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 ⑮ 남아공 케이프타운 → ⑯ 나미비아 나미브사막 → ⑰ 스페인 바르셀로나 → ⑱ ~ ㉓산티아고 순례길→ ㉔ 포르투갈 포르투, 리스본, 에리세이아, 신트라 → 라고스 → 파고 → 세비야, 론다 → ㉕ 모로코 탕헤르 → 텐투안 → 쉐프샤우엔 → 페즈
사십춘기 방랑기 D+112일(2017.6.29.) 모로코 첫째날 in 탕헤르(Tanger)
1시간 만에 모로코의 탕헤르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는 아주 간단했다. 아르헨티나 친구의 이름은 로시우였다. 모로코는 여성 혼자 여행할 때, 성희롱이 심하기로 악명이 높다. 로시우는 혼자 모로코를 여행하는 것이 무서웠다면서, 함께 동행하는 것을 허락해준 내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한다.
탕헤르에 도착해 배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접하는 장면. 여기까지는 낭만적인 곳일 줄 알았다. 저 계단을 넘어 숙소를 찾아가는 순간, 호객꾼들의 술수가 판을 치는 전쟁이 벌어진다.
아프리카가 처음이라고 잔뜩 긴장해 있다가 동행이 생겼다고 좋아한다. 배에서 내려서 시내로 접어들자, 엄청난 호객꾼들이 접근해왔지만, 이집트와 인도에서 이미 경험한 일인지라, 전혀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1달 반만에 다시 찾은 아프리카가 친근하고, 편했다. 잔뜩 쫄아있던 로시우는 호기심이 많은 친구라... 여기 저기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가 남자 호객꾼들에게 둘러쌓이면, 나를 부른다. "마이 허즈번드"... 그러면 호객꾼들에게 풀려난다. 이렇게 이용하려고... 동행하자고 했구나... 그 호칭은 아껴둔거란 말이다...
일단 로시우의 숙소에 함께 찾아가서, 빈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탕헤르 숙소를 찾아가는 길은 정말 미로와 같았다. 헤매고 있는 우리들을 안내해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결국 숙소가 아닌 무엇인가를 팔고 있는 가게를 데리고 가서 강매를 하기 일쑤였다. 남자 없이 혼자서만 이러한 호객꾼들을 만난다면, 계속 괴롭힘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적당히 소리도 지르고, 어르고 달래기도 하면서 그렇게 4번에 걸쳐 호객꾼들에게 속임을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호객꾼들을 피해 일단 식당으로 들어오니,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이 식당 주인은 우리의 아군이 되어 주었다. 호객꾼들이 들러 붙을 땐, 무조건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자.
그러던 중, 식당을 발견했다. 배도 고팠고, 일단 이 식당에서 무언가를 먹고나면, 식당 사람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식당에서는 식사를 한 손님인 우리에게 제대로 된 안내꾼을 소개해줬고, 우리는 그를 통해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에게 고맙다며 팁을 주었다. 모로코 쉽지 않다.
로시우가 예약한 숙소에 빈방이 있는지 물으니, 한 자리가 오늘 생겼다고 한다. 그 자리를 결제하고, 체크인을 하고, 침대 앉아서 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국말이 들렸다.
"한국분이세요?"
눈을 들어보니, 어떤 여인네가 내 앞에 서 있었다. 혹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아는 척 하는 것인가 싶어서 주위를 둘어보았지만, 동양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하니, 그녀는 매우 반가워한다. 이유인즉슨, 그 친구는 어저께 하루 먼저 모로코에 도착했는데, 오늘 우리가 겪었던 모로코 호객꾼들의 성희롱과 강매 사건을 진저리가 나도록 겪은 것이었다. 그녀는 오늘 오늘 체크아웃을 했는데, 내 침대가 그녀가 전날 머무른 곳이라고 했다. 짐을 맡겨 놓고,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고 난 후, 돌아왔는데, 한국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어서 반가워 이야기를 건 것이라 했다. 신기한 일이다.
그녀는 오늘 밤 기차로 마라케시로 떠난다고 했다. 저녁 기차 전까지는 시간이 남는다고 해서, 로시우와 함께 근처를 돌아보는데, 그녀도 함께 길을 나섰다. 모로코의 호객꾼들도 한 번 속이고 나더니, 두번째부터는 친구처럼 인사를 건낸다. 그러고 보면, 모로코도 돌아나닐 만한 곳이었다.
탕헤르의 길거리 관광. 모로코의 처음은 정신없었지만, 한번 적응이 되고 나면, 낭만이 보인다.
