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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의 지배자 '스키타이'

by 박사력

스키타이의 기원

스키타이는 기원전 8세기경부터 기원전 2세기경까지 흑해 유역 및 중앙아시아와 남부 시베리아 스텝지역에 존속했던 인도이란계 유목민이다. 그들의 언어는 인도유럽어족 이란어군에 속하며 오늘날의 오세트어(註)가 후손어 중 하나이다. 스키타이는 기원전 2세기경에 사르마타이(註)에 의해 소멸되기 전까지 700여 년 동안 유라시아 초원 상당 부분을 지배했다. 스키타이는 문자로 된 기록을 남겨놓지 않아 그 기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25)는 스키타이가 원래는 아시아에서 살던 유목민이었는데 마사게타이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아락세스강을 건너 유목민 킴메르(註)가 살던 흑해 북안으로 이주한 것으로 기록했다(헤로도토스가 기록한 스키타이는 흑해 유역의 스키타이다). 고대 문헌과 고고학적 증거, 유목민 이동의 특성을 고려할 때 스키타이는 흑해 유역뿐만 아니라 카스피해 동쪽의 중앙아시아, 남부 시베리아 일대, 알타이 산지까지 광범위하게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스키타이의 기원과 원주지(原住地)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 것은 고대 민족의 이동과 문화 교류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글쓴이는 스키타이의 기원이 얌나야(쿠르간)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정하며 다음 편에서 스키타이를 비롯한 유라시아 초원지대 기마 유목민의 기원과 이동에 대해 자세히 쓰고자 한다.


(註) 오세트어는 코카서스산맥의 오세티야(조지아 남오세티야와 러시아 북오세티야 공화국) 지역에서 쓰이는 이란어군의 언어이다. 현재 오세트인 70만 명 중 약 50만 명이 사용하는 모어이며, 이미 사라진 스키타이어, 사르마티아어, 알란어의 후손어로 추정된다.

(註) 사르마타이는 드네프르 강 유역, 남러시아, 흑해 북안 일대에서 활동한 기마 유목민 집단이다. 이들은 스키타이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 유래했으며, 점차로 유목과 정착 생활이 혼합된 문화를 발전시켰다. 기원전 2세기경에 스키타이를 몰아내고 이 지역을 지배했다.

(註) 마사게타이는 카스피해 동북부와 트란스옥시아나 서부에 살던 인도이란(스키타이)계 민족으로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4세기경까지 존재했다.

(註) 킴메르는 고대 유목민족으로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본래 기원전 8세기와 기원전 7세기 무렵 캅카스와 흑해 북쪽 스텝 지역(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에 살다가 스키타이에 쫓겨 서아시아 지역으로 남하했다. 이들은 인도이란계 민족으로 본래 스키타이어 등 이란계 언어를 사용했으리라 추정되며 소아시아로 이주한 이후에는 아나톨리아어 인명도 나타난다.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했으나 스카타이와는 구분되는 집단으로 나중에 스키타이에 의해 밀려나고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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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의 명칭

페르시아인은 스키타이를 '사카'라고 부르고 고대 중국인은 중국 변경 지역에 분포한 스키타이를 '새인' 또는 '색인'(중국 사서 "한서"에 나타난 塞人의 塞은 고한어로 sˤək이라고 발음하므로 사카라는 민족명의 음차로 보고 있으며, 이때 한글 표기는 '새인'이 맞음. 다만 후대 북주서에는 스키타이가 세운 국가를 索國, 즉 '색국'이라고 표기)이라고 불렀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사카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용병으로 참여했는데 많은 부족 중에서 페르시아인과 더불어 가장 용감하게 싸운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에 참여했던 사카를 ‘아뮈르기온’ 출신이라고 했는데 아뮈르기온은 시르다리야 강 동쪽의 페르가나 지방에 위치한 초원지역으로 생각된다. 사카는 단일 집단은 아니고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대 페르시아 비문에 등장하는 사카로는 ‘사카 티그라카우다’(고깔모자 사카), ‘사카 타라드라야’(흑해 너머의 사카), ‘사카 하오마바르가’(하오마를 마시는 사카) 등이 있는데, 두 번째 사카 타라드라야는 다리우스 1세(재위: 기원전 522~486) 때 페르시아에 예속되었다가 반기를 들었던 족속이었다. 세 번째 사카 하오마바르가는 헤로도토스가 말한 ‘아뮈르기온 스키타이’이다. 하오마는 환각성이 있는 식물로 대마와 같은 식물로 추정된다. 하오마 풀을 음료로 만들어 마시는 관습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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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수 1세의 베히스톤 비문에 새겨진 ‘사카 티그라카우다’(맨 끝 고깔모자 사카)


스키타이문화

스키타이 문화는 스키토-시베리아 문화라고 명명될 정도로 유라시아 스텝지역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들은 이동성·집단성과 가공할 전투력을 특징으로 하는 특유의 군사집단으로 이들의 생활풍습이나 전술·전법은 후대에 등장하는 기마유목민 국가인 흉노·선비·돌궐·위구르·몽골 등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스키타이는 기원전 3세기말 몽골지역을 통일한 흉노와 이후의 돌궐 등과도 문화적인 친연관계가 이어지고 기마유목군단의 전통도 확실히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스키타이문화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첫째, 스키타이 3요소라고 불리는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뿐만 아니라 청동솥도 스키타이 문화권임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유물로 볼 수 있다.

둘째, 쿠르간으로 불리는 거대한 고분(kurgan)이 분포한다. 땅속의 목곽 위에 돌무지와 흙으로 덮은 무덤으로 무기·마구·동물장식 등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무덤은 흑해 북안, 러시아 남부, 중앙아시아와 내몽골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어 스키타이 문화의 연원이나 전파를 말해준다.

셋째, 스키타이는 황금을 숭배 대상으로 여겨 다양한 금동제 유물을 남겼다. 흑해 유역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과 신장 위구르 북부지역에서 스키타이의 정교하고 화려한 금동제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아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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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와 신라의 친연성(親緣性)

신라의 ①적석총(돌무덤)의 유적과 유목민속의 흔적 ②신라의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금관을 비롯한 화려한 황금문화 ③2009년 7월 18일에 방영된 KBS의 역사스페셜 <신라 왕족은 정말 흉노의 후예인가?> 편에서 제작진이 아시아 지역 고인골 샘플 2,000여 개를 보유 중인 중앙대학교 생명공학과에 신라인과 흉노의 유전적 근원성 DNA분석을 의뢰했는데, 스키타이인과 신라인의 유전자가 거의 같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신라인과 흉노의 DNA 일치성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뜻밖에도 모계 DNA와 부계 DNA 둘 다 흉노보다는 스키타이와 거의 일치하게 나온 것이다. 해당 영상에서 중앙대학교 생명과학과 이광호 교수는 자신도 뜻밖의 결과라 여러 번 반복 검증했지만 신라인과 스키타이인의 유전자가 같게 나온다는 인터뷰를 한다. 그런데 일부 신라인과 스키타이인의 유전자가 거의 같다고 하더라도 시간적 지리적 간극으로 볼때 스키타이의 직접 이주설은 설득력이 없다. 다만 스키타이와 광범위한 유전적, 문화적 접촉이 이루어진 흉노, 선비 등의 북방 유목민족이 매개체 역할을 한 것으로는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스키타이를 비롯한 흉노, 선비 등의 유목민족과 신라의 유전적, 문화적 친연성에 대해서는 여러 학술논문, 연구자료 등을 면밀히 고찰한 후 별도 서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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