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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상작가 해원 May 24. 2024

3-4. 몸은 일등석에, 양심은 똥통에 있는 자들

3장. 음모,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나는 언젠가부터 진화식이 참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의 외모와 능력 그리고 여러 가지 배경으로 봤을 때 그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업가인 아버지 아래에서 나름 좋은 교육을 받았고, 매년 가족여행을 해외로 갈 수 있을 만큼 부유했으며 학벌도 좋은 편이었다. 그는 아주 성실했으며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었다.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었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왜 진화식은 늘 거짓말하며 불안한 삶을 사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진화식과 함께하며 그를 좋은 사람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조금씩 빛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전화를 받은 나는 그동안의 그 오랜 노력이 모두 헛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회장을 배웅하기 위해 공항으로 간 진화식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었다.          


법인장님항상 하던 대로 이 회장님 돌아가시는 비행기 좌석을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해드리려고 했는데 지금 비즈니스 좌석 남은 게 하나도 없답니다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무슨 연유에선지 이 회장은 늘 이코노미 좌석을 예매해 미국으로 왔고 우리는 관례처럼 그의 좌석을 상향해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비즈니스 좌석이 모두 동이 났다는 것이었다.      


지금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건 First Class밖에 없답니다그런데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비즈니스의 세배입니다.”     


한국 돈으로 치자면 거의 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늘 이코노미만을 타던 나로서는 그 금액을 주고 일등석을 탄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다른 방도를 찾을 길이 없었다. 나와 거의 보름을 같이 하며 피로에 지친 이 회장을 일반석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설령 이 회장을 일반석으로 보낼 거면 눈치 빠른 진화식이 나에게 전화하지 않고 본인이 알아서 사정 얘기를 하는 게 맞다. 굳이 나에게 전화를 했을 때는 그로 인한 책임을 나에게 돌리겠다는 뜻이다. 내심 감사가 걱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최대의 거래처 아닌가? 나는 진화식에게 일등석으로의 상향을 허락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했다. 나를 만나기 전부터 이 회장은 진화식의 오랜 지지자였다. 진화식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이 회장은 진화식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잘은 모르지만 진화식은 그에 대한 보답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관계가 나로 인해 위기를 맞은 것이다. 나는 알게 모르게 진화식의 이중성을 이 회장에게 말해 왔고 그런 내용을 이 회장은 진화식에게 모두 알려오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 둘은 둘 사이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 나를 시험해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진화식이 이 회장에게 거짓을 고했다.      


법인장님이 이 회장님 비행기표 상향하는 걸 거부하셨습니다감사에 걸린다고요죄송한데 그냥 이번에는 일반석으로 가셔야겠습니다.”     


이 회장은 벌컥 화를 내며 대꾸했다.     


“뭐? 어제까지는 형님이라고 시까지 적어서 바치던 놈이 나한테 그 정도 배려도 못 한단 말이야? 내가 연간에 올려주는 매출이 얼만데? 알았어. 내 일반석으로 갈 테니까 다 집어치워!”     


회장님그래도 어떻게 제가 회장님을 일반석으로 보내겠습니까이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혹시 감사에 걸리더라도 제가 다 책임지고 상향해 드리겠습니다회장님대신 법인장님께는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제가 따로 말씀드리고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이 회장은 일등석으로 한국으로 돌아갔고 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진화식과의 약속을 어기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나로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이 회장은 나의 말을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나의 말을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은 이유는 비단 이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미국에 올 때마다 요구했던 몇 가지 어려운 부탁을 나는 계속 거절해 오고 있었다. 그 부탁은 대부분 미국에 있는 대형제품을 사서 한국으로 보내달라는 거였고, 수출입 규정상 불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더 빠르고 친밀한 소통창구였던 진화식은 그 불가능의 모든 탓을 나에게 돌려 왔었다.     


진화식을 불러 이런 모든 문제를 추궁했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처럼 한결같았다.     


“저는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혹시 무슨 오해가 있으신 건 아닌지? 아니면 이 회장님이 뭔가 오해를 하신 모양입니다. 가능하다면 삼자대면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그 여름 진심은 절대 통하지 않았다. ‘유유상종 類類相從’ 구린 것들은 구린 것끼리 어쩌면 이렇게 잘 통하는지, 나는 스스로 그들을 포기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고 누가 말했던가? 몸은 일등석에 있지만 양심은 똥통에 처박아 두고, 똥보다 더한 구린내가 나는 그들을 나는 더 이상 고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진화식의 작은 거짓말들이 나의 삶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계속되는 눈부신 사업적 성공과는 달리 주변에서는 계속 불길한 일들이 생겨났다. 이철진이 주도하는 그룹으로의 사업 이관, 그리고 이 회장과의 갈등 그리고 근원지를 알 수 없는 나에 대한 이상한 모함들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안심하고 소신껏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김주환 사장이었다. 그는 어쩌면 나를 속속들이 경험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늘 입버릇처럼 나에게 했던 말, “누가 뭐래도 난 너를 믿는다.”였다.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했는가? 원수 조양자의 옷을 베고 그 칼에 엎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진나라 예양의 말이 사무치게 떠 오르는 건 왜일까?     


여름이 지나 다시 우기로 접어드는 9월 말, 첫 비와 함께 우울한 소식 하나가 미국으로 날아들었다. ‘간첩 이철진’ 그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표이사의 엄명을 받들고 그가 미국으로 온다는 것이었다. 오랜 건기의 끝에 내리는 첫 비는 늘 이상한 비릿함을 몰고 온다. 비릿한 것은 늘 비릿한 것들끼리 함께한다.     


지난번 감사 때도 그의 교활함을 느끼지 못한 건 아니지만 공항에서 만난 그는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인간이었다. 미국 땅에서 만난 직장 동료라면 으레 형제와도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인간은 나를 마주친 그 순간부터 마치 나를 죄인 취급하는 듯했다. 나의 그 어떤 호의도 거절했다. 심지어 밥 한 끼에도 마치 규정을 어기면 안 된다는 듯 금액을 따졌다. 이런 놈은 생전 처음이었다. 목소리 자체만으로 짜증이 나는 놈은 이놈이 정말 처음이다.      


“그래 대표이사님 엄명을 받들고 좋은 아이디어 좀 많이 가지고 오셨습니까? 아무튼 이번 출장에 사업 확장을 위해서 많은 역할 기대 하겠습니다.”     


법인장님궁금한 게 있습니다지난해 본사의 승인도 없이 혼합 신제품 생산해서 판매하셨죠그거 제가 살펴보니까 불법적인 요소가 엄청 많던데요. 한국에서 수입하는 절차도 이상한 점이 많고요그거 그렇게 무리해서 진행할 필요가 없었다고 보는데혹시 그거 취급하면서 뭐 법인장님께 도움 되는 거라도 있었습니까?”     


“도움 되는 거라니요? 뭐 개인적인 이익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 이철진 팀장, 당신 지금 장난해? 나는 회사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거라고. 그럼 미국 놈들은 다 하는 짓을 우리는 앉아서 당하고만 있었어야 한다는 말이야? 그리고 본사 승인이 없었다니? 승인을 몇 번 올렸는데 다 법인장 재량으로 하라고 결정 나서 내가 취급한 거라고. 그건 김주환 사장님도 다 아는 일이야. 당신 여기 사업하려고 온 거야, 감사하러 온 거야? 어?”     


~~! 이렇게 발끈하는 게 뭔가 있긴 있나 보네!”     


“뭐라고? 이런 개 xx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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