해안 도시 탕헤르. 저 바다만 넘으면, 바로 스페인이다. 생각보다 가까운 아프리카와 유렵.
그녀가 요청해 온다. 모로코가 무서운데, 자기와 동행해줄 수 있겠는지. 아, 나는 쓸 데 없이 의리가 있었다. '로시우'와 동행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우리의 다음 여정은 '마라케시'와는 반대 방향이다. 그녀는 탕헤르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고, 나는 다른 동행과 시계방향으로 이동한다. 나의 거절에 그녀는 매우 아쉬워했다. 저녁 기차시각이 될 때까지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기차역까지 배웅을 해줬다. 헤어지기 전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고, 메신저로 안부를 물었다. 그날 밤 내내 밤기차를 함께 타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사십춘기 방랑기 D+113일(2017.6.30.) 모로코 둘째날 in 테투안
어제 밤새 아쉬워하는 통에 늦잠을 잤다. 생각을 해보니, 그 전날 예정에도 없이 갑작스럽게 대륙을 넘는 강행군을 한 셈이었다. 탕헤르의 숙소는 참으로 정겨운 분위기였다. 한번 외출하면 길을 찾기가 어려워서 몇 번 골목길을 헤매야 되는 것을 제외하면, 숙소와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가격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충분히 쉬고 체크아웃을 하기로 로시우와 이야기했다.
그런데 11시 30분경에 로시우가 부탁이 있다고 한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오늘 숙소에 도착한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행자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배에서 내려서 숙소를 찾아오는 길에, 모로코 남자들에게 희롱을 당해서, 모로코에 잔뜩 겁을 먹었다며, 함께 데려가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뭐, 어차피 말이 안통하는 건 똑같아서 상관이 없다고 하니,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졸지에 동행이 한 명 더 늘었다.
새로 합류한 친구의 이름은 “트리니”였다. 트리니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지금은 마드리드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비자문자로 잠깐 외국에 나갔다가 재입국을 해야 해서, 겸사겸사 가까운 모로코에 왔는데, 모로코 남자들의 스킨십에 진절머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보호주는 게 고맙단다. 로시우가 이 남자는 믿을만하다고 이야기했대나. 아, 이 친구는 알까. 내가 이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어제 어떤 제안을 거절한 것인지.
졸지에 두 여자의 남편 역할을 하게 된다. 내 이름은 따로 있는데, 여기 저기서 '허즈번드'라 불렸다.
점심을 먹으며, 로시우가 트리니에게 자기가 첫째 와이프니까, 네가 두 번째 와이프가 되라고 한다. 나보고 괜찮냐고 묻길래, 어물쩡 그러라고 했다. 그러더니 남편의 나이를 알아야겠다고 물어온다. 퀴즈다. 몇 살로 보이냐, 맞추면 상을 주겠다고 했더니... 로시우는 29살이라고 하고, 트리니는 27살이라고 이야기한다. 아, 해외에서 인정받는 동안이라니.... 그들에게 40살이라고 밝혔더니, 호들값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나 뭐라나... 트리니는 자기 아빠가 45살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이를 물으니, 트리니는 23살이고, 로시우는 27살이었다. 남편이 너무 나이가 많아서 안되겠다고 아우성이다.
텐투안까지 버스로 2시간 정도가 걸렸다. 버스는 냉방이 전혀 되지 않아서, 매우 덥고, 더럽고, 시끄러워서 편안하지가 않았지만, 나는 그런 느낌이 무척이나 편했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실컷 자다가 텐투안 근처에 와서 잠이 깼다. 확실히 버스를 타야지, 그 나라의 특성이 보이는 듯 하다. 모로코는 스페인과 매우 가깝지만, 스페인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였다. 특히 버스 정거장에서의 소란스러움은 새삼 특색있다. 행선지를 알 수 없는 버스와 마치 화난 것처럼 소리지르며, 버스를 안내하는 사람들과 버스를 타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을 뒤섞여서 아프리카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는 그 분위기가 참 좋다.
텐투안의 숙소는 로시우가 예약했다. 로시우가 여행의 계획 및 가이드를 담당하고, 트리니가 사진 촬영을 담당하며, 내가 이들의 경호를 담당하기로 했다. 텐투안은 탕헤르보다 훨씬 더 미로였다. 구글맵은 미로처럼 얽혀있는 골목길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고, 길을 찾으려고 헤매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한번 나가면, 돌아올 때 길을 잃을 것이 분명했지만, 숙소 안에만 있는 것이 무의미하여 숙소 밖으로 나가서 텐투안을 구경했는데.... 동행하는 친구들과 나의 여행 스타일이 전혀 맞지 않았다.
