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네 개의 타투가 있다. 이 중 두 개는 하얀색, 나머지 두 개는 팔뚝 여린 살에 적힌 레터링과 손목을 두른 얇은 색띠이다. 이들은 모두 내가 짙은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고 있을 무렵 생겨났다.
You are an art 라는 문구를 새겼었다.
이 년 전, 불현듯 타투를 한 채 병원을 찾자 당시 날 우울증으로 진단하셨던 선생님은 혹 조증 증상은 아닐까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조울증일지도 모르니 지켜보기로 한 이유에서다. '갑자기?'라는 선생님의 질문 앞에 나는 확실히 평소보다 더 밝고 예쁘게 차려입은 상태였다.
햇빛이 비치던 어느 봄날 침대에 앉아 울던 중 양손과 얼굴이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해 거울을 보자 조금은 이상해진 표정이 눈에 들어왔지만, 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잠시 뒤 저린 손과 얼굴이 돌아왔고 나는 무언가 심각함을 느꼈다. 그렇게 동네의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한동안 공릉의 작은 신경정신과를 다니며 언뜻 수면장애와 우울증이 나아지는 것도 같았으나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 나는 점점 술과 새벽에 빠져들었고 약에 취해 잠이 들거나 오래 병원을 찾지 않았다. 어떤 새벽은 레오의 존재를 잊고 옥상으로 올라간 적도 있다.
그런 내가 그나마 버티게 된 것은 신도림에서 또 다른 의사 선생님을 만나면 서다. 간만에 찾아온 우울 에피소드로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평온한 목소리로 '겨울이라 그래요'라며 웃어 보이는 그는 신기하리만치 태평하다. 그리고 그 태평함은 폭력적이지 않다. 그냥 늘 그 자리에 있는 태평함 덕에 새 약을 받기 전 5분이 채 되지 않는 진료 시간 동안 덩달아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다.
알록달록하던 왼쪽 손목의 타투.
다시 스멀스멀 우울함이 찾아오는 지금, 나는 손목의 타투를 지우고 있다. 지난주 레이저를 받고 생긴 딱지가 하나둘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여덟 번에서 열 번 정도를 반복하면 깨끗이 지워진다고 한다.
손목에 그어진 색띠는 짙은 하늘, 연보라, 분홍색으로 이루어져 이질적 이리만치 눈에 띄었다. 혹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무슨 의미로 한 거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한결같이 밝은 톤으로 똑같이 대답했다. '예뻐서!' 그러면 다들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섰다.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인에게 진짜 이유를 말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노라고.
술에 취해 엉엉 울던 수많은 새벽녘 중 어떤 새벽의 나는 손목을 긋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물끄러미 내려다보거나 실행에 옮기려 한 적도 있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술을 찾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잠시 밝아진 어느 날의 나는 다시 우울해졌을 때의 내가 손목을 내려다볼 때 그 생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렇게 내 몸 위에 마지막 타투가 생겨났다.
처음엔 작은 세미콜론 모양을 그릴 요량이었다. 세미콜론은 글쓴이가 문장을 끝낼 수 있지만 끝내지 않을 것을 나타내는 기호다. 잠시 끊었다가 다시 설명을 이어갈 때 등장한다. 때로 바닥을 치는 내 마음도 내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재밌게도 이 감동적인 의미의 타투는 타투이스트에게 반려당했다. '유행을 타서' 해줄 수 없다나. 포기가 쉬운 나는 인스타에서 본 알록달록 파스텔톤 타투를 찾아 '여기 있는 세 가지 색으로 색띠를 둘러 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생각한 것처럼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내려다봤을 때 예쁜 게 눈에 들어오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채 1분도 고민하지 않았다.
함께 지내게 된 작은 표식이 정말 날 지켜주기라도 한 것인지 그 시기를 지나온 나는 더 이상 술에 의탁하지 않고 마음의 병을 다루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타투를 결심한 순간이 짐짓 흐려질 만큼 잘 지내고 있었던 것도 같다. 그랬던 내가 다시금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그것이 물리적으로 옅어져 가고 있어서다. 타투를 지우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새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뻤던 색만큼 지우는 고통도 세배다.
나는 지금 이 타투가 제 역할을 다했다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과 다시 또 그런 바닥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한참 뒤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할지에 대한 작은 기대감에 휩싸여있다. 이 모든 것 중 가장 큰 위압을 가진 두려움이 나를 잠식하기 전에, 차분히 앉아 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같은 말을 연인에게 전하자 그동안 나를 지켜준 타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보내주자고 했다. 이제는 그와 레오가 나를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가장 마지막에 나를 지켜줄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그와 레오를 포함해, 가장 마지막 순간의 내가 무너지지 않게 돕는 수많은 것들을 떠올리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