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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심일도 채남수 Oct 12. 2024

겉사람과 속사람

인간은 너 나 할 것 없이 두 사람을 품고 산다. 겉사람과 속사람이다


속사람은 지혜와 명철로 세월과 함께 강성해 지나, 선과 악이 공존하여 갈피를 못 잡을 때가 많다


선한 행실과 악한 행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이를 수습하는 것은 겉사람의 몫이다


겉사람은 이미 저질러진 것 들을 격에 맞게 정리하고 남 보기에 그럴 사하게 포장하여 내어놓는다


그러나 겉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둔해지고 쇠 패해져서 더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속사람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가려 한다. 마치 어린아이같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나를 돌아보자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때부터 어머니가 늦게 귀가하는 날에는 내가 밥을 지었다


위로 형이 둘이나 있었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처음으로 밥 지었던 날, 어머니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감격하셨다


배가 고파 궁여지책으로 한 일이었는데 칭찬받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자 ‘여자도 아니요, 형이 둘이나 있는데, 왜 그러냐’고 속사람이 거세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런 심중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겉사람이 잘 포장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에 마당발이었다


동네 부녀회장을 도맡았고, 계주도 여러 개 맡았다


몇 달에 한 번씩 동네 어머니들을 모아서 관광을 가기도 했다


때때로 우리 집 안방이 계 모임 장소가 되었고 부녀회 회의 장소가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방안을 수시로 깨끗하게 잘 정리했다


내 이름은 ‘효자 아들’로 바뀌었다. 그 말이 너무 듣기 좋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또 속사람이 들고일어났다


여자들이 모여서 웃고 떠들고, 갈 생각도 않고, 괜스레 퍼져서 뭐 하는 짓이냐고 빈정거렸다


짜증 내고 화를 돋구었지만 겉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겉포장을 잘 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 5년 동안 반장을 도맡았다


당시 어린이 회장을 직접 선거로 뽑았는데 당연히 내 차지였다


잘 포장한 겉사람의 위약효과였다


중학교는 담임선생의 추천으로 좋은 학교를 찾아 더 큰 도시로 진출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갈등 없이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때가 많아졌다


악한 쪽으로 더 많이 하나가 되었다


대학과 군대 생활을 거치면서 겉사람은 제법 잘 포장되어 근사하게 보였다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이 태어나면서 가장으로서 살아가는 길은 이전 삶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회사 생활은 더 큰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속사람의 변덕을 겉사람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겉사람은 더 이상 그럴 사하게 꾸민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겉사람이 꾸미고 포장하는 일을 그만하겠다고 선언했다


양심이 화인 맞으면 악한 행실이 나오고 마음을 깨끗이 씻으면 선한 행실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그대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매사를 심중하게 생각하고 처신하라고 충고했다


오늘도 나는 속사람과 겉사람이 하나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양심 살려 선한 행실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진실한 삶,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2024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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