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까지는 아이를 마음껏 놀게 하라'는 흥미로운 부제가 붙은 신의진 교수(연세대 정신건강의학과)의 자녀교육 책을 관심 있게 읽었다. 이 책의 지적처럼 과도한 사교육뿐만 아니라 조기유학까지 감행한 사례의 실패담을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목격한 터라 공감이 컸다. 덧붙이자면 글쓴이는 두 딸을 중학교 졸업 무렵까지 학원에 일절 보내지 않았다. 선행 학습이 학교 시험에 절대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깨치지 않은 공부는 모래성과 같다는 생각으로 이 책의 부제처럼 초중생까지는 마음껏 놀게 했다. 그래서 두 딸에게 공부하라고 채근한 적이 거의 없다. 다만 고교시절 자정 무렵까지 자율학습실에서 공부하는 두 딸을 마중하기 위해 거의 매일밤 학교정문에서 기다리는 약간의 수고는 했다. 아무튼 두 딸을 비롯한 모든 양육자들에게 이 책과 후속으로 출간한 0~4세 육아를 위한 "아이심리백과" 읽기를 추천하면서 책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저자 신의진은 연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자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분과 전문의이다. 저자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소아 정신과에 뛰어든 것은 올해로 31년째다. 저자는 그동안의 진료기록과 검증된 발달학 이론, 문제 많은 두 아이를 키운 엄마로서의 체험과 육아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 책을 저술했다. 특히 0~6세 부모들의 무분별한 조기 교육으로 문제 행동을 일으키고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자꾸만 늘어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그에 적절한 대처법을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조기교육으로 병든 아이들을 치료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얻은 자녀교육의 핵심을 담아 느리게 키우는 데 동의하면서도 자꾸만 불안해하는 엄마들에게 이 책이 도움 되길 바라는 간곡한 마음도 전하고 있다.
아이 입장에서 볼 때 어린 시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는 일이다. 이는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쉽게 말해 배고플 때 젖을 먹고, 소화를 잘 시키며, 배설을 제대로 하는 등의 생물학적 요구가 제대로 조절되면 아이는 '나는 사랑받고 있다', '세상은 참 편안한 곳이다'라고 느끼게 되고 그것이 축적되어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차분히 앉아 과연 내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가슴 안의 열정만으로 아이를 다그치거나 혹사시키고 있다면 지금 당장 아이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하라. 그것이 진정 아이를 위하는 엄마의 태도이다. 단언컨대 아이 기르는 일은 적지 않은 헌신을 요하는 일이다. 아이를 정말 잘 키우고 싶다면 아이를 돌보는 일이 정말 기뻐야만 한다. 그러나 이 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아이에 대한 이타심은 한순간에 생기는 것이 절대 아니다.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이 생기려면 부모 스스로 아이를 간절히 원해야만 한다. 감정은 저절로 생기는 거라고 말하지만, 노력에 따라서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한다. 주변에 아이 잘 기르는 엄마를 보면서, 그리고 내 아이를 보면서 자식을 향한 사랑을 끊임없이 깨닫고 가꾸어 가야만 한다. 육아에 있어 연습이란 없다. '내 아이에게 무언가 잘못했구나' 깨닫았다고 해도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해 잘못된 상황을 추스르고,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보듬어 안아 줄 수 있을 따름이다. 가장 좋은 것은 추슬러야 할 그런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과연 부모 될 자격과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따져 보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아이 때문에 속상하다고 말하기 전에 그리고 잘 키워 보겠다고 다짐하기 전에, 먼저 부모로서 나는 얼마나 준비를 해 왔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아이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있는지 스스로 진단해 보자.
※ 글쓴이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그 옛날 두 딸을 키운 아내의 양육을 회상했다. 두 딸에 대한 사랑이 넘쳐흘렀고 진심으로 이뻐하면서 정성을 다했다. 두 딸이 비교적 바른 심성과 밝은 감성으로 자란 것도 아내의 사랑과 정성 가득한 양육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세 모녀는 지금도 만날 때마다 웃음꽃을 피우며 마냥 즐거워한다.
엄마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인간의 뇌는 사춘기까지 끊이지 않고 변화, 발전한다. 뇌의 발전이 극대화될 때까지 그 과정에서 무수한 변수들이 작용한다. 그런데 조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들이밀고, 학교 공부를 따라가라고 윽박지르면 계단식 발전을 하는 아이의 성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 "육아의 끝은 마지막이 되어야만 그 결과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씨앗 상태에서는 그 꽃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이파리들이 자라 봉오리를 맺고 난 이후 꽃이 피어서야 그것이 어떤 이름과 향과 모양을 갖추고 있는지 알게 된다. 이런 이유로 잠재력과 관련해 자주 하는 말이 '타임 테이블(Time table)'이다. "어릴 땐 똑똑했는데 커서는 안 그렇다" 혹은 "어릴 땐 말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젠 무엇이든 남들보다 빠르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이렇듯 아이가 부모의 기대나 예상대로 되는 예는 거의 없다. 뇌의 성장이나 아이를 둘러싼 여건, 타고 난 아이의 기질에 따라 그 잠재력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사이 언젠가 발현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아이의 '타임 테이블'을 믿고 방해 요소를 제거해 주는 일이다. 즉 아이의 긍정적인 자아상이 침해받지 않도록, 자신감이 없어지지 않도록,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지켜 줄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이다.
