갖고 싶은 것도 없어서 내면의 이로움을 채울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우선순위를 두자는 것 뿐이지 경제적인 면이 중요하지 않은건 아니다. 부수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싶다.
유년시절 부모님의 음악적 취향이 달랐는데 아빠는 클래식이나 올드팝을 좋아하셨고 엄마는 트롯트를 좋아하셨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음악의 편식이 없는 편이지만 특히 발라드를 너무 좋아하는데 한때는 한맺힌 정서를 반영한 트롯트에 빠졌던 적이 있다. 아마도 결혼생활의 쌓인 한(?)을 배출할 때가 필요했기 때문이였던 것 같다. 뭐 지금이야 결혼생활 10년이 넘어가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여기며 살면서 해탈의 경지에 오른 수준의 삶이라 한이 맺힐 일은 잘 없다. 어쩌면 남편이 나에게 한이 맺혔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궂이 밝혀내고 싶진 않다. 대립하는 것 자체가 서로의 입장차이기 때문에 나열하자면 지구 한바퀴를 돌아도 모자를 것이기 때문에.
다채로운 음악 세계에 빠져 살았는데 클래식을 좋아하셨던 아빠의 영향으로 피아니스트 Steve Barakatt - Rainbow bridge,Flying. Maksim Mrvica - Croatian Rhapsody,Wonderland. らもとゆうき(유키 구라모토) - Romance, Lake Louise. 기타연주가 おしおコータロー(오시오 코타로) - Twilight
팝 : No Doubt - Don't Speak. Rialto - Monday Moring 5.19. Beatles - Yesterday. Jason Mraz - Lucky, Geek in the Pink, Kelly Clarkson - Because Of You
OST : 트렌스포머(패자의 역습) Linkin Park - New Divide, What I've Done. 트와일라잇(이클립스) Muse - Neutron Star Collision. 알라딘 Naomi Scott - Speechless
장르불문하고 한번 빠지면 한 곡만 주구장창 들은 날도 있고 시끄러운 음악이 필요한 날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도록 볼륨을 높여 음악에 취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대중가요가 제일 좋다. 한국인의 정서를 제일 잘 반영하는 곡 아니던가. 이것 또한 다양한 장르를 거쳤는데 이문세, 윤상, 서태지와 아이들, K2, 패닉, SG워너비
지금은 SG워너비의 오랜 팬이기도 한데 나의 음악적 정서는 SG워너비에서 멈춘 것 같다.
수많은 명곡중 내사람, 가슴뛰도록, 사랑하고 싶어, 꽃잎, 습관처럼, 아임미싱유,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ost) 등등 나열하자면 너무 많은데 20대부터 내 인생과 동고동락했던 사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SG워너비의 리더 미성 장인 김용준의 솔로곡들 이쁘지나 말지, 그때 우린, 어떻게 널 잊어, 한끗차이, 아는 동네 등은 단연 최고다. (사심 뿜뿜)
글을 쓰는 일은 워낙 좋아한다. 학창시절때 친구가 소설을 쓴적이 있는데 그걸 읽은 재미있었던 기억때문에 끄적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낚서를 할때도 아무렇게나 글로 쓸 때가 많았고 사춘기 시절엔 일기를 자주 쓰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냈다.
글을 쓰는 일이라면 적극 참여했다. 학창시절때 기행문쓰기나 라디오 사연보내기 등. 특히 라디오 사연은 이문세의 별밤시절 엽서를 매일 같이 써댔고 불과 몇개월 전 까지만 해도 네이버 라디오에 매일같이 사연을 보냈다. 편지 쓰는 것도 좋아해서 가끔 편지를 쓴다.
사람들을 만나면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는데 당췌 머리속에서 무질서한 말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해 조리있게 말하는 건 이미 내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였다. 대신 시간을 들여 그 무질서함을 글로 풀어내는 일은 내 영역권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남편과 다툴때도 면전에 얼굴붉히면 할 말도 못할께 뻔하고 특히 한 말발하는 능력을 가진 남편에게 승산있는 싸움이 될 것이였기에 말보단 장문의 편지쯤으로 대신할 때가 많았는데 고조된 감정을 일단 진정시키고 질서정연한 글로 표현하는 일이 더 낫겠다 싶었다. 메신져나 문자를 쓸때도 퇴고의 과정을 거치는 이 세밀함이란..
잦은 이직으로 찾아낸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정말 특별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창작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글쓰는 일과 좀 닮아 있는데 머리를 쥐어 짜는 창작의 고통이 따를땐 그것의 끝을 갈망하지만 시각의 완성을 보고 있노라면 '그간의 고통쯤이야'로 바뀌어 버리는 간사함도 경험할 수 있다. 늘, 자주 그래왔기 때문에 창작의 고통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예전에 비해 많이 단련되어 있는 것 같다. 눈을 즐겁게 해줄, 또는 클라이언트를 만족시켜 줄 결승점을 생각하면 끝이 멀지 않은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결승선에 다다랐을때의 희열은 멋짐 그 자체다.
나를 나로서 있게 해준 최고의 동반자라는 생각이 든다. 능력이 출중한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걸 해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내면의 가치를 높이 살 뿐이다. 희미한 안개속 길을 출처모를 자신감과 열정하나로 모험을 즐기는 자는 오늘의 승리를 반드시 기억하고 싶다.
성격과 결부시켜야 하는 인간관계는 살아 오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는데 4차원은 아닌데 조금 독특한 성격 탓인지 입맛에 맞는 인간관계는 한정적이였다. 이걸 어려워 하는 탓에 MBTI가 유행처럼 번질무렵 세번의 테스트 끝에 자신과 가장 근접한 유형을 찾게 되면서 MBTI에 맹신하게 되었다. 성격이 좀 팔랑귀인것도 한 몫 하는 것 같지만 어떤 때에는 고집도 있고 줏대도 있는 인간인지라 '자아의 성찰'은 끝나지 않는 고뇌를 탄생시키고 있다.
'양보다 질'이라는 본질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과의 관계보다 좁고 깊은 관계에 더 집중해 왔는데 이 또한 살아가다 보니 정답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금은 이것들의 조화를 적절히 융합시켜 최대한 긍정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인간관계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1차원적인 문제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히 여기는 신념중에 하나는 사람을 판단할때 제 3자의 말로 편견을 두는 일은 지양하는 편이다. 무조건 사람은 겪어 봐야 하고 제 3자에겐 나쁜 사람일 수 있어도 나에겐 좋은 사람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는게 맞다.
인생에서 음악, 글쓰기, 디자인, 인간관계는 최소한의 살아갈 양식이다. 아마 이중에 하나라도 빠진다면 퍼센테이지가 조금은 다르겠지만 이빠진 나머지 치아들로 살아가야 하는 느낌정도랑 비슷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동반자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