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보험 만기해지

1년 만에 진급하는 이유

by 재룬

특기 초급과정 수료

작전가능교육 수료

1MCRC 전입

실무적응교육 수료

한미연합연습 파견

심지어 장교 후배까지 왔음에도..

한 가지 허전한 게 있었다.


근데 왜 아직 소위지..?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1년. 뭘 엄청 많이 한 거 같은데, 저 많은 걸 하는 동안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고? 이거 거짓말이다. 나 계속 막내 시키려고 나라에서 날 속이고 있는 거다. 이거 말 안 된다..


지난여름만 해도 소위 계급장이 조그맣지만 뚜렷하게 장교임을 나타냈기에 내심 참 소중했는데. 중위 달기 직전이 되자 슬슬 소위 계급장이 질릴락 말락하고 있었다.


통신보안, 1MCRC 김○○ 소위입니다.


전화를 받을 때도 스스로를 소위라고 소개하는 것에 조금씩 싫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상대방이 혹시 소위 말을 못 믿지 않을까 싶어 괜히 물어보지 않은 것도 보여주기식으로 술술 답변해 드리는 등 암튼 무시받지 않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사실 아무도 무시 안 했는데 지 혼자 피해의식을 느낀 걸지도 모른다.


사실 중위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지식과 권위, 업무에서의 신용등급(?)이 확 올라가는 것은 아닌데.. 왜 그랬을까? 그땐 그렇게 느껴졌다. 우리 김 소위, 참 유치하게도 살았네.


5월 넷째 주 무렵엔 주변에서 '김 소위님~' 하고 부르면 '하.. 소위 아닌데 이제..' 라는 마음도 들었으나 건방지긴. 아직 일주일이나 더 소위라고 불려야 했다. 그게 나로 하여금 더욱 감질나게 했다.


행정상으론 6월 1일 부로 중위가 된 것으로 처리되지만 그날은 토요일이라 진급신고는 하루 앞당긴 5월 31일에 하게 됐다. 소위를 달았던 임관식도 5월 31일에 했는데. 정확히 만 1년을 꽉 채워 중위 계급장을 달게 됐다. 우연의 일치와 의미부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꽤 만족스러운 날짜였다.



중위 다는 날 아침이 밝았다. 뭐 전혀 피곤하지 않구요. 깨끗하게 씻고 피부에 차갑게 달라붙은 와이셔츠, 살짝 까슬한 정복 바지, 푸른 넥타이와 까먹기 쉬운 핀까지 챙기고. 그리고 대망의 중위 계급장이 달린 정복 상의를 휘리릭 걸쳐 입고 집을 나선다.


사실 오늘 신고식에는 중위 진급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위 진급하시는 선배들도 있고, 자신의 소임을 마치고 전역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그 말인즉슨, 진급신고 현장에서도 우리는 막내.. 마냥 좋다고 방방 뛸 수는 없다. 그건 나가서 우리끼리 따로 하는 걸로.


전대본부에 가서 미리 대기하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께서 속속들이 도착했다. 전역 전 휴가를 길게 나가계셨던 선배들과 근황 토크도 하고, 평생 중위이실 것만 같던 선배들의 어깨에 달린 다이아몬드 3개짜리 대위 계급장이 부러워서 멍하게 구경하기도 했다. 장난기 가득한 선배도 어깨에 대위 계급장을 얹으니 사람이 좀 달라 보였다.


그렇게 왁자지껄 했던 전대본부. 행사를 진행해 주실 중사님이 오시고 다 같이 리허설을 하게 됐다. 전역 및 진급 대상자가 30명에 육박하다 보니 차근차근 순서를 맞춰보고, 신고 후에 전대장님과의 기념사진 촬영을 하러 나가는 동선도 점검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전대 참모께서 전대장님을 모셔오러 나가셨다.


늘 그렇듯 '음 그래.' 하며 등장하신 전대장님. 은은한 미소와 '어우 많다 많아' 하고 외마디 중얼거리시며 행사장 가운데에 자리하셨다. 대위 진급자들부터 먼저 하고 다음이 우리 중위 진급자들 차례. 반짝반짝한 계급장으로 신고를 드리자 전대장님은 바글거리는 인원수였음에도 한 명 한 명 눈 맞추고 악수하며 축하한다고 해주셨다.


