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감

근거 없는 자신감

by 소월

출처가 불분명한 자신감의 영역은 예상컨데 자신감이 없는 편이어서 자신감있어 보이고 싶다거나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여서 약간의 무지에서 오는 무모함이거나.. 이유를 갖다 붙이자면 뭐라도 갖다 붙일 수는 있겠으나 결론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이다.

(문득 MBTI의 성향중 나와 가장 근접했던 ISFJ에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가 있다. 좀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한건 어렸을 때였다. 그맘때 여자 아이들이 많이들 그렇듯이 만드는거 좋아하고 그리는거 좋아했다. 10대때 좋아했던 서태지와아이들의 브로마이드가 벽에 걸려있었다. 데생을 한번도 배운적이 없었는데 벽에 걸린 브로마이드를 보고 데생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아주 잘 그린건 아니였지만 누가 봐도 서태지다 정도로는 그렸다. 생은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며 소질이 있다고 부채질해 주었고 아빠 역시 그림을 조금 그리는 나에게 희망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셨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근거없는 자신감이 내면에 자리잡기 시작한게... 참 뜬금없는 인생 포인트였. 미술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만큼의 출중한 실력이 아니였으므로..

아마도 팔랑귀의 표본이거나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 결과일 수.


어쨋든 그림과 디자인은 분야가 다르지만 색감을 적절히 써야한다는 점은 비슷했고, 디자인에서는 아이디어와 레이아웃이 중요하다는 건 디자인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연관성은 분명 있지만 결은 너무 다른 분야이다.


디자인에 대한 정확한 뜻을 알지도 못했던 고등학교시절 친한 친구가 고등학교 디자인과에 들어갔는데 그땐 그게 세상 부러웠다. 난 성적이 되지 않았고 원하지 않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퇴를 생각할 정도로 만족하지 못했던 학교생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적응능력 또한 출중했던지라 공부를 적당히.. 열심히 해서 중상위권에는 속해 있었다. 중학교때 공부를 얼마나 않했으면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때 학년 전체등수가 180등이 올라서 교무실에 불려갈 정도였으니. 도 안되는 등수때문에 불려가긴 했지만 결국 칭찬을 받았는데 왠지모를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디자인과에 가지 못했던 안타까움은 후회라는 이름으로 계속 자아를 괴롭혔고 성실함과 결과의 비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가고 싶은 대학도 있었고 늘 내편이 되주었던 아빠는 언제나 나를 지지해 주셨다. 든든했다. 가고 싶은 학교에 데려가 주셨고 동기부여가 많이 되었다. 그럼에도 결국 재수를 하게 되었고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아 포기를 해야만 했다. 엄마는 나의 재수 생활조차도 탐탁치 않아 하서 욕심은 있었지만 삼수까지 도전하기에는 눈치가 많이 보였다.


사회라는 곳에 발을 내딛고 방랑자같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자주 뇌리를 스치는 하나가 있었다. 아직 가슴이 뛰는 일은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잘 다니던 회사가 폐업을 하면서 회사 고문으로 계시던 분께서 나를 스카웃해 주셨고 새로 설립된 무역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 묵묵히 성실함으로 매월 정해진 날에 나오는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다녔으면 좋았을 그곳마져 나의 목마름을 해소시켜주진 못했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극도의 성취감과 즐거움을 안겨줄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상념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20대의 끝자락에 들었던 생각은 30대가 되기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싶다" 다.


그래서 과감히 회사문을 박차고 사표를 던졌더랬다.
사실 무모했다.
연봉인상의 제안마저 단칼에 거절으니 말이다.

난 거의 미쳐있었다. 위에서 보내는 걱정어린 시선따위 아랑곳 하지 않았고 모든 귀를 닫은채 목적의 출구만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외골수가 된 것이다.


대체 나의 이 근거없는 자신감은 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출처없는 근자감을 끌어 안고 그렇게 외골수의 길로 들어섰다. 요한건 그렇게 안정적인 회사를 퇴사하고 배고픈 디자이너로서의 생활을 해야 했음에도 열정의 불꽃이 매일 매일 타올랐다는 것이다.

대략 흥미로움, 설레임, 즐거움, 행복감, 만족감등이 나의 인생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때 나의 자아가 반쯤 미치지 않았더라면 미련 끈을 붙잡고는 있되 이제 나이가 많아서 시작을 못하겠어.라든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따윈 넣어둬.라고 했을것이다. 계속 목이 마른채로 말이다.

주식이나 펀드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하면 위험부담이 크지만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한편 안정적인 투자로 위험부담을 줄이며 작은 수익, 또는 큰 수익에 만족할 수도 있다. 어떤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다라는게 아니라 어떤 인생을 선택하고 만족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난 전자를 택했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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