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 지는 저녁 어스름까지
엄니는 밭을 맨다
삼십 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해온 나는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시간 됐으면 퇴근해야지
슬근슬근 톱질하듯 호미질을 하다
뒷짐 지고 밭둑으로 올라선다
매던 고랑이라도 마저 매야지
또 저 지랄이네
엄니가 노할 때마다 나는
귀머거리 삼 년 과정을 이수 중인
착한 며느리다
달빛이 선명해진다
개밥바라기 별도 떴다
코딱지 어린 내가 한달음에 올랐던
바위배기 소나무 숲도 어둑하다
어디서 본 듯한 흑백의 시간들
사진첩 넘기듯 바람 분다
얼마나 남았을까
엄니와 지지고 볶을 시간
엄니는 여전히 밭을 매고
나는 퇴근 담배를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