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약돌 Apr 04. 2024

11화. 인생사 새옹지마

10. Wheel of Fortune

  “새옹지마(塞翁之馬), 세상일은 변화가 많아 어떤 것이 좋거나 나쁜 것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인생에서의 사건이란 그 끝에 설 때까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 일이었는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미래를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란 참 작은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별것 아닌 일로 기분이 지옥이었다가, 한순간에 천국이 되기도 하고 그토록 연연하며 바라왔던 일을 성취하고 나면 예상치 못한 무력감이 찾아오기도 하고.  그럴 때면 저는 이 ‘새옹지마’라는 말이 무척이나 위로가 됩니다. 당신에게 ‘지금’ 좋은 일처럼 여겨지면 겸손을, ‘지금’ 나쁜 일이라면 그 속에서 지혜를 배우라고 말해주니까요.

  


  오늘의 카드는 10번 ’ 운명의 수레바퀴‘입니다. 타로카드하면 상징적으로 많이 떠올리는 카드 중 하나지요. 10이라는 숫자는 1(자아)+9(개별적 완성)을 이루어낸 수로 완성,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1+0으로 이루어진 수로, 1(자아)이 다시 0(새로운 세계)으로 나가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새로운 변화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 새로운 시작은 바보처럼 0에서 하는 시작이 아닌, 어느 정도 자신을 발견하고 발전시킨 후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에 가깝습니다.

  상담 중에 운명의 수레바퀴 카드를 만난다면, 내담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새로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타이밍이 좋거나 운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고, 좋았던 흐름이 바뀌면서 하강기에 접어들 수도 있지요. 인생은 너무 나쁜 일만 있지도, 그렇다고 너무 좋은 일만 계속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히려 운명의 수레바퀴에는 다양한 종류의 희망을 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운명하면 떠오르는 그리스로마 신화,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Moerae)

그리스어로 모이라이는 ‘정해진 몫’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운명을 주관하는 세 여신을 부르는 말로 쓰이게 된 이유는 이들이 바로 인간에게 ‘정해진 몫’을 만들고, 배분하고, 끊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선과 악, 삶의 길흉화복 모두 이미 이 여신들에 의해서 정해져 있다는 것이지요.

프란체스코 살비아티. [운명의 세 여신], 1550년
  운명의 여신들은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운명의 실타래를 통해 그의 수명을 재단하고 삶을 지배하며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 세 여신은 각자의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한다. '클로토(Clotho)'는 운명의 실을 뽑아내고, '라케시스(Lachesis)'는 인생의 길이를 정해 운명의 실을 감거나 짜는 역할, 마지막으로 '아트로포스(Atropos)'는 가위로 그 실을 잘라 생명을 거두는 역할이다.
  고대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종종 노파로 묘사되는데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살비아티 (Francesco Salviati)가 그린 세 여신이 그 예이다. 맨 오른쪽 뒤, 실패를 들고 있는 노파가 클로토, 실의 길이를 재고 있는 가운데 노파가 라케시스, 그리고 그녀 뒤에서 가위를 내밀어 실을 자르려는 이가 아트로포스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이라이 [Moirai] (명화 속 그리스 신화, 이민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말은 꽤나 잔인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니요. 그렇다면 신화가 아닌 다른 종교에서는 어떨까요?

   놀랍게도 종교 개혁자 장 칼뱅은, 신은 노력하면 우리를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로 ‘예정설’이지요. <신에게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을지, 말지는 미리 결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선행을 쌓느냐, 악행을 저지르느냐는 관계없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은 과연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주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모이라이나 칼뱅의 예정설에 따르면 이미 모든 게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는 나 자신이 구원을 받기 위해 선하게 살아야 할 필요도 없고, 벌을 받지 않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지 않을 필요도 없을 텐데요. 그러니 언뜻 이러한 사상은 인간의 삶에 쉽게 도덕이 사라지고 혼란이 찾아오게 만들 거라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얄궂게도 우리는 정해진 운명의 결과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좌절에 빠져 포기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내가 선택받은 자라고 믿으며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테지요.  그 결과, 오히려 대가를 바라는 선행이 아닌 진정한 선행이 일어나고, 자신의 도덕에 따라 움직이며, 주관에 따라 선택하게 될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해진 운명에서야 우리는 진정한 주체성을 누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칼뱅의 예정설은 신약성서에 기반하여 면죄부를 반대하며 주장한 개념입니다.)



  

                                                          운명의 수레바퀴: 승진, 뜻밖의 행운, 전환기, 기회의 도래 / (역) 하강기, 실패, 불리함, 때를 잘못 만남

  

이전 10화 10화. 재야의 고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