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와인
프랑켄 와인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근교, 프랑켄 지방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전통적으로 Bocksbeutel이라는 특이한 병에 담는 화이트와인이다. 요즈음은 일반 와인병으로 생산되기도 하지만 프랑켄 와인은 역시 박스뷰털에 담겨 있어야 제 맛이 나는 듯하다.
얼마 전에 2014년 산 프랑켄 와인을 조심스럽게 마셔 보았다. 2015년에 여행 당시 구입한 줄리어스 슈피탈 (Juliusspital)이라는 와인이다. 화이트와인은 아주 좋은 와인이 아니면 2-3년 이후에는 맛이 밍밍해지거나 쓴 맛이 느껴지거나 하기 때문에 6-7년이나 지난 지금 화이트 와인을 마신다는 건 거의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다. 거의 기대 없이 와인을 개봉했다. 먼저 치즈와 크래커를 먹고 와인을 마셨는데, 뜻밖에도 맛이 너무 좋다. 이 Muller- Thurgau 품종은 싱그러우면서도 맛에 깊이가 있어서 프랑켄 와인 중에서도 우리가 좋아하는 품종이다. 그렇지만 좋은 와이너리의 와인이 아니면 십중팔구는 약간의 쓴맛을 감수해야 하는 품종이다. 그런데 이 와인은 오히려 오래되니까 쓴맛이 전혀 안 나고 오히려 약하게 끝맛에 달짝한 맛이 나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오래된 화이트 와인을 성공적으로 마셨다는 기쁨이 우리를 달뜨게 하게까지 했다.
이웃집 앤 할머니와 우리는 가끔 와인을 마신다. 앤 할머니가 예쁘고 아담하게 가꾸시는 뒤뜰에서 우리는 와인과 치즈나 다른 안주를 가져가고, 앤은 자기 집 냉장고를 털어 늘 맛있는 안주를 준비해 주신다. 이날은 앤이 대하와 직접 만든 호스래디쉬 소스와 타르타르소스, 야채, 올리브 등을 준비하셨고, 우리는 치즈와 크래커와 이 와인 그리고 프랑켄 와인잔을 가지고 갔다. 전통적으로 프랑켄 와인을 마시던 이 와인잔은 우리가 앤틱샵에서 구입한 것으로 참 특이하면서도 예쁘다. 아직 그 전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지는 못했지만 왜 이런 잔을 쓰는지에 대한 스토리가 있을 것 같아 흥미로워진다.
독일 와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와인은 리즐링 (Riesling)이다. 라인강 유역의 라인가우 (Rheingau)와 모젤강 유역이 대표적인 생산지이다. 이곳은 주로 한 가지 품종, 리즐링에 주력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동쪽으로 뷔르츠부르크 (Wurzburg ) 근교에 프랑켄 와인 산지가 있다. 프랑켄 와인의 생산 품종으로는 뮬러-뚜르가우 ( Muller-Thurgau), 실바너 (Silvaner), 박커스 ( Bacchus), 리즐링 (Riesling) 그리고 커너 (Kerner) 이 있다. 우리는 커너만 빼고 다 마셔봤는데, 나에게는 리즐링을 제외하고는 맛이 거의 비슷하게 느껴졌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분홍색 구불구불한 지역이 프랑켄 와인 지역, 조그만 초록색 지역이 라인가우,
노란색 기다란 지역이 모젤강유역의 와인 생산지역이다.
라인강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로렐라이가 있는 곳이다. 실제로 강 중간에 로렐라이상이 있다. 이 강을 따라서 드라이브를 하거나 배를 타고 관광을 하자면 강 주변 자그마한 산들에 고성들이 보인다. 특별한 느낌의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물론 유네스코에 기재된 곳으로 독일 여행을 한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물론 어디서든 마실 수 있는 리즐링과 함께.
