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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Feb 17. 2023

선택한 죽음, 선택된 죽음

영화 <리베라> - 이주희 감독 

안락사, 존엄사, 조력자살 등의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의 방식이 화두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누벨바그의 선구자로 대표되는 프랑스 영화 감독 장 뤽 고다르가 조력자살을 통해 생을 마감했다. 여러 기술이 발전하며 인간의 수명은 늘어나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을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늘어난 수명에 비해 이미 늙고 지친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현저히 적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방안을 찾게 되었다. 얼핏 이상적인 이야기같기도 하지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와 이에 대한 오⋅남용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어려운 이야기이다.    


영화 <리베라> 중

     

그리고 <리베라>는 내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에 대해 그린다.          

영화 <리베라> 중


가까운 미래에 사는듯한 민재는 내성적인 공무원이다. 주어진 일을 하고, 캔에 든 음식으로 영양소를 채우고, 친구의 전화를 피하고 싶어하는 그녀는 딱히 삶에 의지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영화 <리베라> 중


그녀는 선택사 관련 업무를 보는 공무원으로 곧 선택사할 사람들의 개인정보 및 신상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사에 있어 ‘리베라’라는 약물을 선택한다. 이는 세르토닌 수치가 높아 환상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영화 <리베라> 중


어느 날 민재는 선택사 일정보다 빨리 죽은 사람을 걱정하며 그 동기가 무엇인지 파악하느라 사망신고 처리를 하지 못한다. 상사는 이에 대해 질책하고 그녀는 마음에 걸리지만 못내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누군가 쳐다보고 지나간다.    


영화 <리베라> 중


그녀에게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행정 처리를 맡긴 또 한 명의 어르신이 등장한다. 그는 무력한 민재에게 마음을 쓰는 듯하다. 죽음을 앞둔 어르신은 민재에게 리베라를 건넨다. 그리고 마음이 가는 대로 해보라고 권유한다. 리베라를 거절한 민재에게 그렇다면 리베라 오너들로 구성된 프리미엄 클럽이 운영하는 ‘파이널 데이 파티’ 행사에 다녀오길 권한다. 삶과 죽음을 논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자리이며 같은 걸 봐도 이전과는 달리 생각할 것이라 말한다.         


영화 <리베라> 중


결국 민재는 파티에 참석한다. 각계각층의 높은 지위를 가진 유명인사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민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들은 민재를 위로하고 박수를 치기도 한다. 맛있는 식사시간을 즐기고 리베라를 마시는 시간이 돌아온다. 그녀는 낮에 ‘살아왔던 그 시간을 반복할 자신이 있나?’라는 질문에 마침내 결론을 내린듯하다.


영화 <리베라> 중

    

리베라를 마신 그녀는 자리에서 걸어 나와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는 이내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리베라> 중


이 모든 것을 라이브로 방송하고 있었고 방송이 꺼지자마자 함께 리베라를 마신 여인이 다시 눈을 뜬다. 모두가 한 편의 연극이었다. 오직 민재만 제외하고. 그리고 민재에게 리베라로 포장된 가짜 독약을 건넨 다정한 어르신이 이 연극의 감독이었다. 그는 앞서 민재가 일하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어르신을 비롯한 이들은 민재의 죽음을 통해 돈을 버는 악랄한 집단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죽음을 부정적 이익으로 환산한다.     


영화 <리베라> 중


이윽고 또 다른 청년이 다음 화면에 등장한다.

다음 타깃을 암시하는 듯하다.         


영화 <리베라> 중


민재는 죽기 전 영상을 남겼다. 남들은 해보고 싶은 걸 하라고 했지만 떠오르지 않고 남들이 원하는 것을 자기 것이라 착각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뭘 위해 살아가는지 알기 위해 파이널 데이에 참여하러 간다고 했다. 죽음은 정말 그녀가 원한 것이었을까, 착각이었을까. 

    

리베라(Libera). 라틴어로 ‘구원하다’, ‘자유롭게 하다’를 의미한다. 민재는 죽음으로써 자유로워졌을까.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플랜75>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선택이 자유로워지는 상황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선택하지 않음이 이상하게 여겨진다. 죽음에 대한 선택이 일종의 강요로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상적인 죽음의 형태를 논하고 있지만, 이상적인 형태의 죽음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송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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