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 간 소통 없는 세월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다. 얽힌 오해와 치매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내 피붙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9개월간 소식 끊긴 오빠를 실종 신고했더니 안동병원 중환자실에서 기저귀를 찬 채 누워 있는 무연고 중증 환자로 발견되었다. 작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하늘의 도움으로 오빠는 1년 만에 기적처럼 회복되었고, 대성 실버빌 요양원에 입소했다.
3년 전 백신 주사 후유증으로 이번에는 내가 응급 환자가 되어 버렸다. 좋아지기보다 침대에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백신 후유증은 증상만 있지 병명도 없고 보상도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매일 병원과 한의원을 다녔다. 가끔 참여하는 동우회 활동이 유일한 걷기 운동이었다. 응급 상황마다 병원에 달려가도 뚜렷한 해결책은 없었고,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이 내가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 있음을 증명했다.
수저도 들 수 없고 물 한 모금도 못 넘기는데, 언제 오느냐는 전화가 걸려 왔다. 그 당시 응급실을 자주 드나들며 사경을 헤매던 중이었다. 눈물을 삼키며 "오빠, 나 매우 아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좀 나으면 곧 갈게요"라는 말에 힘없이 "그래"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식들 소식을 또 묻는다. 그리움에 젖은 마음을 모를 리 없다. 죽을 것 같던 하루를 넘기며 서로의 설움에 북받쳐 울고 나니, 오히려 통증이 덜한 듯했다. 네 몸이나 챙기라는 다른 형제들에게 말할 수도 없다. 오지랖 넓게 생고생하지 말라는 고마운 뜻이 담긴 충고다.
치매 오빠를 10년 동안 돌보며 최선을 다했지만, 늘 아쉬움이 남았다. 면회를 마치고 복귀시킬 때마다 아기를 떼어 놓고 오는 듯한 심정이었고, 가슴은 울고 있었다. 자식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미한 기대는 나를 더 안타깝게 했었다. 소식 없는 애들 잘되라고 기도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진한 모습이 애처로움과 측은지심으로 남았다.
부유했던 시절 부모 형제를 외면했지만, 마지막 길은 형제들의 따뜻한 배웅으로 외롭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의 마지막 면회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애처로운 모습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숫자판이 가망 없음을 알리는 가운데, 나는 팔을 주무르며 성호를 긋고 회개와 용서, 화해와 축복의 기도를 바쳤다. 이 기도는 그를 위한 동시에 남은 이들을 위한 화해의 기도였다.
머리 위쪽에 있는 숫자판이 헐떡거리는 가쁜 숨만큼 번쩍거린다. 의학 용어나 그 숫자의 의미를 모르지만, 소생할 가망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식불명 상태다. 숨을 쉬는 나도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혼돈 상태다. 가슴 깊은 곳에서 파도 같은 슬픔이 밀려왔다.
눈물을 꾹 참으며 오빠라고 불러 보았다. 대답이 없다. 몇 분이 지났을까? 다시 또 “오빠, 길이 엄마 왔어요.” 했더니 갑자기 눈을 뜬다. 그 큰 눈 속이 맑았다. 계속 내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는데, 소통은 되지 않았다.
가슴이 울컥하더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울먹이는 나를 응시하지만, 더 이상의 소통도 없었다. 사전 의료 의향서를 쓰라는 간호사실을 다녀오니 눈을 감고 계셨다.
영원한 작별 사랑의 잔향
“오빠, 지금 집에 계셨다면 어느 자식이 이런 대우를 해드릴까요?” 물으면 빙그레 웃으며 “그래 맞다, 허허허”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억지 행복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움과 외로움 속에서 얼마나 가족을 그리워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모든 것이 그리움뿐인데…
부유했던 오빠 부부는 부모와 형제를 외면하며 살았고, 자식도 한때는 잘 나가던 대기업 임원이었다. 결국 모두가 재산을 잃고 가정마저 무너졌다. 참 무서웠던 오빠였는데 "내 팔자가 왜 이러냐?"라며 울먹이던 말이 가슴에 남았다. 걸어온 지난 길을 돌아보며 권위나 돈의 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시설에서의 평온한 시간은 오빠에게 회개의 기회였고, 점차 내면의 평화를 되찾은 듯했다. 그 변화는 나를 울컥하게 했고, 동시에 깊은 위안을 주었다. 평범한 가정을 간절히 원했던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준 맑은 눈빛은 말하지 못한 고마움과 사랑을 담고 있었다.
떠난 이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긴다. 모든 것을 잃은 후 사랑을 깨닫고 관계를 회복해 가는 삶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했다. 이런 과정은 내게 큰 가르침이 되었고, 소중한 선물처럼 마음 깊이 남았다.
오빠가 남긴 사랑의 잔향은 나와 내 형제들에게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떠난 이의 메시지가 더 나은 삶을 살라는 조용한 속삭임으로 다가온다. 이별을 슬픔으로만 남기지 않고, 여전히 내 안에서 울리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나의 삶도 새롭게 써 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