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이베리아 반도 남단에서 낯선 여인이 부탁했다

여행에서 변수는 스트레스가 아니다.

by GTS

14th 국가: 포르투갈, 모로코

18th 여정: 이베리아 반도 남단 도시들 (6.25-6.29)


그간의 여정(3.10 출발)

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⑮ 남아공 케이프타운⑯ 나미비아 나미브사막⑰ 스페인 바르셀로나 → ⑱ ~ ㉓산티아고 순례길 → ㉔ 포르투갈 포르투, 리스본, 에리세이아, 신트라 → 라고스 → 파고 → 세비야, 론다 → ㉕ 모로코 탕헤르



사십춘기 방랑기 D+108일(2017.6.25.) 포르투갈 일곱째날 in 리스본 → 라고스(Lagos)


오늘은 현재와 헤어져서 혼자가 되는 날이다. 언제나 화창하던 포르투갈의 하늘이 오늘이 구름이 잔뜩 끼었다. 나는 오늘 라고스로 출발을 하고, 현재는 밤기차를 타고 세비야로 이동을 한다. 11시가 넘어서 짐을 챙기고, 12시 무렵에 숙소를 나왔다. 현재가 배웅을 겸하여 함께 숙소를 나섰고, 점심 식사를 같이 하였다. 지난 4일간, 현재 덕택에 아침, 점심, 저녁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리스본의 지하철역 입구에서 서로 작별을 했다. 현재가 포옹을 해주는데, 살짝 울컥했다. 버스 정거장까지는 4정거장이었다. 2시 경에 도착했지만, 라고스가는 버스가 3시 15분에 있어서 정거장에서 기다렸다. 정거장에 앉아있으면, 버스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버스의 와이파이를 빌어쓸 수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현재에게 고맙다는 카톡을 보냈다. 재학생 시절 별로 안 친했던 녀석이었는데, 4박 5일을 함께 생활하면서, 의외로 잘 맞아서 즐거웠었다. 멋진 녀석을 알게 되어서 기쁘기도 하고, 이녀석 덕택에 방랑생활의 향수병이 다독여진 것도 감사한다.


라고스까지는 4시간이 걸렸다. 이상하게 남쪽으로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해가 더 빨리 지고 있다. 7시 무렵에 도착했는데, 순례길에서 때와는 달리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숙소를 찾아서 짐을 풀고 씻고 나니, 라고스를 돌아다니기에 애매한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내일 체크아웃을 하기 전에, 아침에 해안을 가기로 생각하고, 근처 마라나 항구에 나와서 간단한 요리를 시켜놓고, 노트북을 꺼냈다. 오늘은 그간 여행을 함께 해준 이들에게 감사를 전해보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함께 해준 방랑식객 믿음이.. 그대가 없었으면, 내 여행의 시작은 적막감 그 자체였을 뿐이다.


모스크바를 안내해주고, 저녁 늦은 시간까지 발레 공연을 보여주며 함께 해준 하나고 제자 하진이.. 그대가 없었으면, 내게 모스크바는 춥고, 매연이 많고 시끄러운 도시였을 뿐이다.
11년 만에 로테르담에서 만난 대원외고 첫제자 민상이와 와이프 현정씨.. 그대들이 없었다면, 나는 인연의 소중함을 모르고, 떠돌아 다녔을 뿐이다.


학기 중에 얻은 휴일을 독일에서 함께 해준 제자 원영이, 상현이, 준이.. 그대가 없었다면 독일은 내게 차갑고 추운 도시였을 뿐이다. 덕택에 마음 한가득 온기를 채울 수 있었다.
신혼 여행 첫날의 저녁 식사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함께 해준 세민이와 와이프 해미씨.. 그대들이 있어서 나도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소망을 품고 싶어졌다.
나미비아 사막을 같이 달렸던 12명의 사하라 레이스 동지들.. 그대들이 없었다면, 나는 하루하루 외로움과 힘듦에 치여서, 중도탈락자가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여정을 함께 해준 제자 현재.. 그대가 없었다면, 나는 향수병에 시름시름 앓다가 여행을 기쁨을 놓쳤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다시 혼자가 되었다.