텐투안은 진짜 미로같다. 숙소를 찾는 일도 정말 쉽지 않다. 숙소의 호스트는 매우 친절했고, 숙소의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이 재밌기는 하다.
이 친구들이 기념품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는 거다. 모로코의 시장은 골목을 따라 정신없이 얽혀서 형성되어 있는데, 모로코 남자들이 많아서, 여자들만 가는 것은 제법 위험하다. 그런데 이 두 친구들은 거침없이 돌아다녔다. 그것은 그녀들 뒤에서 내 여자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인상 쓰며 따라가는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괜찮은데, 나는 쇼핑하는 게 너무 싫다. 그렇다고 그녀들만 두고 돌아갈 수도 없어서 오늘 하루는 그렇게 두 여자의 쇼핑 보디가드를 했는데, 재미가 일도 없었다. 못해먹겠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의 두 아내는 여행 시간이 없다면서, 왜 그리 시장의 물건만 나오면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것인가.
쇼핑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앞장을 서서 숙소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믿었던 구글맵은 텐투안의 골목길 미로 속에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고, 쇼핑하느라 시간이 늦어져서, 어두워져 버린 상황에, 골목길의 분위기는 사뭇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길눈이 어두워서, 그냥 걸으면서 찾는 스타일인데, 뒤따르는 여자들에게 이런 나의 스타일을 설명할 수가 없으니, 숙소를 찾기 위해 근처를 뱅뱅 돌기 시작하자, 무서워서 그런지 로시우와 트리니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 상황에서 나만 태평한 것이 미안했지만, 이런 일이 나에게는 빈번한 일이다.
무사히 숙소로 돌아온 후에, 남은 여행길에 계속 동행하는 것이 적절한지 고민 중이다. . 200일간의 여행은... 사직을 각오하고, 나를 위해 사용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나는 왜 어제 그 기차를 같이 타지 않고 여기에 있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니, 같이 있는 친구들이 오히려 미워지는 느낌이었다.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제 동행하는 로시우와 트리니도 모로코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 내일 저녁에는 이러한 나의 심정을 오해가 없이 전해 보련다.
사십춘기 방랑기 D+114일(2017.7.1.) 모로코 셋째날 in 쉐프샤우엔
테투안은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어제 늦은 외출에 테투안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고 하여, 오늘 쉐프샤우엔으로 떠나기 전까지 숙소에 짐을 맡겨 두고, 테투안을 돌아보기로 했다. 버스 시간이 오후 4시 30분이었기 때문에 11시 경에 숙소를 나왔음에도 시간이 충분히 많았다. 어제 한참을 헤매여인지, 오늘은 복잡해 보이던 숙소에 이르는 길을 제법 잘 찾을 수 있었다.
우리팀의 전체 리더격인 로시우는 준비성이 철저한 친구였다. 론리 플래닛을 펼쳐두고, 각 도시에서 방문해야 할 곳을 시간을 고려하여 잘 선정하여 우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함께 동행하는 트리니는 예쁜 얼굴에 스타일이 좋아서 모로코 남자들의 시선을 자주받는데, 약간의 조울 경향이 있어서, 감정 기복이 있는 편이다. 대화와 동선의 9할은 이 둘끼리의 합의에 의해 이뤄지고, 나는 이 둘의 뒤를 쫓아가면서 보호를 해준다.
텐투안은 사람들의 거주지 자체가 거대한 성같은 느낌이다. 아주 매끈한 모습과 아주 혼돈된 모습이 공존한다.
테투안은 탕헤르에 비해서 볼거리가 많은 동네였다. 일단 모로코 왕궁이 있었고, 왕궁을 찾아가는 길에 시장도 제법 예쁘게 형성되어 있었다. 또한 테투안 현대 미술관도 있었는데, 입장료가 무료이고, 친절해서 제법 둘러볼 만 했다. 무슬림의 도시 테투안에 하나밖에 없는 카톨릭교회도 방문하여 관계자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기(로시우와 트리니가 이야기 나누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고, 모든 집이 하얗게 채색되어 뷰가 아름다운 지역도 방문했다. 가죽 공예를 하는 수공업 단지도 방문했다. 다만, 대부분 방문해서 사진찍고, 돌아오는 격인지라, 느긋하게 앉아서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에 대해 나는 감상하고, 생각하고, 글쓰는 것을 원한다고 했더니,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해야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가는 길에 쇼핑하러는 꼬박꼬박 들어간다.
