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시계바늘은 좀 느리게 흘러 왔다. 일반적인 출발점보다 2946347킬로쯤 뒤에서 겨우 겨우 따라가려고 헥헥거리며 길고 긴 마라톤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게 늦어지다보니 시기에 맞춰 하려고 하면 주변상황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남들보단 더 노력해야 했고 틈틈히 시간에 공을 들여야 했다.
육아에 하루를 쏟아 부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어느 날 자아에 대한 회의감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아이가 예쁜만큼 육아가 고달팠고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중학교시절 흥얼거렸던 노래 가삿말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아이가 조금 크면 사회활동을 해야겠다고 말이다. 사실 육아로 집안에 오랜시간 아이만 바라보고 있는건 극I 성향에게도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에 반반의 성향인 내가 감당하기에 쉬운 일은 결코 아니였다. 그러나 상황이 따라주지 않을때가 많았다. 하루는 쌓이고 쌓였던 내면을 토해내며 남편에게 부탁을 했더랬다.
"회사 다니고 싶어. 사람들하고 말하고 싶어"
사실 회사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육아에 대해 그 어디에서도 도움 받을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남편의 유년시절에 대한 히스토리를 들은 이후로는 쉽사리 결단이 내려지지 않았다. 늘 아이들을 1순위로 두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집 밖으로 나가서 사회생활을 해야한다'라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조건도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여야 한다'
예전에 명리학을 공부하셨던 지인이 봐주신 사주 중.
분석에 따르면 역마(驛馬)가 있는데 집이라는 갇힌 공간에 긴시간을 들이는게 좋지 않고 사회활동,여행등 바깥활동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했는데 아마도 집순이 집돌이가 아닌 이상 많은 이들에게 통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꿈틀대는 욕구를 몇번이고 눌러낼 수 있었던 건 배려라는 이름으로 무장한 "착한 마음"이 아니라 "귀찮음"이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육아는 끝없는 체력전이기에 에너지가 소진되고 나면 "내 자아따위"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체력앞에 나약해진 자아라는 녀석이 귀찮음을 앞세워 종종 또는 자주 날 지배해 버리기도 했다.
시간은 너무나도 정직하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흘렀고 아이들도 이젠 말대꾸가 시작되고 자기 주장이 강해질만큼 성장해 있었다. 경력단절이라는 시간도 함께 흘러 텀은 더 길어지기 시작했지만. 이미 난 그 "하고 싶었던 일" 을 조금씩 조금씩 해 나가고 있었다.
조바심이 컷던 시절들이 지나고 나니 마음의 여유가 찾아왔다. 늦깎이 인생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생각은 더 많아지고 통찰력도 생겼다.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 벤치마킹과 메모를 하는 습관이 생겼고 지치지 않는 마라톤을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갈 힘도 기르는 중이다. 특히 좋은 글귀를 보면 메모를 하거나 캡쳐를 해 두었다가 멘탈이 무너졌을때 꺼내보며 마음을 다지기도 했다.
내가 원했던 100에서 어차피 주어진게 50뿐이라면 50을 100처럼 잘 활용해 보자라며 타협했다. 배려하고 포기하며 살아온 인생 같지만 그냥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흘러가는 인생일 뿐이다. 주위를 돌아볼 수 있고 예쁜 하늘을 올려다 볼 수도 있었고 정말 소중한게 무엇인가에 대한 답도 찾았다.
그리고 귀차니즘은 여전히 있다.
이건 주변 상황에 따른 결과일수도 있겠으나 MBTI 맹신자의 생각으로는 ISFJ의 성향중 "게으른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라고 믿고 싶다.(히히)
사실은 아직 아이들에게 손이 많이 가서이지만.
그리고 또하나 "갈등 생기는거 싫어해서 회피하는 성향"도 한 몫 한것 같다. 이걸 풀어서 얘기하면 갈등이 생겼을때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나 귀찮음.
난 귀차니즘의 결정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