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부자, 미케

Day 17-2. 브뤼헤 (Brugge) 도착, 벨기에

by 여행에 와 락

브뤼헤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오는 길이 멀어서 차 안에서 마트 음식으로 간단하게 대신했다. 브뤼헤에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타운의 중앙에서 가까운 건물이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집이다. 꼭대기 층에 있는 우리 방의 창문으로 보이는 전망이 백만 불 짜리라 이 방을 수개월 전에 일치감치 예약해 두었다. 모든 곳을 걸어서 다니기 쉽다는 점과 벨기에 사람의 사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주차를 도와주겠다고 나선 집주인과 스티븐이 나갔다 들어왔는데 스티븐이 돌아와서는 집주인인 미케가 아주 특별히 나이스 한 사람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한다. 사람 좋게 생긴 60대 중 후반의 키 큰 아줌마, 미케, 급호감이 생겨서 내려가자마자 대화를 시작했다. 미케는 먼저 우리가 갈 곳, 꼭 먹어봐야 할 것, 등등 가이드를 해준다. 그런데 아래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리빙룸이 예사롭지 않다. 인테리어 센스가 돋보이는 고가구와 소품뿐만 아니라 그림들이 집 전체에 가득 걸려 있어서 매우 예술적이다.


앤티크와 예술품의 조합.



미케는 교수였던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10년 전 이혼을 했다고 한다. 장성한 3자녀가 있는 60대 중후반의 미케는 갑자기 당한 이혼에 남편의 빚까지 떠안게 되어 남성 의류매장에서 매니저 일을 했다고 한다. 이혼 후 연락을 두절하고 자취를 감춘 남편의 빚을 7년 동안 갚았고 그 이후로 코로나로 매장이 문을 닫을 때까지 일을 아주 즐겁게 한 것 같다. 매우 활달한 성격에 뭔가 하지 않으면 답답해하는 미케는 이제 앤티크에 관심이 생겨 대학에 다시 들어갔다. 앤티크 클래스를 듣고 있다고 했다. 이번 학기는 앤티크 미술, 다음 학기는 그릇, 또 다른 학기는 가구 등 자세하고 깊이 있는 커리큘럼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고 아주 즐거워한다. 집의 가구도 모두 앤티크 가구다. 이모한테 받은 것, 할머니한테 받은 것, 일을 배우면서 산 것 등 정말이지 유럽 앤티크 가구는 왠지 더 멋져 보인다. 미국의 앤티크 가구는 역사가 길지 않은데 유럽의 앤티크 가구며 소품은 수백 년 된 것도 있기 때문인 걸까? 그리고 집안에 걸려 있는 미술 작품들은 이모의 작품이다. 꽤 알려진 미술가였던 이모는 여러 곳에서 전시를 하셨었는데 지금은 연로하신 데다 암 투병까지 하고 계신다. 이런 이모님이 그녀의 작품을 사랑하는 미케에게 아직도 많은 작품을 계속 물려주고 계신다. 미케는 이모의 작품을 모두 모아 조만간 전시회를 열 계획을 가지고 꼼꼼히 목록과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미케의 이모님 작품들



공부와 앤티크 비즈니스를 배우는 것만으로 아직 몸이 다 풀리지 않는 미케는 매일 엄마와 이모를 방문하고 또 다른 연세 드신 분들을 방문하여 말동무를 해 준다. 그분들께 드릴 음식을 해가고 간식을 준비하며 바쁘게 사는 미케. 아는 어른들이 오라고 하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미케. 브뤼헤 공식 효녀다. 딸 셋 중에 엄마와 가장 가깝게 사는 미케는 지난 3월 아버지를 여의고 쓸쓸해하시는 86세 어머니를 매일 1시에 방문한다. 점심을 함께 하고 산책을 함께하면서 대화를 아주 많이 한다고 했다. 대화 중에 엄마는 이제 언제든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미케를 안심시키신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자기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고.


엄마는 무용수에 안무가이셨다면서 부모님의 젊을 적 사진을 보여준다. 이런 사진을 보면 인생이 참 짧고 덧없다는 생각에 슬퍼진다. 젊음의 아름다움은 정말 덧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결국 죽음이 찾아온다. (그리고 누구도 죽음을 비껴가지 못한다.) 아버지는 올해 3월에 돌아가실 때까지 큰 딸인 자기의 이름을 한 번도 부른 적이 없다고 한다. 늘 다알링이라고 부르셨다고 하니 아버지가 미케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 것 같다. 서양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에 허니, 다알링, 베이비 등 애칭을 종종 쓴다. 나도 스티븐과 시어머니가 서로 허니라고 부르는 걸 보고 좀 징그럽고 이상했는데 부모, 자식, 친구사이에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미케가 사는 빌딩은 수백 년 된 건물로 벨기에 특유의 가옥 스타일인 다닥다닥 붙은 집들 중 하나이다. 폭이 그리 넓지는 않으나 깊숙이 들어가는 샌프란시스코의 주택 형태를 떠올리게 했다. 벨기에 뿐 아니라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도 이런 주거 형태를 볼 수 있다. 건물의 현관문을 들어가 이층으로 올라가면 주방이 나오고 더 들어가 3 계단을 올라가면 건물 사이의 빈 공간, 예쁜 아웃도어 쉼 공간이다. 거기서 또 더 들어가 2 계단을 올라가면 커다랗고 천장이 아주 높은 거실이 나온다. 천장이 높으니 밖으로 향한 창문도 큼직하고 길다. 커튼이 길게 드리워진 창문이 높은 천장과 아주 잘 어울린다.


미케의 집에서 보이는 전망


미케의 집에서 보이는 전망의 정면 모습.


이 건물은 알고 보니 미케의 자가가 아니었다. 빈털터리로 이혼한 미케는 집 살 돈이 없어 세를 들어왔다고 한다. 월세는 놀라울 만큼 쌌다. 주인을 잘 만나 월세도 안 올리고 미케가 나가고 싶을 때까지 살라고 했다고 한다. 자기는 이 집이 너무 좋아서 죽을 때까지 살 거라고. 좋은 사람 곁에는 꼭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법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이 건물의 이층에서 부터 이 집이 시작되는데 이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3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아파트가 나온다. 부엌, 욕실, 커다란 침실, 거실까지 완벽하다. 이 아파트도 미케의 렌트에 포함된다. 비워 놓고 가족이 오면 쓰는 곳이니 다음에 오면 이 아파트에 와서 있으란다.



따뜻하고 밝은 사람을 만났다. 어른들에 대한 따스한 마음이 있는 것이 스티븐과 아주 많이 닮았다. 그래서 더 서로 말이 잘 통하는 것 같다.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 같지 않게 아주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그런 사람이다. 오래된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사소한 이야기를 존중하며, 부모와 자식을 조건 없이 돌보고 사랑하는, 또한 한 미술가의 미술 작품을 사랑하고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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