그렇게 신고를 마치고 전대본부 입구로 이동해 전대장님과의 기념사진 촬영. 군대 국룰 포즈인 화이팅과 손가락 하트를 한 번씩 찰칵하고 흩어졌다. 이제 직속상관에게 신고를 드렸으니 어디 소개할 때 중위라고 할 수 있다..!


정식으로 다이아몬드 2개짜리 계급장을 달았으니, 이제 소위 버프는 해제됐다. 소위는 조금만 잘해도 칭찬받지만, 중위는 앵간해서 칭찬받기 힘들다. 소위는 많이 못해도 괜찮다는 말을 듣지만, 중위는 못하면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다.


그렇게 1년 동안 나를 잘 감싸줬던 소위라는 그 보험의 만기해지. 물론 기분이야 좋았지만 그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더욱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제 그 든든하던 '까임 방지권' 또한 만료되었으니 말이다.



하사로 근무하던 시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임하사 - 신임소위 관계로 처음 만난 장교분들과 지내다 보면 똑같이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여전히 하사였지만 그 신임소위분은 대위(진)이 되어 있었다. [(진): 진급 예정자]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장교와 부사관, 물론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신분입니다만, 그래도 1년 1년마다 소위, 중위(진), 중위, 대위(진), 대위까지. 단 3년이면 소위 분은 대위가 되어있는데 나는 여전히 하사라니. 어린 마음에 그게 좀 부럽고 상대적 박탈감이 약간 들긴 했었다.


이제 거꾸로 내가 그 1년 만의 진급을 경험해 보니 소위를 1년 만에 중위로 진급시키는 이유,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답을 찾고 싶어졌다. 물론 군 인사법상 어떠어떠한 조항에 근거했다는 그런 삭막한 이유 말고, 마음이 움직일 만한 그런 이유 말이다.


부사관은 대부분 실무자다. 특히 초급간부의 경우 더더욱. 장교와는 서로 지향하는 바에 조금 차이가 있다. 부사관은 그 분야에 기술적으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더 오랜 담금질이 필요로 하므로 다음 계급을 더 늦게 달아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하사와 중사, 중사와 상사 간의 업무 숙련도 차이는 매우 크듯이, 그 계급에 걸맞은 경험치가 시간이라는 수치로 커진 것이 아닐까.


반면 장교는 시간이 갈수록 '장'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렇다고 실무를 1도 모르는 바지 사장이 될 순 없으니 초급장교 때 짧고 굵게 현장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장교가 특정 실무만 깊게 파고 있으면 뭐 물론 유익하긴 하겠지만, 그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빨리 진급해서 빨리 책임을 떠안을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소위 1년, 중위 2년.


도합 3년이면 한 명의 신임소위가 대위로 진급한다. 3년 간 짧고 굵게 실무를 익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부대원들 앞에 서서 그 고충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현장을 잘 꿰고 있는 상태에서 지휘관을 보좌하는 참모로서 거듭나야 한다. 지휘관과 부대원들 그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못한다면, 그건 계급장 달고 소꿉놀이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듯 빠른 진급이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장교 본인도 그 새로운 계급장에, 늘어난 급여에 히히덕거릴 게 아니라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껴야 한다. 등을 떠밀린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신분만큼 시간을 주어주지 않으니, 그 제한된 환경 속에서 절박하게 성장하려고 해야 한다.


당신, 소위일 때랑 뭐가 그렇게 달라졌는데? 어깨만 쩌억 벌리고 고개나 빳빳하게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진심으로 상급자라고 생각할까? 천만에요, 뭐 저런 놈도 다 진급을 시켜주냐며 비아냥을 살 겁니다. 공부는 하기 싫고, 대우는 받고 싶다? 진지하게 나가서 깡패나 하는 걸 추천합니다.


당신에게 하는 그 경례가, 정말 마음속에서 우러난 예(禮)라고 생각하나? 누군가는 혀를 차고, 고개를 젓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다는 걸 아는가?


중위 계급장, 그게 소꿉놀이에 그치지 않기 위해.

열정 있는 누군가에게 박탈감을 주지 않기 위해.

땀 흘리는 이들의 운동장을 기울이지 않기 위해.


대위까지 앞으로 단 2년,

어떻게든 자격을 갖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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