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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고 그런 날들이 지나간다.

딸이고 엄마인 그런 날들

by 모래올

엄마와 통화하는 모습을 아이가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 날이 있었다.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고, 짜증을 내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쩐지 답답해하는 내 마음이 얼굴과 말투에서 그대로 드러날 것 같아 옆자리 앉은 아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마트 다녀온다고 내려서는 입구에서 한참을 통화하고나서 마트로 들어간 그런 날이었다.


어느덧 사춘기의 중심을 지나고 있는 아이에게 마음 상한 날이 있었다.

처음엔 내 마음이 불편했고, 그다음엔 아이의 불편한 마음을 살폈고, 그러다 너도 나도 불편한 이 마음을 어찌 풀어야 하나 아이도 나도 고민하며 애쓴 날이었다.


아빠가 보고 싶어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은 날이 있었다.

시어머니가 아프셔서 기도하던 새벽, 뜬금없이 아빠가 생각났는데 순식간에 마음에 말할 수 없는 슬픔이 퍼졌다. ‘너무 오랫동안 내게 아빠가 없네’ 생각이 드는 순간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엉엉 울었던 날이었다.


돈을 좀 보낼 수 있냐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날이 있었다.

일단 한숨이 나왔고, 열 마디의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에너지도 의미도 못 찾아 예의상 한두 마디 하고 바로 보냈다. 엄청 큰돈도 아니고, 그 연락을 하기까지 엄마 마음이 더 곤란했겠다 싶어 툭툭 털었는데 고맙다는 말 뒤에 하트 세 개 붙은 엄마의 문자메시지를 보고 더 큰 한숨을 내 쉰 날이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다며 중학생 아들이 내 방으로 건너온 날이 있었다.

내 옆에 쭈그리고 누운 아이의 등을 쓸어주며 그럴 수 있다고 별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며 얘기했는데 그 얘길 막내가 듣고 악몽을 꿨을 땐 엄마 아빠 방으로 가는 게 국룰이라고 말해 마음이 따뜻해진 그런 날이었다.




50이 다 되어 가는 나는,

같은 하늘 아래에 있든 그렇지 않든 아빠 엄마의 딸이고

사랑스러운 세 아이의 엄마다.



그렇고 그런 날들이 오늘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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