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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약돌 Apr 02. 2024

10화. 재야의 고수

10. The Hermit

  림책을 쓰겠다고 다짐했던 날이 떠오릅니다.

  무척 성격이 급한 데다가, 성과주의도 있는 저는 결심한 당일부터 콘티를 짜고, 더미북을 제작합니다. 목표는 하나. ‘책을 만드는 것’.

그림책은 좋아하지만, 그림에는 영 소질이 없는 제가 선택한 방법은 오브제를 이용해 장면을 구성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책의 소제도 조약돌인지라, 문구점으로 가서 바로 배경으로 쓸 한지 종이와 조약돌을 빚을 클레이를 구입합니다. 사진을 찍고, 그 위에 패드로 그림을 덧 그립니다. 이렇게 책 한 권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3일-4일. 출판을 하는 방법도 몰랐고, 출판사에 보낼 만한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에 가장 빠르게 책을 만들 수 있는 교보의 POD독립출판을 선택합니다. 컴퓨터에 무지한 저는 남편의 도움으로 책 편집까지 마치고 마침내 승인을 받아 첫 작품인 ’ 조약돌‘을 완성합니다.(지금도 교보에서 검색할 수 있답니다.) 그것이 제 글쓰기 인생의 첫 장이었습니다.

  책을 주문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 주는데, 무척이나 뿌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제 절친과 그 남편에게도 책을 선물했지요. 절친 남편 K 씨는 책에 이것저것 관심을 갖고 물으시더니, 이다음 좋은 기회로 그린북 출판사를 통해 다른 작가님들과 출판하게 된 제 단편 동화에 까지도 관심을 보였지요.  그 이후 저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글쓰기 공백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K 씨는 각종 동화 쓰기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일 년만에 준비 될 만한 것이 아니니, 분명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쌓아 올리고 있었겠지요. 아뿔싸. 재야의 고수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법인데. K 씨가 바로 그 고수였던 겁니다.

나의 첫 글쓰기 씨앗이 되어준 고마운 책, 지금 읽어보니 퇴고의 중요성을 여실히 느낍니다.

  


  오늘의 카드는 운둔자, 9번 카드입니다. 숫자 9는 한 자릿수 중 가장 완성된 수입니다. 안정된 수 3이 3번 더해 만들어졌으니, 개별적인 수준에서의 완성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운둔자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가 그렇듯 그는 고요하며, 세상과 떨어져 혼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선택한 고립입니다. 그가 들고 있는 밝은 등불은 앞서 나가는 선구자라는 의미를 알려주고 있으며, 그가 밟고 있는 거친 땅도 아직은 누구도 개척하지 못한 세계에 도달해 있는 그의 경지를 나타냅니다. 운둔자는 내면에 침잠하며 자신을 다스리고, 한 분야를 전문적 수준까지 공부한 인물로 지적이며 신중합니다.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지요. 물론 고립되어 있음에 사람을 경계하는 의미를 갖기도 하고, 융통성이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 자신을 드러내며 뻐기는 인물은 아닙니다.

  운둔자 카드를 보면 저는 제가 처음 책을 쓰던 날과, K 씨를 떠올립니다. ‘재야의 고수’ 말이지요. 그런데 저는 아무래도 재야의 고수는 성미에 맞지 않습니다. 대신 그로부터 배운 ‘겸손’의 미덕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누군가는 모두들 제각각 고수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도 말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하늘아래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음을 또 한 번 실감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고수님, 오늘도 정진 중이시겠지요? 존경합니다.




                                                                           운둔자 : 전문성, 조언, 지성, 신중함 / (역) 융통성 없음, 고립, 경계, 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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