동행하다가 혼자가 되면, 살짝 기분이 울쩍해진다. 나는 INFP





사십춘기 방랑기 D+109일(2017.6.26.) 포르투갈 여덟째날 in 라고스 → 파로(Faro)


라고스의 마리나 호스텔은 가격이 아주 저렴(9.5유로)한데, 시설과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서 장기 투숙객이 많았다. 그렇다보니, 서로서로 친해서 밤늦게까지 술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의기 투합해서 같이 돌아다니다가 늦게늦게 잠드는 분위기다. 이러한 공간에 나는 어제 오후 6시에 도착했다가, 오늘 오전에 체크아웃을 해야 했다. 겨우 하루만 잠깐 머물다 떠나는 나를쳐다보는 눈빛이 ‘왜그리 바쁘게 사냐’고 묻는 듯 했다. 바쁘고 정신없지만, 최대한 빨리 아프리카로 넘어가야 했기에, 그 전까지는 무조건 한 도시에서 1박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다.

파로행 버스는 12시 25분에 있었고, 또 오후 3시에 있었다. 11시 20분 경에 숙소를 나왔기 때문에 시간은 12시 25분 버스를 탈 시간이 충분했다. 그런데 해안 절경으로 유명한 라고스에 와서 바닷가를 제대로 못보고 떠난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그냥 보트 투어를 신청했다. 보트 투어는 12시 40분에 시작을 해서 2시 40분에 끝났다.


라고스 해안 보트 투어는 간단했다. 제법 큰배를 타고 가다가, 해안 절벽이 보이는 먼 바다에 큰 배를 정착해놓고, 팀을 나누어서 작은 보트로 해안 절벽 곳곳을 살펴보는 것이다. 해안절경이 예뻤지만, 새삼 감탄할 것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놀랐던 것은 절벽 사이사이를 카약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과 정착된 큰 배에서 일광욕과 바다수영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에게 바다는 무서운 공간이 아니라, 익숙하고 휴식의 공간이었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이 사람들의 모습을 부러운 듯 쳐다볼 뿐이었다.

라고스의 보트 투어. 일단 날씨가 열일한다. 뜨거운 햇살에 단체로 큰 배를 타고 나가서, 보트가 정착되면 닻을 내리고, 거기서 사람들은 일광욕을 하든가, 바다를 향해 다이빙을 한다
그냥 한국과 비슷하다. 굳이 여기가 더 예쁘다 할 건 아니고, 그냥 한국 다도해 투어와 비슷하다.


보트 투어가 끝나고, 파로행 버스에 올라탔다. 파로까지는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터미널에 내려서 다음날 행선지인 세비야행 버스 시간표를 알아봤다. 아침 8시 10분과 오후 3시 35분 2번의 출발밖에 없었다. 세비야까지 4시간이 걸리니, 하나는 출발이 너무 빠르고, 다른 하나는 너무 늦다. 언제 출발할지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해안을 향해 나섰다.


바닷가를 바로 접해서 기차길이 나있었다. 우리도 해안 기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 기차는 바다와 1m 정도로 접해서 철길이 나있으니, 꼭 바닷길을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해가 지면서 세상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해지는 바닷가 풍경은 예쁘다. 그러고 보니 파로도 별로 둘러보지 못했다. 그냥 세비야에 늦게 도착하는 셈치고, 내일은 파로 관광을 하다가 오후 3시 35분 버스로 이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해안길로 난 철길과 파로의 해지는 풍경. 예쁘다. 평화롭다.




사십춘기 방랑기 D+110일(2017.6.27.) 다시 스페인 in 파로 → 세비야(Sevilla)


파로에서 버스는 오후 3시 35분에 있었다. 출반 전에 보트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날씨도 덥고, 이틀 연속으로 하는 보트투어는 매력을 못 느꼈다. 그냥 해안의 음식점에서 쉬면서 있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버스가 늦게 출발하기 때문에 체크아웃 제한 시간을 끝까지 채운 후에 숙소를 나섰다. 포르투갈은 대부분이 마음에 들었지만, 음식의 경우는 불만족스러웠다. 정보의 부족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포르투갈에서 갔던 식당 대부분에서 다소 불편한 냄새가 나는 향신료로 인해 고생을 했다. 그래도 포르투갈의 자연과 사람들, 분위기 등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버스를 타고 다시 스페인으로 넘어오는 길.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한나라의 다른 지방이라고 해도 될 만큼, 출입이 자유롭다. 국경을 넘는 동안, 여권 검사도 없다. 다만, 국경을 넘으면서 1시간의 시차가 생긴다. 파로에서 세비야까지 4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는데, 도착시간이 갑자기 한 시간 늦춰지게 되었다. 세비야 터미널에 내리니, 현지 시간으로는 9시 가까이 되었다. 다행히 아직 어둡지 않아서, 숙소를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숙소는 세비야 대성당 가까이에 있어서, 위치가 아주 좋았다.