프랑켄 와인 생산지의 중심인 뷔르츠부르크(Wurzburg)라는 곳은 우리가 적극 추천하는 로맨틱한 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그냥 로맨틱하다는 느낌으로 에워쌓여 있는 느낌의 도시. 이유를 찾아보려 해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스티븐이 특별히 독일을 좋아해서 이제까지 거의 30번 정도 갔었다는데 이 뷔르츠부르크를 제일로 꼽는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하는 도시이다. 앞서 언급했던 줄리어스 슈피탈 와인이 생산되고 쥴리어스 슈피탈에서 운영하는 분위기 멋진 와인바가 있는 곳.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쥴리어스 슈피탈은 병원 이름이기도 하다. 이 병원 바로 근처에 와인바도 있다. 종합병원과 와인너리가 같은 재단이라니 전혀 개연성이 없어 보이지만, 흥미롭기는 하다. 여기에도 무슨 스토리가 있겠지 싶은데 아직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뷔르츠부르크에서 가장 로맨틱한 곳은 올드 마인 브릿지인 것 같다. 12명의 성자상이 서 있고 다리 아래로 흐르는 마인강. 이 다리 위 성자상 곁에서 눈을 들어 보면 고성이 보이고 다리 건너편으로는 중세 모습이 간직된 다운타운이 펼쳐지는 예쁜 도시이다. 올드 마인 브릿지에서 걷다 보면 없었던 사랑도 생길 것 같이 로맨틱하다. 연인이나 부부가 독일 여행을 간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곳 중 한 곳. 이상하게도 관광객들이 프랑크 푸르트는( 1시간 거리) 다들 가면서 이곳은 그냥 패스를 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독일을 좋아하는 스티븐덕에 독일 남부 지방을 여러 번 여행했는데, 독일이라는 이미지와 선입견과는 달리 너무나 예쁘고 아기자기해서 나도 독일을 사랑하게 되었다. 동화 속 마을처럼 예쁘고 중세 마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독일 남부가 너무도 좋아서, 그리고 시골스러운 정이 흐르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우리 부부는 은퇴하면 독일에서 매년 3-6개월씩 살기로 약속했다.
프랑켄 와인 산지 중 한 마을인 서머하우젠 (Sommerhausen)은 중세 모습을 간직한 마을이다. 엄청나게 작은 마을로 걸어서 10분 정도의 길이 메인이자 다운타운이다. 스티븐의 친구인 씨기 (Sigi)가 바로 이 골목 왼쪽집 중에 하나에 살고 있다. 서머하우젠 (Sommerhausen) 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시간 남짓 동쪽으로 달리면 만나는 아주 아주 작은 마을인데 재밌는 건 서머하우젠 바로 옆에 작은 강을 두고 윈터하우젠 (Winterhausen)이라는 마을이 있다는 거다. 서머와 윈터... 하우젠은 집이라는 뜻. 왜 이 두 마을은 여름과 겨울이라는 상반된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예상하셨듯이 이 두 마을은 정말 상반된 마을이다.
서머하우젠은 작지만 사람들도 많이 나와있고, 관광객도 많고, 건물의 색이 밝고 예쁘다. 상점들도 많고. 그런데 윈터하우젠은 두 번 휭~ 차로 돌아봤는데, 길에서 사람을 한 명도 못 봤고, 건물색은 회색 중심으로 칙칙하고, 상점도 관광객도 없다. 베이커리 하나만 보였다.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 너무 이상한데. 그 사람들 유머로, 윈터하우젠에서 제일 좋은 점이 뭐냐고 물으면, 서머하우젠이 보인다는 거라고 할 정도로 윈터하우젠에는 좋은 점이 없다고 한다. 서머하우젠에 사는 사람들의 유머이니 윈터하우젠 사람들은 뭐라 할지 궁금하긴 하다.
그런데, 이 듣보잡 마을을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하긴 나도 그게 궁금했다. 스티븐이 1992년 슈투트가르트의 친구, 울리( Ully)를 ('둘리'아니고 '울리') 방문했을 때 울리의 친구인 씨기 (Sigi)를 방문하면서 와보게 되었다고 한다.
