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도 가고, 영화도 보고
우리 휴가는 겨울에 쓴다. 남편이 하는 일과 관련해 겨울에 가는 게 제일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어서 해마다 1월이나 2월이나 가고 있다. 재작년 가을엔 휴가는 아니고 가족 워크숍 비슷하게 남편 동료들과 강릉으로 다녀왔는데 그때 엄마가 전화를 했었다.
“이러저러해서 강릉에 왔어요.”
“음.. 그렇구나.. 재밌겠네.. 좋겠다....”
‘아, 그렇구나 재밌게 보내고 와’ 하셨으면 내 마음이 편했을 텐데 나는 할 일도 없고 갈 데도 없어 심심해 있는데 너는 좋구나라는 말씀을 하셔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그때 생각했었다. ‘이런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엄마도 나도 마음이 편하겠구나’라고.
이번 휴가도 그랬다. 제주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시부모님께도 친정엄마께도 아무 말씀드리지 않았다. 50이 다 되어가고, 나도 아이들 낳고 가정을 꾸려 살고 있는 게 15년이 넘어가는데도, 이러쿵저러쿵 변명인지 설명인지 모를 말들을 늘어놓는 내 모습과 상황이 싫었다. 날씨 때문에 계획했던 제주도에 갈 수 없어 우리 집에서 먼 내륙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여행 중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기 눈 많이 오니? 뉴스 보니까 동해안 쪽엔 눈이 엄청나게 왔다던데.”
“오긴 와요, 근데 뉴스에 나온 곳처럼 오는 건 아니고요. 동해안은 우리 동네랑 먼 곳이니까.”
마치 그냥 집 근처에 있는 것처럼 전화를 받았다. 거짓말은 한 마디도 들어있지 않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엄만, 엊그제 서울 다녀왔어. ##랑 @@랑 동대문 가서 구경도 하고 뭐도 먹고 그러고 왔어. “
“잘하셨네. 그렇게 다녀올 수 있으면 좋지 뭐. “
“안 그래도 혼자 다닐 수 있을 때 많이 다녀야 한다고 다음에 또 가자 그러더라고.”
전에도 한 번씩 그렇게 서울나들이 갔던 오랜 친구분들과 오랜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말씀하시는 목소리에 엄마의 기분이 느껴져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여행에서 돌아오는데 엄마가 한번 더 전화를 하셨다.
“으응.. 이것 좀 인터넷으로 알아봐 줄래? ##집사님이랑 몇몇이 3월에 거기 가기로 했거든. 어제는 영화도 보고 왔다. “
“그래요? 이승만 보고 왔어요.?”
“응, 어떻게 알았대? 예배 끝나고 영화 보러 가자 그러길래 다녀왔어. 나이 많은 노인네 같이 다녀주니 고맙지. “
“아래층 아이들은 아직 안 왔죠?”
“응, 3월 1일에 온다 그랬으니까 그때까지 나도 쉬는 거지 뭐.”
엄만 아래층 아이들 등하교를 도우면서 용돈 벌이를 하고 계신다.
다행이다.
내가 남편과 내 새끼들과 즐거운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엄마도 즐겁게 지내셨다니 다행이다.
미울 때도 많은 엄마지만 잘 지내고 계시는 게 안심이고, 그런 소식에 내 마음에 평화롭다. 내 삶에서의 행복이 코끝을 스쳐 지나갈 때, 마음 한 구석에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지곤 하는데 엄마가 엄마 삶을 즐거워할 땐 그 불편함이 슬쩍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