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새벽 4시에 일어난 일
"00아, 일어나. 언니가 사망했대."
새벽 4시경 경찰의 전화를 받고 나를 깨우는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에 눈을 뜨게 되었다. 2014년 3월 27일,
그러니까 언니의 30번째 생일 언저리 그즈음이었다. 나는 군청색 패딩을 급하게 걸치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갔을까, 외할아버지 산소가 위치한 안산 그 어디쯤 언니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차 뒷자리에 쓰러져 있었던 언니의 모습을 보게 되면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는 직감 후 그 모습을 보지 않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가까운 친척들에게만 전화를 돌리고 인근 병원에서 하루 만에 장례를 치렀다. 떠나가는 언니가 가는 길이 덜 외롭도록 몇몇 친구들도 불렀다. 그렇게 장례식장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옆에 함께 누워있던 엄마에게 나는 말했다.
"엄마 잘못이 아니야... 엄마는 최선을 다했어. 내가 알아."
"00아, 나는 서른이 되면 이 세상을 떠날 거야."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언니가 나에게 자주 하던 말이었다.
늘 힘없이 허공을 바라보며 뱉곤 했던 그 말을,
실제로 실행할 만큼의 용기가 나는 언니에게 없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온 후에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에 나는 것은
우리 집 강아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언니 방에서 내내 웅크려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가까운 지인에게 부고 소식을 알렸고 잠드는 게 무섭고 힘들어 한동안 새벽에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나야 겨우 잠에 들었으며 살이 많이 빠졌다는 것이다. 그 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고 새롭게 일을 시작했으며 결혼도 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 후,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동안 나는 통역사로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2017년 12월이었다. 인도네시아로 출장 중이었는데 어느 유명 K-pop 남성 그룹의 멤버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해외 TV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출장 중이던 2019년 10월, 나는 인도에 있었다. 하루 종일 통역을 해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쓰러질 듯이 피곤했는데 핸드폰을 킨 후 접한 어느 K-pop 걸그룹 멤버의 자살 소식. 나는 25이라는 그 나이가 너무나 아까워서 침대에 머리를 대자마자 뻗을 것 같았지만 쉬이 잠들지 못했다. 너무나 허망하고 안타까워서 꽤 오랫동안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후로 꾸준히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유명 연예인, 공인 등의 자살 소식을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자살률 1위를 차지한다는 오명은 이미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자살자와 연관된 자살 유가족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한 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자살 유가족의 수가 130만 명에 달 한다고 한다. 130만 명이면 거의 대전광역시의 인구수에 맞먹는 숫자이다. 이 많은 자살 유가족들은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이들 중 본인의 사별 이야기를 편하게 꺼낼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많은 이들은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자책하며 지내고 있을 것이고, 충분한 애도 과정을 거치고 다시 삶의 희망을 향해 걸어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남겨진 자의 몫이다.
꽤 오랫동안 어떻게 하면 내가 자살 유가족을 도울 수 있을까, 나와 같은 아픔과 슬픔 혹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왔다. 유튜브를 해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얼굴이 팔릴 자신이 없었다. 거창한 플렌을 세워보려 했으나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다 'Sharing is caring'이라는 문구를 떠올리며 그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아픔을 나누는 것이
다른 이에게는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마음에서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자살 유가족자를 대표해 지난 10년간 겪어왔던 사회적 시선과 과정,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야기를 비슷한 아픔과 고통을 겪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더 나아가서 실질적으로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우리 사회가 자살 예방을 사회적 차원에서 막기 위해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아픔이나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이고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연재를 시작할까 한다. 나의 책을 통해 한 명에게라도 우울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살을 막으며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우리 언니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You are not al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