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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Mar 20. 2024

[인트로] 書路 - 팔할의 책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책이다.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다.   

   

서정주라는 시인은 늘 별로지만, 서정주의 ‘자화상’의 이 구절은 너무도 좋았다. 과연 시간이 지나서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무엇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참 멋진 일인 것도 같다. ‘나를 키운 팔할이란 말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영향을 키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리라. 내 삶에서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47년을 살면서, 드러내어 자랑할 만한 것이 거의 없지만, 한 가지 그래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틈만 있으면 책을 읽었다는 점이다. 마음이 너무도 외롭고 힘들었기 때문에, 그냥 살기 위해서 읽었었다. 생존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읽는 것. 그게 나의 삶이었다. 그렇게 보면,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책이다. 이 책들로 인하여... 내가 누구인지라는 질문에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대면할 수 있었다.     

 

왜 書路(서로)인가? 책서, 길로 - 책의 길


어쩌다 보니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고,  그러다 보니 책을 읽었으며... 다시 어쩌다 보니 국어 선생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십대들, 이십대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십대와 이십대들에게 책의 의미가 나의 십대 시절과 같지 않으리라. 나에게 책이 했던 역할을 누군가에게는 '음악'이 하고 있을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는 '만화'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영화'가 그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누군가에게는 책이 필요할 것이다. 그 사람은 기꺼이 책의 길을 걷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나를 키운 팔할의 책 20권을 정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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