3~4세 이하의 영유아들에게는 부모와의 정서적인 접촉이 인격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너무 빨리 부모 품에서 떨어질 때 아이가 느끼는 상실감과 불안은 그 어느 것으로도 충족될 수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교육학 교수인 레오 부스카글리아도 성장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적인 교육이 아니라 감성적인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과거 우리 선조들의 전통적인 모습과 라다크(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서부 히말라야고원에 자리한 아름다운 고장)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육아 원칙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고 가르치기보다 마음껏 자신의 욕구를 펼칠 수 있도록 가만히 놔둔다는 것이다. 그 속에 조급함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이 있을 따름이다.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되어 온 것이 전통이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앞에서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림의 지혜'라고 했는데, 그것은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만약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한다면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라. 내가 혹시 아이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닌지. 그래서 기다리지 못하고 서두르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아이를 어긋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어 발달은 아이의 성장 과정에 있어서 만 3세 전후가 무척 중요하다. 이 시기에 제대로 발달을 하지 못하면 말을 못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성, 대인 관계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도미노처럼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앞서 말한 바 있지만 발달에는 다 시기가 있다. 시기보다 너무 앞서서 아이를 가르치려 들어도 안되지만 그 시기가 지나서 뒤늦게 허겁지겁 자극을 퍼붓는다 해도 그것이 발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안 되는 것도 있는 것이다. 언젠가 말이 좀 늦는 것 같다면서 여섯 살 된 아이를 데려온 엄마가 있었다. 유치원에 보내려고 하는데 말을 잘 못해 그만두었단다. 솔직하게 이런 엄마를 만나면 "저더러 어쩌라고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곤 한다. 말이 늦는 아이를 데려오는 경우 십중팔구 이처럼 학령기가 다 되어서다. 학교 갈 때가 다 되었는데 아이가 입도 열지 못하니 고쳐 달라는 것이다. 좀 더 일찍, 문제가 나타난 초기에만 도와주었어도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몇 마디도 못하는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이럴 때는 별 수 없이 입학을 한두 해 늦출 수밖에 없다. 그대로 학교에 보냈을 경우 말만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또래 친구나 선생님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해 정서적인 장애마저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이런 아이들이 아이큐를 검사해 보면 언어 발달을 제외하곤 다른 것은 대부분 정상이라는 점이다. 사회성 발달처럼 언어력과 관련된 부분만 제외하고는 적어도 평균치 정도는 된다. 수치로 따지면 전체적으로 110 정도의 지능을 보이는데 언어 이해 정도나 어휘력만 채 80이 안된다. 발달 면에 있어서 "버스 지나가면 끝장"이라는 농담을 자주 한다. 어느 발달이건 시기가 있으면 그 시기에 맞춰 적절한 자극을 주었을 때 120퍼센트의 적응력을 보이며 발달이 이루어진다. 한번 시기를 놓치면 뇌가 이미 성숙해져 버리기 때문에 똑같은 자극을 아무리 주더라도 적절한 시기에 맞췄을 때만큼의 발달은 기대할 수 없다. 정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이의 발달 과정보다 앞서서, 그것도 인지적 측면만 강조하는 지금의 조기교육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게으르고 안이하게 아이를 내버려 두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느리게 키우기는 결코 무심한 부모들이나 하는 육아법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를 정말 잘 이해하고 있는 현명한 부모들만이 할 수 있는 아주 어려운 육아법이다. 즉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는 것, 그것은 아이의 입장에 서서 아이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아야만 실천 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바로 아이를 느리게 키우려는 부모들의 기본자세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로서의 첫째 덕목은 아이에 대한 사랑을 늘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식이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워야만 한다. 많은 엄마들이 "세상에 자기 자식을 미워하는 부모가 있나"며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식에 대한 사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엄마들이 의외로 많다. 본인은 당연히 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엄마 자신의 착각일 뿐, 아이는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엄마와 아이 사이의 결합성, 즉 서로 간의 애착은 상호 교환적이다. 엄마가 아이를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아이와 함께 나누는 둘만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그 사랑은 성숙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할 따름이다. 아이는 엄마의 이런 감정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아이들의 감각은 때론 어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민감해 분위기만으로도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한다. 그런 아이가 자라서 "엄마가 무섭고 싫어요"라고 호소하는 것을 실제로 본 적도 있다. 결국 아이를 사랑하는 데도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엄마의 땀과 정성이 지속될 때, 비로소 보다 성숙한 사랑을 키워 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절대적인 사랑이 바로 현명한 엄마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 둘째 덕목은 엄마의 민감성이다. 