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이 오면
미국의 유명한 작가인 T.S.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가 있다.
이 시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4월의 찬란함과 비통함을 동시에 대변하는 이 시를 꽤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하다가 이해하게 된 것이 3월 말 언니가 떠난 뒤 4월의 주인공들이 얼굴을 내밀었을 때이다. 4월 초에는 개나리와 벚꽃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진달래, 철쭉 등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내가 큰 일을 겪기 전까지 봄은 그저 드디어 추운 겨울을 끝내고 마침내 개화되는 마냥 기다려지는 아름다운 계절일 뿐이었다.
하지만 2014년 그해 4월은 유난히 잔인했다.
벚꽃이 팝콘처럼 피어나고 모두가 여의도 윤중로로 향하던 그때, 꽃축제를 모두가 즐기던 그 봄이 그렇게
잔인하게 느껴졌던 때가 없었다. 모두가 흐드러진 꽃을 보며 얼굴에 미소를 띠고 오래간만에 따듯해진 날씨를 즐길 때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밤에 쉬이 잠들지 못하며 새벽을 꼬박 세고 동이 틀 때면 그때야 잠들기 시작했다. 기억을 상기해 보면 그래도 밥은 먹으면서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찬란하던 2014년 봄은 나에게는 칠흑같이 어둡고 잔인한 4월로 기억한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희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야 할 4월이 가장 잔인한 4월이 되어버렸다.
나로서는 그 해 4월에 내가 느끼는 감정을 16일 이후 모든 국민이 느끼게 되었다. 그것이 어찌 보면 정말 솔직하게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찬란하던 봄 혼자 슬퍼하던 나의 마음에 공감을 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내가 회복을 조금 더 빠르게 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T.S. 엘리엇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은 겪어본 사람만이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진정 알 수 있게 된다. 찬란함과 잔인함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그 양면성을 말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세상의 이치가 모두 그렇다. 위기는 기회와 동전의 양면과 같듯이, 명과 암도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하나로 존재하듯이,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어둠 없는 빛, 밤 없는 낮, 석양 없는 새벽, 불완전 없는 완전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시 내가 일기장에 적어놓았던 문구이다. 비극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내가 겪은 사건 또한 앞으로 어떠한 빛이 될지 모른다고..
그 당시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이런 일을 겪으니 사람이 솔직해지고, 온전한 나 자신이 되는 것 같았다. 잔 걱정도 사라졌다. 내가 한가득 안고 있던 걱정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졌다. 지금도 가끔 쓸데없는 걱정들이 나의 머릿속을 잠식할 때면, 나는 그때를 떠올린다. 생과 사의 갈림길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의 사소한 걱정을. 아마 홍대입구 역 근처였던 것 같다. 지하철 입구를 나와서 길거리를 나서다 나는 갑자기 주변의 걸어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 잠시 지구의 대지 위에서 살다 떠나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정말 찰나의 시간만 머물다 가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살아있는 시간이 찰나라는 것을 느끼고 나서부터 더욱 가족을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슨 정신이었는지 나는 그 당시 NVC 교육을 들으러 다녔다. NVC는 Non-Violent Communication의 약자로 우리말로 비폭력대화법이라고 한다. 아마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미리 등록되어 있던 것 같다. 심리학에서는 비폭력대화법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데, 이 또한 우울증 환자를 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왜 이전부터 듣지 않았는지 후회가 많이 됐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웃음을 짓지도 못한 채, 그 해 4월의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