늦은 시간 숙소에 도착하여, 잠시 쉬다가 야경을 보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여행을 하다가 나름 절친이 된 현재에게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다. 어디냐는 물음에 세비야라고 하니, 자신도 아직 세비야에 있다고 했다. 론다로 이동한 줄 알고 있었는데, 숙소는 세비야로 정하고, 론다는 당일치기로 다녀왔다는 이야기에, 급 만나고 싶어졌다.

세비야 대성당 앞에서 현재를 다시 만났다. 헤여졌다가 만나니, 반가움이 배가 된다.

그래서 밤 11시, 해는 다 져서 어두운데, 스페인에서 가장 크다는 세비야 대성당 앞에서 현재를 만나기로 했다. 대성당으로 이동하던 중에 어디서 많이 보던 실루엣! 현재를 목놓아 외쳤다니, 그가 돌아본다. 아... 울컥함.. 헤어졌다가, 우연히 다시 만나니 반가움이 두배가 되는 듯 했다. 그래서 그놈과 함께 세비야의 야경을 거닐었다. 보통은 야간에 안돌아다니는데, 세비야는 로마와는 달리 도시 전체가 참 안전했다. 여유로움과 친절함. 이건 이베리아 반도의 특징인 듯 싶다. 근처 식당에서 타파스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오가는 대화야 대부분 아무말 대잔치여서 세세한 내용들이 기억이 나지는 않겠지만,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까지 현재를 만났으니, 이베리아 반도를 생각하면, 유현재가 함께 떠오를 거 같다.




사십춘기 방랑기 D+111일(2017.6.28.) 다시 스페인 in 세비야 → 론다(Ronda)


현재의 강한 권유로 론다를 향했다. 모로코로 넘어가기 위해 지브롤터 해협쪽으로 가야하는데, 다행히 가능한 방향이었다. 여행 여정을 바로 전날 수정하는 것을 보면, 나는 확신의 P가 분명하다. 터미날에 도착해서 확인하니, 론다로 출발하는 버스가 오후 3시 30분에 있었다. 4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출발 전까지 터미널을 중심으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다행히 터미널에서 10분 거리에, 에스파냐 궁전인가(이름은 잘모르겠다) 하는 곳이 있었는데, 입장료도 없음에도, 아주 크고, 풍경이 멋진 곳이었다. 그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근처 카페에서 타파스와 함께 식사를 하다가 시간이 되어 터미널로 왔는데, 휴대폰이 없었다. 어디서 빠트린 것인지, 도난을 당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항상 넣어두던 가방의 위치에 휴대폰은 없었다.


그래서 이제 내게는 G패드 밖에 안 남았다. 다행히 이 G패드에 카톡을 설치해놓아서, 한국과 연락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스마트폰에 있던 인증서를 분실하고 보니, 더이상 인터넷뱅킹을 할 수 없었다. 버스 시간이 다 되어서, 휴대폰을 더 찾지 못하고, 론다행 버스에 탑승했다. 휴대폰 분실로 인하여 안절부절하는 마음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어야 하건만, 그냥 버스에서는 푹 잘 잤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남은 기간 동안 생존을 위한 준비를 조금더 철저히 하기로 다짐만 하였다.

론다에 도착해서, 내리면서 보니, 론다행 버스에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숙소를 찾기 위해 도시를 걸으니, 오가는 길에 한국 사람들 천지다. 도시 전체에서 한국 사람들의 동문회하는 느낌이었다. 터미널의 식당도 한글말로 안내한다. 그제서야 론다가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관광지라는 것을 알았다.




