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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17. 2024

# 9. 허겁지겁 살고 있는 자신을 생각할 때..

곽재구 시인의 <기차는 좀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를 읽습니다.

          기차는 좀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


                                                          곽재구

어릴 적에

강 건너 산비탈 마을

기차가 지나갈 때

손 흔들었지

창밖으로 모자를 흔들던 이가

바람에 모자를 놓쳤을 때

보기 좋았지


어른이 되어 기차를 타면

창밖으로 모자를 흔들고 싶었지

강 건너 앵두꽃 핀 마을

아이들이 손을 흔들면

창밖으로 하얀 모자를 흔들다

명주바람에 놓아주고 싶었지


모자를 열 개쯤 준비해

강마을의 아이가 손을 흔들 때

하나씩 바람에 날리는 거야


KTX는 시속 삼백 킬로미터로 달리지

손을 흔드는 아이도 없지

기차는 좀 느리게 달려야 해

사람은 좀 느리게 살아야 해

사람이 기차고

기차가 사람이야

미친 듯 허겁지겁 사는 거 부끄러워


시속 삼십 킬로미터면 강마을

아이들과 손 흔들 수 있어

시속 이십 킬로미터 구간에선

초록의 꽃들과 인사 나눌 수 있지

시속 십 킬로미터면 초원의 소들에게

안녕, 무슨 풀을 좋아해? 물을 수 있어


목포에서 신의주

6박 7일에 달리는 거야

우리나라 강마을 아이들 모두 모여

하얗게 손 흔들다

모자를 찾으러 강물 속 풍덩 뛰어들 수 있게




생존에 대한 공포가 내 삶에 각인되어 있는 것인가

여유로운 척 해도, 담담한 척 해도

나는 늘 급해, 나는 늘 쉬는 법을 몰라

바쁘게 바쁘게만 살고 있어


그런데 진짜 솔직히

미친듯 허겁지겁 사는 거 부끄러워


좀더 느리게 달리고 싶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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