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벗어놓고 가신 옷
대부분 불살랐지만
차마 태우지 못한 겨울 코트
십여 년 묵은 겨울 코트
장롱 속 혼자 있는 동안
뒷방 늙은이처럼 혼자 늙어서
등판이며 앞자락, 소매까지
까칠까칠해진 겨울 코트
의류 수거함에 넣기도 뭣하고
새삼 불에 넣기도 뭣하여
동파 방지 수도 계량기에 둘렀다
어른이 입던 옷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계량기 구석구석 단속하여
단추까지 채웠다, 누가 봤으면
진즉 태워버리지 가지고 있었냐고
혀를 찰지도 모르는 아버지 코트
물끄러미 바라보니
한파에 수돗물 얼고 보일러 터져
언 방에서 동태 되지 말라고
아버지가 수도 계량기를 감싼 거다
돌아가신 지 십 년 되었지만
이 집 가장은 아직 아버지인 거다
계량기 뚜껑을 닫고
하늘 멀리 바라본다, 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