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의 도시

Day 18. 브뤼헤 ( Brugge), 벨기에

by 여행에 와 락



"......, 미나는 사랑하는 스트롬버그의 품에서 그렇게 숨을 거두었고,

..... , 그들은 그곳을 미나의 사랑의 호수라고 불렀다."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에 못 이겨 숲으로 도망친 미나 ( Minna), 그녀를 찾아 나선 연인, 스트롬버그 (Stromberg). 결국 스트롬버그가 미나를 찾아냈으나 허약해진 그녀는 끝내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스트롬버그는 강에 댐을 만들어 물을 막은 후 바닥에 그녀를 묻고는 물로 덮어 호수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미나의 사랑의 호수( Minnewater Lake, 또는 Lake of Love) 라 불렀고, 그녀가 아버지를 피해 숲으로 도망갈 때 건넌 다리를 연인들의 다리( Lovers' Bridge)라고 부른다. 연인들의 다리에서 키스를 하면 영원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전설도 있다. 연인들의 도시다운 전설이다.



미나의 사랑의 호수




중세 그림, Rozenhoedkaai Quay과 현재의 모습 (아래)





브뤼헤는 벨기에의 서쪽에 위치한 도시로 운하가 많아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아름다운 도시, 브뤼헤는 13세기 중세 시대 건물로 가득 차 있어 더 특별하다. 길이며 건물이며 다리며 중세의 모습을 아주 훌륭하게 보존한 곳이다. 벨기에의 보석, 유럽 제일의 로맨틱한 중세 도시라는 타이틀이 과장이 아니다. 나는 15년쯤 전에 혼자 벨기에로 여행을 했을 때 브뤼셀에 묵으면서 데이 투어로 하루 만에 이곳을 다녀온 적이 있다. 도시 곳곳에 작은 운하가 흐르고 그 운하를 유유히 떠다니는 작은 배와 백조들이 노닐고 있었던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 수많은 운하가 떠 있고, 벨기에 특산품인 태피스트리 가게가 즐비하던 골목, 거리의 악사의 음악이 흐르는 마켓 광장, 밀크 거품 그득한 카페라테, 마차를 끄는 두 마리 말의 따각따각 말발굽 소리. 마치 중세를 여행하는 듯한 이 도시에 다시 찾아왔다.


사랑의 호수 근처에서 마차 투어가 시작된다.


연인들의 다리 근처에 조성된 작은 공원 입구


운이 좋게도 우리는 브뤼헤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는 방을 예약할 수 있었다. 바로 Rozenhoedkaai Quay라는 브루헤를 대표하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집을 나와 다섯 발자국을 떼면 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도시 구경을 나가기 전에 창문으로 밖의 전망을 한참 동안 감상했다. 어두워질 때 즈음에 집을 나오니 여기저기 밝혀지기 시작하는 불빛들로 도시가 더 운치 있고 아름답다. 창문으로 보이던 운하와 주위 건물들이 불빛을 받아 고혹적인 모습이다.


불빛이 들어오는 순간 이곳은 마법처럼 로맨틱한 연인들의 도시로 변한다. 집을 나선 우리는 손을 잡고 걸으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이미 상점들은 다 문을 닫았지만 아직 사람들은 북적인다. 노천카페로 둘러싸인 마켓 광장은 기억하던 그대로 멋스럽다. 하늘로 향한 계단처럼 생긴 지붕의 벨기에 특유의 건물들이 주욱 늘어선 종탑 맞은편. 광장의 모습을 즐기는 노천카페의 사람들. 이 광장에서 가장 높게 하늘로 우뚝 솟은 종탑. 흡사 5성급 호텔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법원 건물. 모두 여전하다.


이전에 왔을 때 혼자 커피를 마시며 거리의 악사의 연주를 즐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대학원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있었던 터라 거리에서 외롭게 연주하던 악사에게 꽤 거금을 거부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 섭섭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작은 골목들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중세 건물이 즐비한 골목마다, 거리마다 사랑 가득한 연인들로 넘쳐난다. 저녁이 되니 연인들이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 걸어 다니던 시간 내내 이곳은 정말 로맨틱한 곳이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마법에 걸린 듯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물의 도시, 중세의 매력이 그득한 이곳, 어느 구석 하나도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 없다.


. 마켓 스퀘어의 노천카페들



. 마켓 광장 종탑. 건물은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마켓 광장 한면을 차지하는 플란더스 지방 법원 (Brugg Flanders Provincial Court)



중세에 길드로 쓰였던 건물들


관광지로서의 브뤼헤는 아주 작다. 적어도 올드타운은 걸어서 다녀도 충분할 만큼 작다. 만약 관광객이 모이는 곳만 간다면 가볼 곳은 더 축소된다. 올드타운은 성곽과 강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여 있어서 관광지가 아닌 일반인이 사는 주택가로 나가려면 성곽을 빠져나가야 한다.


올드타운 관광지는 메인 광장인 마켓 광장 ( Market Square)을 중심으로 4-5군데 정도로 나누어진다. 아침에 관광을 하려고 나오자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곳이 보트 투어를 하는 곳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줄을 서지 않아도 돼서 우리는 곧바로 타기로 했다. 영어와 벨기에 언어로 돌아가며 설명을 해주는 뱃사공의 가이드를 들으며 운하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한 지점에 이르면 배가 유턴을 해서 다시 돌아가는데 바로 그곳이 사랑의 호수 입구이다.


