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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시 Oct 18. 2024

낙담과 기대 어디쯤

에세이

평범한 평일 오후..  내 자리 전화벨이 울렸다. 

" 김 선생님, 잠깐 교장실로 오세요." 

무슨 일일까, 교장 선생님께서 친히 전화로 면담을 요청한다는 것은 나에게 비밀스럽고 중대한 말을 꺼내려는 신호 같아서 왠지 모를 불안이 엄습해 왔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한참을 머뭇거리시고 나서  입을 떼셨다.

"이번에 인사 교류 대상자라고 법인에서 공문이 왔어요. 내년부턴 중학교에서 근무하시네요" 


20여년간 몸담았던 고등학교를 떠나 중학교로 옮겨야 한다는 소식은 나에게 벼락같이 들려 왔다.


매해 법인 차원에서 교사 교류를  시작한터라 올해도 누군가 교류 대상이 되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막상 내가 대상이 된다는 소리를 들으니 뭐라 설명하기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나는 이곳 고등학교에서 근무한지 올해로  21년째가 되었다.

어렸을적부터 나의 꿈은 선생님이였고, 그 꿈은 한번도 한눈 판적이 없었다. 


꼬꼬마 시절, 동네 동생들과 동무들을 집 앞마당에 모아 놓고 선생님 놀이를 하는 내 모습에 엄마는 일찌감치 내가 앞으로 선생님이 될거라 확신했다고 한다.


내가 가르치는 과목은 비 수능 교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입지가 약한게 사실이다. 아무리 열심히 수업하고 열정을 쏟아도 학생들이 체감하는 과목에 대한 중요도는 그저 교양과목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한순간도 내과목에 대한 자부심을 놓은 적이 없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내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열정과 사랑은 지금껏 나를 지탱해준 가장 큰 밑거름이 되주었고 말할 수 있다.


한 선생님께서 자신도  생기부에 대한 압박도 없고, 학생 입시에 대한 부담도 없는 중학교로  가고 싶은데 보내주지 않는다며 건낸 말은 정작 나에겐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10여년 교직 시간을 좀 편히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애써 생각해보지만, 마음 한켠에선  더이상 선택 받지 못한 교과의 최후 같은  비참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나의 열정의 시간이 송두리째 부인당하는 기분이 들었고, 처음으로 고3때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는 내가 후회스러웠다.


부모님은 소식을 듣고 오히려 기뻐하셨다. 중학교에서 편안하게 남은 교직 생활을 보내라고, 지금껏 맘고생 많았다고...

하지만 나의 마음은 여전히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좋게 생각하자. 어디가나 내가 사랑하는 학생들이 있고, 내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나의 과목을 가르칠 수 있음에 감사하자. 그리고 내게 아직도 교편에 설 수 있는 건강이 허락됨에 감사하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집으로 향하는 길, 복잡했던 마음은 조금씩 정리되어 갔다. 긴 시간  한 곳에 머물렀던 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선생님들과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바탕으로, 중학교에서도 최선과 열정을 다하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새롭게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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