스티븐이 2014년에 나를 처음 데리고 서머하우젠에 왔을 때,
"그때 가본 집, 씨기의 집이 어디였더라? "
하면서 찾기 시작했다. 나는 농담으로 여겼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22년 전에 한번 와본 집을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이 골목 같은데..." 라며 길을 따라 올라가는 남편을 보고 깜놀.
"정말 기억이 난다고?"
그 골목의 한 집 앞에서 '이 집 같은데?' 하면서 기웃기웃한다. 마침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앞마당으로 나오시는데 스티븐이 앗, 저분이 Sigi 어머니 같아!! 하면서 말을 걸었다. 그 할머니는 영어를 전혀 못하시고, 독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스티븐이 손짓을 섞어가면서 소통을 했는데, 기적적으로 그분은 스티븐을 기억하시는 거였다. 활달하시고 유쾌하신 할머니, 에르나가 마침 아들이 없으니 저녁때 오라고 하셨다.
뷔르츠부르크에 가서 한나절을 보내고 저녁에 다시 찾아갔다. 어떤 할아버지가 엄청나게 반가워하면서 스티븐을 끌어안고, 떠들썩하게 뭐라 뭐라 하기 시작한다. 스티븐도 영문을 잘 모르는지 계속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나에게 설명도 안 해준다. 도대체 상황을 알 수 없으니 나의 상상력이 제멋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할아버지는 에르나 할머니의 동생인 것 같네. 스티븐 친구 Sigi는 아직 안 돌아왔구나.‘
그런데 그때 또 어떤 중년의 여자분이 나오셔서 스티븐을 엄청 반갑게 맞이한다. 그런데 여전히 스티븐은 나에게 설명을 안 해준다. 분명히 자기도 무슨 일인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 잘못 찾아온 건가? 이쯤에서는 아이고, 모르겠다. 상상을 포기했다.
알고 보니, 이 나이 드신 분이 Sigi였고, 중년 여자분은 와이프, Renate ( 르나테) 였던 거였다. 외국 사람들은 나이 30년 위아래로 다 친구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Sigi가 스티븐보다 나이가 한참 많았던 거였던 거다. 22년 만에 이렇게 변했으니 도저히 알아볼 방도가 없었다는.
스티븐이 Sigi를 처음 봤을 때.. 이랬던 그들이
이렇게 변했으니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
Sigi, Renate 그리고 Sigi의 어머니 Erna, 그리고 우리 부부
이분들이 얼마나 정이 많은지 우리가 그다음 해에 다시 만나러 갔는데 ( 이번에는 나의 부모님도 모시고 갔다), 스티븐의 친구 울리는 친구들과 함께 슈투트가르트에서 우리를 만나러 와주고, Sigi와 Ully 가 우리에게 동독을 보여 주겠다고 여행을 계획해서 우리 부모님까지 모시고 덕분에 동독 구경을 잘하고 왔다.
울리와 친구부부는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날 우리가 씨기와 르나테를 다시 만나러 왔을 때 마을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Sigi 가 우리를 그분들에게 소개하고, 뭐 그래서 얘기가 시작됐는데 잠시 후 저녁식사시간이라고 다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고 이야기가 흘렀다. 벙개로 ' 여기 있는 사람 다 모여'하며 으쌰으쌰 함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래서 남녀노소 불문 모두 모두 같이 모여 앉아 즐거운 저녁 시간을 가졌다. 차갑고 냉정한 사람들만 살 것 같은 독일에서 이렇게 정 넘치는 사람들을 보니 서울에서 나고 자라 시골 정을 모르는 나도' 정이란 게 이런 거구나'하는 느낌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식사 시간 내내 웃음이 그치지 않았던 너무나 유쾌하고 즐겁고 흥겨운 저녁식사였다. 올해 다시 방문하면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얼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