버스에 탑승하여 쉐프샤우엔으로 이동한다. 산속으로 계속 들어가는 느낌. 이곳에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사뭇 의심이 되지만, 쉐프샤우엔을 모로코의 산토리니라고 한다니, 산토리니에 감탄했던 나로서는 어떤 모습일지 사뭇 기대가 되었다. 쉐프샤우엔 버스 정거장에 도착하니, 로시우와 트리니는 화요일에 마라케시로 출발하는 버스를 예매했다. 나도 같은 것을 예매하려고 하기에, 그 둘에게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유를 계속 묻길래, 마라케시 가기 전에 ‘페즈’라는 미로 골목으로 유명한 마을을 꼭 가야한다고 했다. 로시우와 트리니는 ‘페즈’에 많은 사건, 사고가 있다고 가기를 꺼렸다. 그래서 이틀 전에 만났었던 한국인 친구가 거기에 있을 거 같다고 만나러 가고 싶다고 했더니, 둘은 처음에 이해를 못하다가 웃으며 응원해주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남편이 바람이 난 거 같다고. 연신 나를 놀린다.
숙소는 쉐프샤우엔의 가장 정상부분에 있었다. 쉐프샤우엔을 전부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이 좋았다. 그리고 쉐프샤우엔은 모든 마을이 하늘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더러운 마을을 살리기 위해 가장 값싸고 흔한 하늘색 염료로 마을 건물을 칠했던 것이, 마을 전체를 이렇게나 예쁘게 만든 것이다. 우리 셋은 아주 늦은 시간까지 마을을 거닐었다. 마을은 수많은 관강객으로 붐비고 있었고, 매우 활력이 있었다. 이 둘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이유를 묻길래, 내일이 내 생일이고, 한국 시간으로는 지금 생일이어서 그러고 싶다고 하니, 놀라면서 내일은 자신들이 생일파티를 해주겠다고 한다. 타국에서 혼자 생일을 보낼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마웠다. 참, 인생은 알 수 없다.
사십춘기 방랑기 D+114일(2017.7.2.) 모로코 넷째날 in 쉐프샤우엔
나는 여행 중에 잠이 없는 편이다. 어제도 새벽 2시 경에 잠들어서, 아침 6시에 일어났다. 뒤늦게 일어난 로시우와 트리니가 잠에서 깨자마다 다가와서 포옹하며, 생일축하한다고 이야기한다. 생일날 눈을 떴을 때,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축하를 먼저 받은 것이 40평생 처음인지라 얼떨떨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아침 10시 경에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쉐프샤우엔에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폭포로 유명한 곳에 갈 계획이었다. 이동은 택시로 하는데, 비용 절약을 위해서 다른 여행객들과 합승을 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여행객 3명과 함께 동승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뭐가 좋은지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아는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럴 때는 웃는 게 최고인 거 같다. 계속 웃다가, 어제 잠을 못자서 그런지, 잠이 들어버렸다. 폭포로 유명한 산악 동네에 도착했다. 아프리카는 물이 희귀한 사막과 메마른 땅만 생각했었는데, 이 동네는 물이 철철 넘쳤다. 모로코에서 제일 큰 폭포와 이 폭포가 흐르는 길에 만들어진 간이 물놀이 시설이 넘치는 곳이었다. 모로코에서도 유명한 곳인 듯 싶다. 주말이고, 라마단 기간이 끝나기도 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마을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2명의 한국인 연인도 만났다. 이 연인들의 숙소도 쉐프샤우엔이라고 했다.
모든 일정을 주관하는 로시우가 제일 큰 폭포를 보러가야 된다고 해서, 졸지에 폭포 탐색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이 폭포가 아주 긴 산길을 걸어가야 되는 곳에 있었다. 정말 멀었다. 순례길을 다시 시작하는 느낌. 이 녀석들도 힘들었는지, 점점 지쳐간다. 그리고 나는 족저근막염... 다시 제대로 고통을 경험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마지막의 행복을 기대하며 찾아간 큰 폭포가 생각보다 훨씬 물이 없어서 매우 허무하였다. 그보다는 폭포에 이르는 여정에서 훨씬 더 예쁘고 아름다운 광경이 많았다. 무엇 때문에 이 폭포를 목표로 그렇게 힘겹게, 앞만 보고 걸어왔는지 모를 허탈함이 몰려왔다. 인생이 비슷하려나.. 끝까지 추구한 목표가 생각보다 허무할 수 있지 않을까. 목표만을 위해서 빠르게 달려가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 주변의 풍경을 놓치고야 말 것인가. 돌아오는 길에는 아쉬움에 예뻐보이는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했다.