이 사랑의 호수 근처에서는 브뤼헤 심벌인 백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작은 호수 주변은 공원처럼 조성해 사람들이 풀밭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조깅을 하기도 하며, 마차들이 출발하는 곳도 이 근처에 있다. 이 호수에 있는 기다란 다리가 바로 연인들의 다리이다. 이 다리 위를 건너 끝에 있는 문을 열면 공원처럼 보이는 곳이 나타난다. 미나가 도망친 그 길이다. 예전에 왔을 때 이 공원과 백조, 그리고 보트 투어 하는 사람들이 아주 인상 깊었었다. 그때는 바라보기만 하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이 운하의 보트 위에 내가 앉아 있다니... 꿈만 같다. 브뤼헤가 유럽 북부의 베네치아 (The Venice of the North)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운하 곁으로 세워진 중세 건물들이 찰랑이는 물결의 리듬을 받으며 수세기 동안 세월을 살아내고 있다. 운하 곳곳의 돌다리들은 건물들과 어울려 더할 나위 없이 운치 있다. 물 위 보트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강가나 물가에서 보는 것과는 아주 다른 느낌을 안겨준다. 한쪽 편만 보는 풍경 대신에 풍경이 통째로 물과 함께 눈으로 들어온다. 바람도, 공기도, 가르는 물의 느낌도 참 좋다


브뤼헤 운하







보트에서 내린 우리는 하루 종일 걸어 다녔다. 예전에 한 골목에 줄지어 있던 태피스트리와 레이스 가게들은 이제는 몇 개 남아있지 않다. 지난번에는 테피스트리로 만든 쿠션 커버를 샀었는데 이번엔 레이스가 달린 고급스러워 보이는 하얀 식탁보를 샀다. 차를 마실 때 쓰면 품위 있어 보일 듯하다. 거리에는 커다란 초콜릿 상점도 여러 개 된다. 와플을 파는 커피숍은 어디에 가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유명한 벨기에 맥주를 파는 펍도 자주 눈에 띈다.



우리는 거리에서 벨기에 와플도 맛보고, 진한 카푸치노도 마시고 벨기에 초콜릿 맛도 보았다. 이제 홍합만 먹으면 벨기에 먹거리는 완전 정복이다. 15년 전 나 혼자 여행을 왔을 때 나는 홍합요리를 매 저녁 끼니마다 먹었다. 원래 해산물을 좋아하므로 벨기에 대표음식인 홍합요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침은 호텔 뷔페에서 해결하고 저녁엔 홍합을 먹느라 다른 것을 먹을 여지가 없었던 나는 초콜릿은 집에 사 오는 것으로 대신했지만 와플을 먹어보지 못했었다. 몇 년을 두고 얼마나 후회했었던지... 이번에 반드시 와플을 먹으리라. 결국은 먹어보았는데 맛은 우리가 아는 그 맛이었다. 한국 베이커리의 화려하고 창의적인 와플이 훨씬 맛있을 것 같다. 스티븐은 집주인인 미케가 권하는 Duvel 맥주를 매일 저녁 마셨는데 애정 하는 독일 헤파바이젠 맥주에 비해 좀 무거운 감이 있었다고 한다.


브뤼헤라는 이 작은 도시에서는 그저 한가롭게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중세 분위기에 취해보고, 멋진 건물과 아름다운 운하에 감동하면 되는 것 같다. 중간중간 여러 가지 먹거리들을 즐기면서 말이다. 와플, 커피, 초콜릿, 맥주 그리고 홍합. 그러고 보니 벨기에에 대표 먹거리가 많다. 홍합요리는 우리 숙소와 붙어있는 옆 건물에 있는 커다란 음식점에서 먹기로 했다. 운하가 바로 코앞에 보이는 노천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 사람들이 부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맛을 보니 이건 내가 그냥 해도 이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역시 관광지에서 먹으면 안 된다. 그것도 관광지 한복판의 가장 큰 음식점이었으니. 우리는 이만 저만 실망한 게 아니었다. 이건 어지간하면 맛이 없을 수 없는 요리인데. 나는 스티븐에게 장담을 했다. 내가 만들어 보겠다고. 그리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날, 나는 정말 홍합찜을 만들었다.



벨기에의 명물, 홍합요리


홍합요리를 먹은 테이블에서 바라본 뷰


저녁 먹고 들어온 우리는 오늘도 미케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담소를 나누었다. 미케 자신의 이야기, 가족 이야기, 여행 이야기 또 우리의 삶 이야기. 미케를 위해 찻집 주인이 직접 조제해주었다는 사과 꿀차를 마시며 오랜 친구처럼 끝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관광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 또 다른 느낌이 있다. 뭔가 더 풍성하고 깊이 있는 여행을 한 느낌이라 참 좋다. 진심이 진심과 만나면 폭발하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내일은 아쉽게도 벨기에를 떠나는 날이다. 브뤼헤는 작은 타운이라고 생각하고 이틀 밤만 묵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언제나처럼 며칠 더 묵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면서도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행복감이 차오르는 건 이곳이 로맨틱한 곳이어서였을까? 브뤼헤는 우리의 시계를 연인 시절로 돌려놓은 것 같다. 운하를 따라 돌이 깔린 바닥 위를 걷노라면 우리 둘, 단둘만이 이 근사한 중세마을에 뚝 떨어진 느낌이 드니 말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더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곳에서는 모두 연인이 되고야 말 것 같은 분위기다. 여기저기서 달달한 키스와 허그가 자주 목격되는 로맨틱한 도시. 하루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이 마지막 밤에 훅하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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