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후 몇일 뒤에 남편은 부산으로 발령이 났다. 일을 포기할 수 없어 주말부부를 하기로 했던 약속은 얼마 가지않아 깨지고 말았다. 나 역시 지방으로 따라 내려가게 되면서 3년여의 낯선 생활이 시작되었다. 부산이 가까운 김해에 살았지만 남편의 회사가 부산과 김해의 경계인 부산이여서 부산에서의 생활권 반 김해에서의 생활권 반쯤으로 지냈다. 경단녀의 시초가 됐던 지방생활은 사실 좀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 또한 나름의 추억과 좋은 기억들을 많이 품고 있다.
오랜 기간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도저히 마땅한 회사가 나타나지 않아 산업단지가 밀집해 있는 부산의 센텀시티까지 눈을 돌리게 되었다. 서울과 거의 비슷한 조건의 회사가 있었는데 야근이 많은 직종 특성상 출퇴근 시간만 4시간이 넘는 거리여서 결국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랜 구직생활에 지쳐 경력이 단절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연고가 없었던 타지의 생활은 외로움 가득한 일상들이 이어졌는데 근처 도서관을 드나들며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신도시에 지어진 도서관 내관은 1층은 통유리로 카페거리가 있는 밖의 풍경을 담을 수 있었고 2층은 다락방을 연상케 하는 아늑한 공간이 많았다. 주로 2층의 구석자리에 쭈구리고 앉아 책을 읽곤 했는데 햇살이 비춰오는 곳에서 독서를 할때면 눈꺼풀에 무게를 싣는 잠을 이기지 못해 꾸벅꾸벅 졸기도 여러번이였다. 바보같은 모습으로 졸고 있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였다.
남편과 친하게 지내던 지인의 아내를 알게 되었는데 동갑내기 요가강사였다. 우리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되었고 종종 나만의 공간에 친구를 초대해 햇살이 비춰올때면 같이 졸기도 하고 책도 읽으며 평화로운 일상을 함께 보내곤 했다.
만나는 사람이 도서관 친구뿐이라 외로워하는 나에게 반려견 두녀석이 와주었다. 유기견을 입양할 생각이였던 나의 생각을 말하기도 전에 이들은 박스에 각각 담겨져 서울에서 이곳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먼 길에 다다랐다. 문화적 충격이였다. 강아지 분양을 이런식으로 하다니.. 이녀석들에겐 한번의 죽을 고비가 찾아왔지만 이내 건강을 되찾은 반려견들과의 관계는 너무도 애틋해져 있었다.
집 근처 카페거리에는 카페가 많았고 식당이나 여행사도 있었다. 주로 도서관을 가는 날이면 카페거리에 있는 카페중 한 곳은 꼭 들러 알지도 못하는 커피맛을 논하느라 바빴고 배가 고플땐 어디든 들어가면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벗꽃이 만발한 봄이 되면 진해 군항제가 부럽지 않은 거리였고 운동으로 걷기를 했던 코스로 이만한 곳이 없었다. 이곳으로 어느새 나의 일상은 스며들어 있었다.
낚시를 경험한 남편은 장비병에 걸려 낚시대를 사모으기 시작했고 종종 밤낚시를 따라다니며 지루한 밤을 견뎌야 했다. 특히 낚시에 대한 기억은 썩 좋지 못한 편인데 입덧이 심했던 시절에 따라갔던 낚시터의 기억은 최악이였다. 안그래도 하루종일 숙취를 느끼는 것 같은 울렁거림에 미칠 지경인데 낚시터의 비릿한 냄새는 입덧을 부추기고도 남았다. 하지만 좋은 기억도 있다. 해저터널을 지나 거제도의 푸른밤을 보냈던 밤낚시는 조금 특별했다. 밤늦은 새벽쯤에만 느낄 수 있는 적막의 차분함, 짙은 색의 밤바다, 갓 잡은 생선의 신선한 맛. 이맛에 낚시를 즐기는 듯 보였다.
종종 남편의 후배들이 집으로 놀러오곤 했는데 식구에 비해 방이 많았던 우리집은 후배들의 숙소가 되어 주기도 했다. 사람이 그리웠던 그땐 누구라도 집으로 놀러오면 사람사는것 같아 너무 반가웠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부산여행겸 와서 그렇게 자고 가라는 얘길 많이 했던 것 같다.
입덧이 점점 심해지고 두번째 집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옆집에 사는 언니와 인연이 닿아 외로운 지방생활도 그다지 외롭지 않게 지냈다. 어느날은 상당히 친절했던 언니가 입덧이 심한 임산부 동생에게 뭐라도 먹이고 싶어 같이 피자를 주문해 먹기도 했는데 남편이 소식좌라서 종종 먹고싶은 것이 있을땐 나와 둘이서 먹을때가 많았다. 잘 먹여 놓았는데 속이 안좋은걸 티내기 싫어서 집에 와서야 먹었던걸 다 게워내곤 했다. 딩크족이였던 언니네 부부는 우리가 이사를 가고 나서 키우고 싶어 했던 토끼를 새 식구로 들였다.
잔잔한 추억이 쌓여갈때즈음 남편은 다시 서울로 발령이 났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떼며 낯설었지만 이젠 더 이상 낯설지 않아진 도시에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한동안 많이 그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