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신드롬에 맞춰 학교 도서관에도 한강 작품들이 일렬로 진열되어 그녀의 인기를 실감나게 했다.
나는 그녀의 20대 처녀작인, 지금은 구하기 힘든, 1996년에 집필된 단편 소설집인 <여수의 사랑>을 택했다.
빛바랜 표지와 누렇게 발색된 종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맡아지는 큼큼한 책 냄새가 책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듯 하여 마음이 설렜다.
문장 속 생경한 단어를 사전을 통해 찾아보았고, 시적이고 서사적인 한강만의 빼어난 문장들을 입으로 낭독하며 그녀만의 문장 세계로 빠져들었다.
분명한건 20대에도 한강은 한강이였다. 그녀는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게 확실했다.
소설은 나(정선)와 자흔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둘은 한 자취방을 함께 쓰는 룸메이트로 만났다.
둘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너무 다른 성향을 보여준다.
지처보이고 외로운 표정을 지녔지만, 무구한 환한 미소를 지닌, 희망없이 세상을 긍정하는 자흔.
두살때 강보에 싸여 여수발 서울행 열차에 버려지고, 그뒤로 입양과 파양을 거치며 떠돌이 인생을 살고 있지만, 언젠간 자신의 고향 여수로 가고싶은 자흔.
그녀에게 여수는 다스한 엄마품이였고, 안식처였다.
결벽증이 심하고, 위장병으로 토악질을 병적으로 하며, 분명하고 정확한 성격으로 과로를 일삼는 나.
칠칠치 못하는 두살어린 자흔을 언니처럼 챙기면서도 자신에게 뭐가 그렇게 두렵냐고 물어주며, 자신을 안아주는 그녀에게 25살 젊었던 엄마의 품을 느끼는 나.
5살에 엄마를 7살에 아빠와 여동생을 읽고, 물에 빠져 허우적되는 동생의 손을 놓처버린 죄책감에 자신의 손이 더럽다 생각하고 심한 결벽증을 앓게단 나.
둘다 깊은 상처가 있고, 굴곡진 아픔이 있다.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보고싶고 그리워하던 엄마였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였다.
여수로 떠난 자흔을 따라 자신의 고향인 여수행 열차에 몸을 싣는 나를 조명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혼자를 선택하지 않고 함께를 선택한 주인공 나에게서 작은 희망의 불빛을 보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