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와 브런치
몇 년 간 블로그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 왔다.
지금도 그렇다.
결혼하기 전 가끔씩 영화본 얘기도 쓰고, 어디 다녀온 얘기도 쓰다가 오래도록 닫아뒀던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광고수익’때문이었다. 블로그에 광고가 달리면 광고 클릭수에 따라 수입이 된다는 얘기를 지인에게서 듣고 막연하지만 부업이 될 수 있을까 싶어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일단 내가 쓰는 글은 ‘글’이라고 하기도 뭐 한 그냥 일기였으니까. 3남매를 키우며 겪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주로 썼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나만 흥미로운 거였다. 광고수익이라는 건 조회수와 클릭수 이런 게 중요한 것 같은데 남들이 찾아와 읽을만한 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며 여전히 내 이야기를 읽어주고 있는 이웃들에게 참 감사하다.
처음엔 카테고리도 나눴다. 나의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여행스케치.. 막 이렇게 나눠놓고 게시판에 맞는 글을 썼다.
그러다가 막상 내가 쓰는 이야기가 어느 카테고리에 어울리는지도 헷갈리고, 그걸 구분 짓는 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블로그에 처음부터 있었던 카테고리인 ’낙서장‘에만 쓰고 있다. 길든 짧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그냥 ‘글쓰기’를 눌러서 쓰니 게시판이 따로 지정되지도 않고, 그걸 신경 쓰지도 않고 그저 쓴다. 그러다 보니 처음 욕심부렸던 ‘광고’는 나랑 먼 얘기가 되었고, 그런 내 위치를 바로 보고 오히려 부담을 덜었다.
그러다..
블로그 이웃이기도 하고, 오프라인에서도 이웃인 지인이 내게 <브런치>를 권했다. 내가 블로그에 쓰는 이야기가 읽을만하다며 한 번 해 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블로그도 그 지인 덕분에 다시 시작했구나) 마음이 혹했다. 내 이야기가 읽을만하다니 일단 기분이 좋았고, 한 번 ‘글’이라는 걸 써 보고도 싶었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재주는 없으니 그냥 내 얘기를 잘 써 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브런치 입문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냥 대충 신청했다가 퇴짜를 맞았고, 그다음엔 조금 더 생각하면서 소개글도 쓰고 목차도 썼는데 또 한 번 퇴짜를 맞았다. 그러고 나서 한 번 더 도전을 했던가?
암튼, “선정되지 않았습니다. “라는 메일을 받고 혼자 삐져서는 ‘브런치는 무슨, 됐어. 안 해.’ 했다.
그러고 얼마가 지나 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는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친정엄마와 힘든 내 속 얘기가 쓰고 싶었다. 하소연하듯 쓰다 보면 내 마음이 나아질까, 스스로 좀 달래 질까 싶었다. 그래서 엄마 이야기를 주제로 다시 신청했고, 이번에는 “작가에 선정되었습니다.”라는 메일을 받았다. 간헐적으로 엄마 이야기를 쓰다가 연재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여전한 엄마와 나이 든 딸>이라는 브런치북을 쓰게 되었다.
가장 최근 연재가 언제였나 보니 6월이네 벌써 두 달 하고도 반 정도 지났다.
그런 게 연재가 아닌데, 그렇게 나 안 쓰고 싶다고 안 쓸 거면 연재를 시작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자꾸 미뤘다. 처음엔 주중에 잘 써 놨다가 연재일인 금요일이 되면 올리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써 놓은 게 없는 채로 금요일이 되면 숙제를 안 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 주를 넘겨 보고, 또 넘겨보고... 에라 모르겠다 하다가 두 달이 지나갔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을 훌쩍 보낸 이유가 숙제하기 싫어서만은 아니다.
블로그에는 주로 아이들 이야기를 쓰고, 브런치에는 엄마 이야기를 쓰다 보니 키보드 앞에 앉을 때부터 마음가짐이 다르다. 정확하게는 마음으로 느끼는 무게가 다르다. 아이들 이야기는 워낙 시시콜콜하다 보니 가벼운데, 엄마 이야기는 내 속에서 부대낄대 쓰게 되니 좀 무겁다. 어떤 날에는 글을 쓰면서 다시 되뇌고 싶지도 않을 때도 있었고, 어떤 날에는 무거운 마음을 정리하려다 보니 하루 이틀 지나 그렇게 그냥 흘려보낼 때도 있었다.
요즘은..
여전히 엄마와의 통화가 길어지면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열을 올리기도 하지만 엄마가 어쩐지 안쓰럽다. “젊었을 때 안 그랬으면 지금 더 낫게 살 텐데”라는 모진 말도 엄마에게 들릴 듯 말 듯 흘린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지난날 잘잘못 따지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어쨌든 엄마는 80이 넘었고, 세월 따라 몸은 약해지고, 여전히 가난한데, 아무리 젊은 체하고 싶어도 몸도 마음도 그렇지 않은 걸 숨길 수가 없는데, 엄마 젊은 날에 엄마 80이 이렇게 쓸쓸할 줄 몰랐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교회에서 많이 쓰는 단어 <긍휼>이라는 말이 한 번씩 생각난다. 이제는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서 도와줌’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긍휼>한 마음을 엄마에게 가질 때가 아닌가 싶다.
이번 주에는 엄마에게 옷을 몇 벌 보냈다. 50이 다 된 나이를 나도 못 받아들이는지 영 내 옷 같지 않은 새 옷이 생겨서, 오히려 엄마가 잘 입는 스타일인 것 같아서 보냈다. 옷을 받고는 전화하셔서 다 입어 봤는데 엄마에겐 좀 타이트한 것 같다며 호호호 웃는다. 그래도 새 옷 입어보니 즐거운 모양이다. 입을 만한 것은 입고, 엄마 입기 좀 불편한 건 교회 누구 준다길래 그러시라고 근데 꼭 입겠냐 물어보고 주시라고 잔소리 한마디 붙였다.
식구들 다 데리고 말고 혼자라도 한 번씩 엄마한테 다녀야겠다 마음먹어 놓고 한 번을 못 갔네. 이러다 추석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