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이르러 남긴 말
신임하사가 유서를 썼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솔직히 여기까지 오면서 대령상과 2스타상을 거머쥐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컸다. 최고의 스타트였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대를 떠안고 조직 내에서 에이스가 되고 싶은 욕구, 즉 성취욕이 굉장히 강했다.
그렇게 새로 옮긴 팀에서도 최고로 잘하고 싶었다.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부응하고, 우려하는 사람에게 시원한 반전을 선사하고 싶었다. 큰 꿈을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근무가 끝나가던 밤, 2팀장이었던 모 대위님이 나를 불렀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요. 본인 이제 OOO에요. 김 하사 선배들하고도 얘기해서 결정한 거니까 잘해봅시다. 내일 바로 2팀으로 오면 돼요. 이거 초고속 승진이야~
팀원 한 명이 전속을 감에 따라 팀원들의 임무가 좀 조정되었는데, 그 빈자리에 원래 올리려던 선배 말고 나를 올리겠다고 했다. 이유는 가르치면 잘 따라오고 바로바로 느는 것 같으니 이참에 더 키워보자는 취지였다.
놀랍고 걱정되었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이전 팀에서 여기로 온 지 1달 만에 나를 좋게 봐주시고 통 큰 결정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근데 문제는 진짜 그 임무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내일부터 하라는데, 어떡하지? 슬슬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렸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긍정적인 의미로 '이례적인' 막내가 되고 싶었다.
다음날, 첫 출근 날 만큼이나 떨리는 마음을 이끌고 나의 새 자리에 앉았다.
예상했던 대로 이전에 하던 임무와는 결이 많이 달랐고,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지식 외에도 일하는 센스가 굉장히 중요한 임무였다.
그저 영락없는 허수아비였다. 가뜩이나 긴박한 MCRC의 임무 중 비행안전과 직결되는 자리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앉아가지고 어리버리하고 있으니 슬슬 주변 사람들의 언성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뱉는 말 하나하나 모두 지적 대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뭔가 해보려고 해도 눈치가 보이고, 눈치 보다 뭘 놓치면 빨리 안 하냐고 재촉받기 일쑤였고, 그러면 마음이 급해 또 실수하고. 악순환이었다.
더 힘들었던 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얘 뭐야?', '얜 누군데 여기..'라고 중얼거리며 지나갈 때마다 괜히 더 위축되었다.
그런 나를 좀 감독해 주러 온 선배들은 내가 어디까지 알고 앉은 건지 모르니 이것저것 물어보시는데 나는 대답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의 의구심이 더욱 커져가는 게 느껴졌고, 수치스러웠다.
그렇게 자존감은 계속 떨어지고, 공부를 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그러다 보니 퇴근을 해도 다음 근무가 두려워지고, 출근 전날엔 부담감에 가슴이 두근거려 잘 수가 없고, 극도의 긴장으로 인해 밥맛도 없어 공복으로 출근하기도 했다.
한 달 정도 지났던 어느 날, 정말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그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되자 '너는 그럴 거면 거기 왜 앉아있냐'며 혼나고 있었다. 그대로 앉아서 아까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야금야금 조금씩 쌓아 올린 평판이 어느 날 갑자기 맡은 임무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걷어차여 일순간에 이미지가 낭떠러지에 처박혔다는 상실감에 나는 그 자리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쌓였던 것들이 드러난 것이다.
열심히 피드백을 해주던 선배의 말을 끊고 '저.. 잠시 화장실 좀..' 메인 목을 꾹꾹 눌러 겨우 말씀드리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 복도. 잰걸음으로 얼른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닦아냈다. 하.. 눈이 새빨간데 이거 작전실로 어떻게 돌아가야 하나.. 막막했다.
그 후 돌아간 작전실에서는 경황이 없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선배는 '지금 너한테 과중한 일이 맞다. 못하겠으면 말해라. 지금 너의 수준에 맞는 임무를 주겠다'라고 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아래에서부터 기초부터 천천히 밟아 올라오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나 때문에 매일 많은 선배들이 달라붙어 나를 교육해주고 있었기에 이걸 뿌리치고 못하겠으니까 바꿔달라는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았고,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비참한 퇴근길은 또 없을 것이다. 잠도 거의 못 자고, 밥도 거르고 출근해 된통 혼나고, 쌓였던 게 터져 눈물을 훔치고, 못하겠으면 말하라는 굴욕적인 제안까지. 몸도 몸이지만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만신창이였다.
내 방에 돌아와 쓰러지듯 누웠다. 그리고 바싹 말라비틀어진 입을 떼며 무의식적으로 진지하게 속삭였다.
죽고 싶다..
불규칙한 수면과 부적절한 식습관으로 인한 신체능력 저하에 이어, 기량 대비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그걸 잘 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 죄책감,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볼 낯짝이 불거졌다고 여겨 생긴 대인기피까지.
이 조직은 내가 큰 자부심으로 몸 담고 있는 나의 전부였는데, 그곳이 지옥으로 느껴지고, 사람들의 눈을 볼 수가 없고, 이 일을 해낼 자신이 없고, 불과 몇 개월 전 상을 받으며 누렸던 영광은 물거품이 됐고.. 아, 그냥 대학교나 계속 다닐걸. 지나온 삶을 총체적으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 모르겠고, 다 끝내고 싶었다.
죽어야겠다.
죽기로 결심하자, 야속하게도 기분이 너무 홀가분해졌다. 이제 다 끝난다는 생각에 웃음이 막 났다. 너무 짜릿해서 미친 듯이 웃었다.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 이제 다 끝난다.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로 끝이다.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밤 죽는다.
죽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구체적인 방법을 결정하기까지 정말 몇 분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숱하게 들어온 자살예방교육에서 들은 것과 같았다. 많은 강사님들이 알려주신 내용이지만, 아쉽게도 골든타임은 지난 듯하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그래도 남은 사람들이 당황스러울 테니 유서를 써두려고 한다. 생각나는 사람들을 한 명씩 떠올리며 하고 싶은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휘갈겨본다. 문맥이고 뭐고 필요 없다. 어차피 난 이거 쓰고 죽을 거니까.
이제 나를 옥죄어 오던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에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간 유서는 순식간에 종이 2장을 가득 채웠고, 다 쓰고 보니 유서에는 언급하는 사람마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뿐이었다. 미련한 새끼.. 마지막까지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나.
유서를 쓰는 내내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언제쯤 세상에 알려질지 예상해 봤다. 오늘은 밤이 너무 늦었고, 내일? 아니면 모레? 늦어도 출근해야 하는 아침에는 발견되겠지. 나는 어떤 표정일까. 사람들은 어떤 표정일까.
나는 나를 처리하기 쉽도록 출입문과 창문은 잠그지 않았다. 유서는 문을 열면 바로 발견되게끔 책상 위에 올려뒀고,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신발장을 열었다.
나는 전투화 끈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