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 언니로 인한 가족의 분열
2013년이 끝나갈 무렵, 회사에 하루 휴가를 쓰고 2박 3일 동안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로부터 휴식이 필요했다. 목사님도, 상담사도, 딱히 이렇다 할 방안을 내놓지 못한 문제에 스님은 뭐라고 하실지 궁금하기도 했다. 별 기대 없이 간 그곳에서 어두컴컴한 밤하늘 아래 난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스님은 그래도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책도 제시해주지 않았던 실용적이고 새로운 조언과 좋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중에서도 인상 깊게 남았던 말이 평범함이란 평범하지 않은 것을 지나 찾는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지 않고도 평범한 삶을 누리는 이들이 부러웠다. 평범한 가족, 평범하다 못해 화목하고 유복한 집안의 아이들이 내 주위에는 대부분이었다. 나에겐 아픈 언니가 있다. 몸이 아픈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아프다. 그것도 아주 아주 많이 아프다. 집안에 환자를 데리고 있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모른다. 내 기억을 더듬어보면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난 똑같은 문제로 걱정하고 고민했다. 다만 그 시간 동안 난 저 멀리 타지에 있어 그 고통을 1년의 아주 일부분의 시간만을 함께 겪었던 것일 뿐. 8년 동안의 타지 생활. 누군가에겐 배부른 소리로 들릴까 이런 얘긴 잘하지 않지만, 어린 나이에 홀로 타지에서 살아남는 데 얼마나 외롭고 힘든 순간이 많았을까. 그렇게 모진 시간을 보내고 매번 남몰래 눈물을 훔치면서 그리워하던 내가 돌아온 ‘집’ ‘가족’이라는 곳은.. 내게 타지보다 더 가혹한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곳이었다. 하숙집보다, 기숙사보다, 자취방보다, 살기 힘든 곳이라는 것은 내가 쉬이 인정하기엔...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언니의 증세는 밤이 되면 항상 더욱 심해지곤 했는데, 너무 극단적으로 악화되어 잠을 설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마침 참 어렵고 신경 예민해지는 공부를 대학원에서 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그것은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매일 오늘은 내가 편히 잠들 수 있을까 하는 극도의 긴장과 불안한 상태에서 잠들게 되었고, 급기야 언니가 세상에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저렇게 죽는 것보다 못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 정도로 나와 우리 가족은 언니로 인해 분열되었고,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너무나 큰 고통을 겪었고, 결국 그 고통은 나에게 상처가 되었고 죄책감이 되었고 무거운 짐이 되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내가 이해해야 했고, 내가 덜 아픈 사람이니까 내가 품어줘야 했고, 견뎌야 했고 이겨내야 했다. 핏줄이기에 언니의 치부를 내보이면서까지 남에게 내 이야기를 하기가 힘들었다. 어차피 가족일은 가족끼리 해결할 수밖에 없을 뿐, 난 그렇게 속으로 썩고 문드러지고 곪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견디고 버티고 또다시 4년이 흘렀다.
지난 4년 동안 내가 느끼고 거쳐간 감정과 과정을 모두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이제는 말로 형언할 수 힘든 그 시간들을, 그러니까 난이래요 저래요 말할 힘조차 나에게 남아있지 않다. 왜 우리 집에 이런 불행이 닥쳤는지, 왜 언니에게 어렸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런 건 이제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인생에 누구에게나 불행과 시련이 찾아오고, 내 힘 만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쩔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만을 생각해야 하니까..
언니가 언제 좋아질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아팠던 기간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우리 집 사람들 모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게 살았다. 그래도, 졸업도 하고 취업도 하고 그 시간 속에서 행복도 느끼며 살았다.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 했으니까..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이제는 더 이상 이 일로 힘들어하고 싶지 않아서다. 떠나보내고 싶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오늘도 내 인생에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겠다는 나의 의지의 표출이며 선언이다. 언니를 연민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내 마음은 금세 비참함으로 바뀌겠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대한 긍정적인 면을 보고자 한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도적처럼 임하겠지, 인생에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 한창일 나이에 겪었으니 나의 말년은 얼마나 편하고 좋으려고 이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란다. 그리고.. 나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신에게 맡기고자 한다. 이제는 정말 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실 때가 된 게 아닐까?
성숙한 인내, 그게 참 어렵다… 이제 봄이 오듯이 내 눈물이 모든 걸 녹여, 언젠간 꽃피어 열매 되기를. 오늘날 이 혹독한 시련이 헛된 시간이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