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핑 Mar 22. 2024

인정과 비(非)인정의 중첩, <제주 풀베개>

카페 <풀베개>

  내가 사는 제주의 서쪽, 대정읍에는 음악이 흐르고 문학이 머무르는 카페가 하나 있다. 이 지역의 맛집 혹은 카페를 검색하면 가장 상단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말 그대로 ‘핫플’이다. 밖에서 바라보자면 제주도 시골 마을의 고즈넉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 눈길 가는 대로 둘러보면 도시의 것들과 시골스러움, 그리고 그 두 개의 것들이 섞인듯한 어떤 특별함이 불쑥 마음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이곳을 그저 제주스러움을 간직한 멋진 카페라고 하면 사장님이 섭섭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곳은 주인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카페라고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풀베개』의 제목 그대로가 이 카페의 이름이자 정체성이다. 소설은 인정과 비(非)인정의 세계를 대립적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나코이 지역은 그 두 세계의 공존을 나타내고 있다. 제주 풀베개 역시 그러하다. 제주국제학교가 위치한 영어교육도시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그곳에 사는 나로서는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고자 이따금 동네를 벗어나 풀베개를 찾는다.

  이곳은 인정의 세계에서 몇 발자국 떠나 비(非)인정의 세계로 가는 길목에서 나그네에게 ‘쉼’을 제공하는 나코이의 온천장 같다.

  이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보자니 참으로 기이하다. 두 개의 문이 교차해야만 열리는 슬라이딩 도어인데, 한 개는 유리문이고 다른 하나는 스테인리스로 된 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는 투명하여 안과 밖을 볼 수 있는데, 다른 하나는 두 세계를 완전히 차단시킨다. 두 문이 겹치면 열림과 동시에 차단이다. 어쨌든 들어가지 않고는 정말 차단이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문으로 들어서면 마음속 자루 주머니의 밑바닥에 구멍이 뚫린다. 침전된 속세의 것들이 그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아, 이곳이라면 잠시 시인이 되고 화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우스운 생각마저 든다.

제주 풀베개의 들어가는 문



  야외 벤치에 앉아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초록으로 가득 메워진 하늘과 그 사이로 내리쬐는 빛줄기와 바람에 일렁이는 자연의 모습들이다. 가만히 눈 감으면 마치 새소리라도 들려올 것 같지만 귓가에 맴도는 것은 서양 클래식 음악이다. 묘한 공존이다.


야외 벤치에 앉아 바라본 풍경


  다시 안으로 들어가 앉아 가만히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살기 힘들게 하는 근심을 없애고, 살기 힘든 세계를 눈앞에 묘사하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유리창 안쪽에서 바깥세상을 보고 있으니 내 것이었던 근심이 한 발자국 물러나 다른 사람의 눈에서 묘사되는 기분이다. 앉아있는 동안 책을 가만히 꺼내어 읽어보다가 생각나는 글귀를 적어본다. 그러던 중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린다. 잠시의 몽롱함을 누군가 깨운 것이 아니다. 그저 꿈이자 현실이다. 그 순간 이곳이 현실세계에서 벗어난 비(非)인정의 세계가 아님을 깨닫는다.


  카페를 분주히 돌아다니는 중년의 남자가 다가온다. 단번에 카페 주인임을 알아보았다. 여행객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다.


“제주에 잠시 머물러 지내는 중이니 여행 중인 (제주) 도민이지요. 그런데 사장님은 어쩌다 제주에 내려와 카페를 시작하신 것입니까?”
  

카페 사장은 젊은 시절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 후 영국에서 사진을 공부했 현재는 사진작가이자 이 카페의 주인이다. 그는 어디로든 떠났고 어디서든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그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고 이곳을 풀베개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 카페는 분명 소설의 세계가 그려져 있는 곳이지만 카페 사장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다른 곳에서의 규칙을 가져와 살 수 없었고 속박된 것들로부터 벗어나 찾아온 이곳에서도 그러한 것들은 있다는 그의 말에서 나는 보았다.
소설 속 화공처럼 언제 어디든 자유로이 인정에서 비(非) 인정의 세계로, 비(非)인정에서 인정의 세계로 떠날 수 있는 수연방광의 자세로 삶을 대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보았다.
바람 따라 떠밀려가는 구름을 볼 수 있는 풍류를 지닌 사장은 이곳에서 지난날의 아쉬움, 그리움을 머금고 있었다.
‘아와레’를.

  카페를 나가기 위해 들어왔던 슬라이딩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스테인리스 문에서 비치는 나의 형체를, 유리문에서 흐릿하게 비치는 나의 얼굴에서 나 역시 ‘아와레’를 보았다.



가히 『풀베개』로이다.


제주 풀베개의 나가는 문



이전 13화 삶에의 회복, <부영농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