론다의 상징적인 다리 위에서 반대편을 촬영한 것. 내 G-패드는 그 아름다움은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


론다는 절벽위에 세운 도시같다. 도시 전체가 참 이국적이고, 예뻤다. 휴대폰을 분실해서 G-패드 사진을 찍었더니, 그 감동을 전달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조잡하게 찍힌다. 론다에서 제일 싼 숙소를 예약했는데, 찾기가 힘들었다. 길가는 사람에게 물었는데, 그가 길을 가르쳐주면서,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이다고 했더니, 그가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론다에는 한국 사람이 정말 많다. 그래서 론다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한국 사람 대하는 게 익숙하다. 말도 잘 걸고, 장난도 잘 친다.


"너희 나라 무슨 일있냐?"

"왜?"

"우리 동네에 한국 사람들 천지다."

"그러네. 나도 놀랐다."

"어제도, 그제도, 그전에도 계속 이렇다."

"나는 오늘이 처음이라..."


친구가 숙소의 위치를 알려줬다. 론다라는 도시를 완벽하게 올려다볼 수 있는 다리 밑의 한참 아래쪽에 있었다. 론다의 가장 유명한 다리 밑으로 계곡 물이 흐르는데, 그 계곡물 옆에 생뚱맞게 숙소가 있다. 내려가는데만, 20분이 걸렸는데, 다시 마을 중심까지 가려면, 일단 30분 가까이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게 제법 힘들다. 이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은 다음날 출발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한다. 왔던 길로 걸어서 올라가서 가는 방법이 있고, 콜택시를 불러서 마을 전체를 돌아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비용은 20유로 정도 되었다. 나는 비용을 아껴야된다는 강박이 있는지라, 걸어서 다시 올라가는 것을 선택했다.

나의 저기 보이는 다리 위에서 온갖 짐들을 지닌 채, 이 밑으로 내려왔다. 내 숙소는 여기서도 한참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다시 터미널을 가려면, 이 길을 다시 올라가야 한다.


지브롤터 해협쪽으로 가려면, 알헤시라스까지 가는 기차를 타야하는데, 이게 아침 9시 15분에 한번, 오후 3시에 한번 출발한다. 도저히 아침일찍부터 다리까지 올라갈 수 없을 거 같아서, 다음날 오후 3시 경에 출발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같은 숙소에 머물던 한 외국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 아니어서 잔뜩 긴장하고 들었더니, 자신과 친구도 알헤시아스에 가기 위해 아침 9시 15분 기차를 탈 건데, 같이 가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기차역까지 콜택시를 부를 건데, 동참해서 비용을 분담하자는 말이었다. 뭐, 마다할 일이 아니어서, 동행을 하기로 하였다. 같이 이동하면 좋은 거겠지.




사십춘기 방랑기 D+112일(2017.6.29.) 다시 스페인 in 론다(Ronda) → 모로코 탕헤르


론다에서 알헤시라스까지는 기차로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11시 30분에 알헤시아스에 도착했다. 나는 알헤시아스에 숙소를 예약했는데, 동행하는 외국 친구들이 나를 설득한다. 알헤시라스는 예쁘지 않은 곳이고, 차를 타고 조금 더 가면, 타리파라는 해안 도시가 나오는데, 그곳이 더 예쁘고, 배편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알헤시라스에 이미 숙소를 예약을 했지만, 타리파에서 머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에, 그녀들을 따라 타리파행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고 나서 오후 1시에 타리파에 도착했다. 이베리아 반도 남단에 위치한 타리파는 매우 생기넘치는 해안 도시였다. 거리는 아프리카로 넘어가는 사람들과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사람들로 붐볐다. 휴대폰이 없어서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타리파에 도착하자 동행하던 여자 둘의 방향이 갈렸다. 캐나다 여자는 이곳에서 머무르면서 휴양을 할 예정이라고 했고, 아르헨티나 여자는 오늘 곧장 모로코로 건너간다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 하루 더 머물다가 모로코로 넘어간다고 했는데, 아르헨티나 친구가 자기 혼자서 모로코로 가는 것이 무섭다고 제발 동행해줄 수 없겠냐고 부탁을 해왔다. 그 친구가 계속 애원하기에, 절반은 기사도가 발동했고, 절반은 타리파보다 모로코의 숙소비가 쌀 듯 하여서, 같이 동행하기로 했다. 이후 과정은 매우 급하게 진행되었다. 스페인과 모로코를 왕래하는 페리에 올랐탔고, 배는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갔다. 그렇게 나는 다시 아프리카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동행이 있었다.

어쩌다보니, 모로코에 아르헨티나 처자와 동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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