폭포까지 가는 길은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는 내게는 참 힘든 길이었다.
그래도 같이 걸으니 걸을 만했고...
물놀이를 하니, 시원하고 즐거웠다.
이제 로시우와 트리니는 나를 완전히 신뢰하는 듯 하다. 내려오는 길에 화장실이 급하단다. 그래서 나보고 망을 봐달란다. 하... 그래서 그녀들이 볼일(?)을 다 볼 때까지, 오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그때 내려오는 10명 정도 되는 남자들의 그룹. 그들의 막아서서, 영문도 모르고 길막음을 당한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듭 양해를 구하는 거였다. “미안해..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줘. 이유는 묻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줘. 미안해.” 잠시 후, 볼 일을 다본 그녀들이 나를 부르자, 기다리던 남자들이 상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내 어깨를 두들겨 준다.
마을 초입에 도착하자, 시간이 저녁 6시가 넘었다. 택시를 함께 탈 사람들을 기다리느라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2명의 모로코 친구들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모로코는 아랍어와 불어를 한다. 그리고 우리 중에서는 불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없다. 다만 내가 영어를 하는 수준으로만 로시우가 불어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대화가 진행되다가, 내가 오늘 생일인 게 알려졌고, 스페인어, 불어, 아랍어, 영어로 생일 축하 노래가 반복되었다. 그리고 모로코 친구가 오늘밤에 나를 위해 생일파티를 해주고 싶은데, 9시 30분에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나한테 왜이리 친절하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폭포를 내려올 때, 자신들이 올라가고 있어서 서로 스쳐가게 되었는데, 그 때 내가 멋진 미소로 인사를 했다는 걸 자기가 기억한다는 거였다.
쉐프샤우엔에 8시 30분에 도착했다. 모로코 친구는 잠시 헤어졌다가 1시간 후인, 9시 30분에 만나자고 장소를 알려준다. 우리는 반신반의하며 알았다고 했다. 로시우와 트리니는 모로코 친구가 안 오더라도 자신들이 생일 파티를 해주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세프샤우엔 광장을 거닐다가, 폭포에서 만났던 한국인 연인을 만났다. 갑자기 옆에 있던 로시우가 오늘 '앤드류의 생일인데, 축하 파티에 오겠냐'고 물으며 시간과 장소를 알려줬다.
저녁 9시 30분에 약속장소로 나갔더니, 모로코 친구(사실 친구라기보다는 멋진 중년 식사)가 선물을 들고 서있었다. 로시우와 트리니에게도 기념품을 선물해주고, 나에게도 생일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함께 생일파티를 하고 있는데, 2명의 한국인 커플도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렇게 아주 낯선 땅에서, 아주 낯선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생일 축하를 준비해준 모로코 친구는 대학교수님이었다. 나이 40세에 과분한 축하를 받았다. 너무 과분하다. 남은 삶은 부록으로 여기고, 욕심없이 살아가보자.
국어, 영어, 스페인어, 불어에 이르는 4개국어가 난무하는 생일파티. 누군에게 축하받는 것이 늘 어색했는데, 이 날은 어색하기보다 기쁘고, 감사했다.
사십춘기 방랑기 D+115일(2017.7.3.) 모로코 다섯째날 in 페즈
로시우와 트리니와 헤어지고, 페즈를 향했다. 페즈는 아주 큰 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왜 페즈를 찾았는가.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려보니, 그녀는 사막투어를 하고, 페즈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었다. 나는 원래 겁이 많다. 그리고 항상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도망쳐왔다. 절반은 부끄러움이었고, 절반은 무서움이었다. 끝까지 가보는 것이 무서웠다. 고백하는 것도 무섭고, 나를 만나는 사람이 나에게 실망하게 되는 것도 무서웠다.
그래서 그 사람 주위에서 맴돌았을 뿐, 한 번도 제대로 내 모든 것을 걸고, 그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서 처절한 노력을 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삶이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었다. 연락해서 만나자고 하지 못하고, 찌질하고 이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기를 바라며, 페즈의 시장을 돌아다니고 올 뿐이었다. 내가 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일단 7월 5일 '마라케시'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이미 7일 전에 결제를 했다. 7월 5일까지 마라케시에서 비행기를 타려면, 내일은 무조건 마라케시로 출발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을 계속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