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형 인간.
나를 오래 안 친구들은 니가 돈이 없는 이유를 너무 알겠다고 한다. 하도 이것저것 관심가지고 찔러보는 게 많아서. 취미도 많고 수집욕도 있고. 쉽게 말하면 돈이 모일 시간을 주지 않는다.
지금껏 나를 거쳐간 취미만 해도 바느질, 뜨개질, 베이킹, 커피… 수집 항목도 꽤나 다양했다. 책, 텀블러, 립스틱, 아이돌 포카까지 돈 드는 건 다했다고 보면 된다. 어느 날 마음의 큰 변화를 겪고 대부분은 다 처분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수집욕이 있으니 ‘그릇’이다. 다이소 그릇부터 백화점 브랜드까지 종류와 가격을 가리지 않고 사 모은 수납장을 보면 저러다 무너지면 어쩌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릇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건 접시와 찻잔이다. 그중에서도 빛이 비칠 정도로 얇은 본차이나 제품. 깨끗한 흰색 내부와 대비되는 화려한 금테와 섬세한 꽃무늬, 그리고 수색이 잘 보이는 피오니 쉐입. 다 구겨진 파자마에 까치집 지은 머리를 하고 있지만 그 잔에 차를 마시는 순간만큼은 내가 귀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침에 눈 떠서 제일 먼저 마시는 커피는 주로 모카포트를 이용하는데 그때 애용하는 건 데미타세이다. 휘뚜루마뚜루 쓰기에는 스벅이 최고지만 좀 여유가 있는 날은 빈티지 데미타세를 꺼낸다. 귀여운 물방울무늬에 초록과 빨강이 섞인 빈티지 빌보. 소서까지 갖춰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누군가는 어차피 깨질 거 뭐하러 그릇에 돈 쓰냐-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그릇이 좋다. 특히 요즘 관심을 가지게 된 빈티지 그릇들은 깨져 없어질 운명을 오래오래 버텨왔다는 점에서 더 애정이 간다. 누구의 손에서 그 수명을 다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에게까지 와 준 게 운명같아서.
웨지우드사의 해서웨이 로즈는 갖고 싶어서 오래 찾아보다가 당근으로 구한 제품인데 얼마 전 운명하셨다. 그것도 술 먹고 설거지하다가.
깨지면 다시 구하기 어려운 빈티지 그릇이지만 나는 아끼지 않고 팍팍 쓴다. 나에게 그릇은 쓰일 때 그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 보면 이렇게 깨 먹기도 한다. 그런데 깨지는 것도 결국은 그릇이 가진 마지막 운명이니까 슬프긴 해도 안타깝지는 않다. 그걸 사용하는 동안 내가 즐거웠으면 그걸로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