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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y 18. 2021

910000, 여섯 숫자에서 시작된 생일파티

영화 <이욥의 생일파티> 리뷰

by. 임소월



어릴 적 1년 중 가장 기다리게 되는 날을 손꼽는다면, 단연코 생일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그날만큼은 누구보다도 특별한 사람이 되어 친한 친구들과 가족에게 축하를 받는다. 삼삼오오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선물을 풀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다. 어릴 적 받았던 작은 선물들이 그때는 너무나 소중했으며,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로 기쁜 하루를 보내곤 했다.
 
생일이면 나의 지척에 있는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아왔기 때문에, 고향이 아닌 타국에서의 생일은 한 개인에게 더욱 감회가 새롭다. 타향살이는 곧 외로움과 본질적으로 연결되며, 생일은 그 고독을 상쇄시키거나 혹은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면에서 소개할 영화는 타국에서 생활하는 한 노동자의 생일을 같은 입장에 있는 친구들이 축하하려고 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친구의 외국인등록증 상의 생일은 들어본 적도 없는 0월 00일이다. 이 생일은 언제 축하해 줘야 하는 것일까. 그뿐만이 아니다. 0월 00일 생일, 더군다나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이 같은 생일로 친구는 잘 살아올 수 있었을까?


영화 <이욥의 생일파티> 포스터


2019 인천독립영화제, 2019 제주혼듸독립영화제, 2019 가톨릭영화제, 2019 대전독립영화제 등 무수히 많은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고 2019 유니카코리아국제영화제 입선, 2019 가톨릭영화제 장려상을 수상한 영화 <이욥이 생일파티>(2019, 배채윤)는 0월 00일이라는 생일을 가진 이욥의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욥의 공장 동료인 창청과 사미르는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에서 온 이욥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자 파티를 준비한다. 그러나 생일파티를 준비하던 도중 이욥은 사라지고 남아있는 건 이욥의 0월 00일 생일이 새겨진 외국인등록증뿐이다. 창청과 사미르는 파출소 경장 이환과 함께 이욥을 찾기 위해 외국인등록증의 생일이 어떻게 0월 00일이 됐는지 이유를 추적해나간다.


"그럼 1초 만에 birthday party를 하는 거야?"
영화 속 사미라(평화), 창청(강희우), 이환(황재열)

 외국인 등록증은 한국에 장기간 머무르는 외국인을 위한 신분증으로 이것이 있어야 건강보험 가입과 취업이 가능하며 일상에서 꼭 필요한 휴대전화도 개통할 수 있다. 이욥은 외국인 등록증이 있기 때문에 앞에 나열한 것들을 모두 합법적으로 할 수 있지만, 생일이 0월 00일이라는 이유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생년월일이 '910000'인 이욥의 외국인등록증


사미르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그가 버린 ‘910000’ 외국인등록증을 가지고 치과 치료를 위해 병원에 방문한다. 하지만 역시 전산상에 등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도리어 불법체류자가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고 경찰서에 가게 된다. 이환 경장도 이욥의 외국인등록증을 보고 믿을 수 없다며 제 눈을 의심한다. 결국 세 명은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하여 담당자를 만나지만 해당 외국인등록증에는 아무 문제 없다는 대답만 듣고 나온다.


"저 이 아파요. 이욥 불법체류자 아니에요."
"몇 번을 찾아오셔도 같은 말 밖에 해드릴 수가 없어요. 이거 정식으로 발급받은 신분증이라 문제가 없다구요."
"왜 하필 0월 00일이야?" "생일을 모르신다잖아요, 여권도 없고."

외국인등록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일이 0월 00일이라는 이유로 전산상에 등록조차 할 수 없는데 이것이 어떻게 문제가 없다는 걸까. 이욥은 이러한 부조리함에 화가 나 외국인등록증을 휴게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사라진 것이다. 정당하게 난민 지위를 얻고 등록증을 얻었지만 제구실도 못하며 이를 고칠 수도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누가 봐도 잘못된 것을 맞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세히 알려 하지 않는 담당자의 모습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취약한 상태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쩌다 보니 이욥이 되어버린 사미르. 사미르는 이욥의 생일을 고칠 수 없는 것도, 자신이 계속해서 이욥의 행세를 하며 거짓말하는 것도 싫다. 과연 사미르와 창청 그리고 이환은 이욥을 찾고 그의 생일파티를 해줄 수 있을까?


"Brother 미쳤어? 나 이욥 아니잖아! Stop Lying!"
어디선가 나타난 기자에게 끌려온 세 사람

한 편의 영화 같은 이욥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실화다. 2014년에 난민 지위를 얻은 에리트리아 출신의 요샤프가 발급받은 외국인등록증의 생년월일이 실제 91년 0월 00일이었으며, 3년이 지난 2017년도까지 변경하지 못했다고 한다. 생년월일이 91년 0월 00일인 이유는 자신의 생일을 명확히 모르고 생일을 증명해 줄 만한 서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후 법무부는 뒤늦게 번호를 고쳐주겠다고 했고 이 사소한 일을 고치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된 것이다.


"이게 영화야?" "아마도?"


영화는 실화를 유머러스하게 재구성하여 비외국인으로 하여금 좀 더 쉽게 외국인 노동자와 외국인등록증에 대해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목적이 수단이 되고, 수단이 목적이 되는 자리바꿈은 언제든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감독의 의도가 명확하게 잘 담겨 있다. 영화는 삶의 수단인 신분증이 어느샌가 사람을 판별하는 목적이 되어버린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며 풍자적인 시선을 던진다.

<이욥의 생일파티>가 단순히 사회 풍자 영화라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영화는 자연스럽고 담백하게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보기 편하고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현실 속의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는 영화처럼 담백할 수 없다. 최근 발생한 외국인 노동자 코로나 집단 확진은 방역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던 그들을 취약한 노동 현장과 생활 그리고, 불법체류로 내모는 정책에 좀 더 관심을 두게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욥처럼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마땅한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없는 우리라면 최소한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타국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 무수히 많은 이욥과, 창청, 그리고 사미르들을 위해서라도 영화 <이욥의 생일파티>를 통해 조금이나마 외국인 노동자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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