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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핑 May 16. 2024

곶자왈, 그곳에 관심이 간다 <환상숲 곶자왈>

<환상숲 곶자왈 공원>

  그저 인사 한 번 나누었을 뿐인데 관심이 는 사람들이 있다. 작년 딸의 학교에서 유난히 밝은 표정 건네주는 말 몇 마디에 담겨있던 맑은 소리와 따뜻함으로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을 보았다. 관심이 생겼다. 

  

  숲에서 일하고 있다는 그 맑은 사람은 나에게 숲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몸의 반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되셨어요. 말도 어눌해지셨지요. 더 이상 아버지의 인생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이 숲 역시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셨어요. 그리고 죽은 땅이나 다름없던 숲에 길을 만드셨어요. 맨손으로 숲길을 열어 마침내 환상숲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완치를 하셨어요. 서울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다시 제주로 왔어요. 그리고 숲에 오시는 분들에게 이 숲을 해설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에 우리 숲이  TV 프로그램에 소개되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그중에 한 중년부부가 저에게 아들을 소개해주고 싶어 하셨지요. 그리고 그분들의 아들이 지금의 제 남편이고, 그분들은 지금의 시부모님이시자 여전히 저희 숲의 왕팬이세요. 이 숲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는 셈이지요.


  어느 따스한 가을날, 그의 가족이 일하고 있다는 숲에 초대를 받았다. 이토록 순수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는 숲은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아이와 함께 숲을 방문했다.


  숲 입구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숲 놀이터가 있다. 바스라바스락 나뭇잎 밟는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따금 들려오는 딱따구리 소리가 꿈속의 모습 같다. 아이들은 숲 해설사 선생님을 따라 숲 체험도 하고, 숲 속 작은 교실에서 화분 만들기 수업을 들었다. 꽤나 긴 코스였을텐데 아이는 다리 아프다는 말은커녕 행복했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어떤 놀이터보다 재미있었을 것이다.


  이곳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겨울의 소식을 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딸아이 학교에서 환상숲으로 필드트립을 가게 되어 룸맘인  봉사 도우미로 참여하게 되었다. 혹시 넘어질세라 꼬마들의 손을 꼭 잡고 함께 숲을 걸었다. 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도토리와 나뭇잎을 줍고, 돌이 가득한 숲의 따뜻함 속에서(신기하게도 이곳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영상 15도이다) 숲을 마음껏 둘러보았다. 꼬마들 눈높이에 맞추어 해설해 주는 맑은 목소리 아이들의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나게 했다.


  추운 겨울이 지 늦은 봄, 번에는 남편과 둘이 방문하게 되었다. 써 세 번째 하는 걸음이지만 계절이 바뀐 이 숲의 모습 이름처럼 환상적이다. 나는 오늘에서야 이 숲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설사 선생님의 말대로 하늘에 별이 가득 보였다. 초록색 단풍으로 메꾸어진 하늘, 그 사이로 햇살과 함께 반짝반짝 초록별이 가득했다.

환상숲에서 바라본 초록별

  흙도 없는 돌무더기에서 갖가지 식물이 자라난 이 숲의 장관을 바라보며 감탄하다가도 이 숲에서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을 보면 이내 숙연해진다. 아니, 너희는 하필 흙도 없는 곳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냐. 그러나 나무 기둥을 받치고, 가지마다 잎을 틔어내기 위해 바위를 꽉 움켜쥔 나무뿌리는 이 숲을 일궈낸 아버지를, 나의 부모님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어떤 시련에도 굳세게 일어나는 인간, 자식을 위하는 부모들이 내는 힘의 원천에는 개인의 의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었으리라.

 

돌을 움켜쥐며 단단히 내린 뿌리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있으니, 아까 숲의 바닥에 떨어져 있던 때죽나무의 꽃이 생각난다. 하얀 모습으로 바닥에서 인사를 건네던 그 꽃, 내년 봄에나 만나려나. 그러다 보니 숲에서 반갑게 맞이해 주던 그 맑은 사람도 덩달아 생각난다.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숲으로, 숲이 담고 있는 이야기로, 삶의 의미로 나아간다.  


 아, 그 숲에 자꾸 관심이 간다.

바닥에서 내게 인사를 건네는 듯 했던 떼죽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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