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애도가 중요하다
그렇게 한 달이 흘러 5월이 되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그날의 공기를 떠올려본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변사람들에게 한 명씩 언니의 부고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사실 이런 난감한 일을 겪은 사람에게 쉽게 건네줄 수 있는 위로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할까?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도 쉽사리 위로랍시고 어떤 말을 쉽게 꺼내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그 어떤 말도 당사자에게는 쉬이 위로가 되기 힘들 것이다.
나에게 그 당시 가장 상처가 되었던 말은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야"라고 건네준 말이었다. 지금은 그 말이 나를 위로해 주고자 했던 말임을 이해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정말 모든 것을 해결해 줄까? 네가 이런 일을 겪어봤어?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거 아니야? 이게 위로랍시고 하는 말인가..."
차라리 나에게 솔직하게 "나도 마음이 아프구나. 위로에 말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해 주렴. 나도 너랑 같이 마음 아파할게."라고 해준 공감의 표현이 나에게는 조금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마다 치유에 필요한 시간은 각기 다 다를 것이다. 몇 달이 될 수 도 있고, 1년이 될 수 있고, 3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 어떠한 방식으로 사별을 했던 상실과 이별을 겪는 사람들은 애도의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애도란 잘 떠나보냄을 의미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는 심리학 분야에서 유명한 임종 연구 분야의 개척자로서 애도의 5단계 이론을 창시한 분이다. 흔히 상실을 겪은 사람은 다음과 같은 5단계를 거친다. 다만 이는 순차적으로 진행되거나 점차 진행되는 것이 아닌 우울이나 부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섞여있기도 하며 때로는 우울 단계에서 다시 분노 단계로 퇴행되기도 한다. 결국 좋아졌다, 나빠졌다 등의 굴곡을 거치면서 기능을 점차 회복하게 된다.
1단계 부정
나에게? 사실이 아니야!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믿을 수 없는 부인 단계는 혼란스럽고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인다.
2단계 분노
부인 단계에서 현실을 자각하게 되면 “왜 이런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분노를 표출하게 되고 분노의 대상은 자기 자신, 타인, 신 등 다양하다.
3단계 타협
이 단계에서는 ‘죄책감’이 핵심 감정이며 혹시 “내가 이렇게 했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찾아 자책한다. 사후세계를 믿을 경우 신과의 관계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을 협상하려고 한다.
4단계 우울증
부인, 분노, 협상하기 단계를 거치면서 에너지를 많이 썼기에 이 시기에는 기능이 저하되고 무기력해지면서 우울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 슬프고 공허한 감정이 깊게 파고든다.
5단계 수용
부정적인 정서에서 이제 모든 것이 괜찮다고 말하는 수용의 단계로써 현실을 인식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마음이 고요해진다.
정상적인 애도 반응은 충격차원에서 현실로부터 회피하지만 점차 직면차원으로 들어가 현실에 직면을 하면서 새로운 현실로의 조정차원을 거친다. Noel은 건강하게 애도를 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출처: 한국트라우마연구교육원).
☑ 슬프더라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솔직하게(언어로) 대화한다.
☑ 자신의 기본 욕구들을 잘 챙길 수 있다.
☑ 상실이라는 현실을 수용한다.
☑ 종종 자기 파괴적인 생각들을 하더라도 그 생각들을 빨리 보내고 중요한 것에 집중한다.
☑ 건강하게 분노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 당신의 세상이 변화된 것, 그 변화로 인한 슬픔을 알며 그것이 가져오는 것들에 대해서도 열려있다.
☑ 자신의 감정들을 바라볼 수 있다
▮ 치료가 필요한 애도(병리적인 애도)
사별은 삶의 경험 중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되는 사건 중 하나이다. 비애 반응은 슬픔, 피로, 우울, 충격, 분노와 죄책감, 수면 문제나 섭식 문제를 동반하며, 사별로 인해 외로움, 고립감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정상적인 비애와 병리적인 비애는 연속선상에 있지만 그 영향이나 강도, 시간을 기준으로 보면서 병리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데(Worden) 병리적 비애는 6개월 이상일 경우 치료가 고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