이는 아이가 보내는 사인 하나하나를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채는 능력을 말한다. 쉽게 말해 아이의 기분을 얼마나 제대로 파악하느냐가 관건이다. 아이가 울고 있다고 치자. 민감한 엄마라면 아이가 배가 고파 우는지, 아니면 어디가 불편해 우는지 금세 알아챈다. 반면 그렇지 못한 엄마는 아이가 울다 지쳐 잠잠해질 때까지 이유를 몰라 쩔쩔맨다. 왜 어른들 사이에서도 한 박자 늦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남들 다 웃고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혼자 웃거나, 끝까지 웃은 이유를 모르는 사람 말이다. 민감하지 못한 엄마들의 특징은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무엇인가 아이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진료를 위해 준비된 놀이방에서 여러 가지 장난감을 두고 아이와 엄마를 놀아 보게 하면 단박에 이 사실이 드러난다. 엄마와 등진 채 놀고 있는 아이, 내가 보기에 이미 아이는 엄마와의 감정 교류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그런 모습에 무안해진 엄마가 아이를 자기 쪽으로 돌려 앉힌다. 그런데 돌아 앉은 아이 손에 기다란 쇠막대기 하나가 들려 있다. 엄마가 옆에 있던 인형을 아이에게 주며 말한다. "그건 뭐에 쓰려고 그러니? 위험하니까 이것 갖고 놀자." 엄마에게 뺏긴 쇠막대기를 한사코 되찾으려는 아이, 하지만 엄마는 그런 아이를 외면한 채 쇠막대기를 멀찌감치 아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 버린다. 다른 재미있는 것도 많은데 아이가 그 쇠막대기를 잡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장난감 가운데 놓여 있던 실로폰을 두드릴 채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민감한 엄마라면 아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왜 그 쇠막대기를 잡았는지 금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형을 쥐어 주는 게 아니라 위험한 쇠막대기 대신, 실로폰을 두드릴 만한 다른 물건을 아이에게 건네주었을 것이다. 아이는 곧이어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며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래던 엄마는 더 이상 안 되겠는지 내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놀이를 끝낸 후 엄마를 앉혀 두고 엄마의 민감성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들은 그 엄마는 너무나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제 성격이 원래 그런 걸 어떡해요." 물론 엄마의 민감성은 타고나는 부분이 없지 않다. 더구나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그런 배려를 받지 못했다면 더욱더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앞서 말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민감성 역시 얼마든지 길러질 수 있다고 본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타고난 성격 때문에 아이에게 민감하지 못하다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그렇게 말하기 전에 육아 환경은 어떤지, 나는 어느 정도 준비된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지부터 점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이유건 간에 아이의 사인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엄마들은 그것부터 고쳐야 한다. "아이가 이럴 땐 무얼 원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고 연습하자. 당장 되지 않더라도 주변의 아이 잘 키우는 엄마들을 모델로 삼고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민감성을 갖춘 다음 생각할 셋째 덕목은 그에 따른 적절한 반응이다. 아이의 사인을 민감하게 알아채기만 하면 무슨 소용인가. 그에 이어 꼭 필요한 반응을 제때 해 주지 않으면 아이의 마음에는 충족되지 않은 욕구에 대해 불만이 쌓이게 된다. 영유아기에는 특히 아이의 사인이 먹고 자고 배설하고 노는 기본적인 욕구와 관련된 것이 많은데, 엄마가 아이의 사인에 재빨리 반응해 주지 않으면 성격 형성에 심각한 장애가 따르게 된다. 흔히 반응이라고 하면 눈에 드러나는 어떤 욕구에 관한 대응이라고만 생각하는데, 때론 단순히 눈을 맞추는 것도 훌륭한 반응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갖춰야 할 넷째 덕목은 일관성이다. 아이의 사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되, 시시각각 변하는 엄마 기분 때문에 하다 말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엄마에게도 감정이 있기 때문에 늘 아이의 기분을 맞춰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를 최초의 교류 상대로 삼는 아이 입장에서는 매사 자기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인 엄마 때문에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어른들처럼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고려해 눈치껏 받아들이는 연습이 전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엄마들은 대뜸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아이를 대해야 하나요?" 세상 모든 아이들이 제각기 개성이 있는 존재이듯, 어느 아이에게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기준이란 없다. 엄마의 기질에 따라, 아이의 타고난 성격에 따라, 그리고 처한 환경에 따라 원칙은 모두 다르다. 육아 서적이나 잡지들을 보면 '이것만은 꼭 지켜라', '아이를 대할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며 많은 육아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나는 오히려 그런 것들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한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주위로부터 조언을 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조언은 그저 조언일 뿐이다. 가끔 엄마가 스스로 지키지도 못할 원칙을 세워 놓고 억지로 맞춰 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는 엄마에게나 아이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그리고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엄마의 일관적인 태도를 방해할 만한 요소들을 먼저 점검하는 일이다. 두 가지 진료 사례를 들어 보겠다. 너무나 완강한 시어머니 때문에 소신껏 아이를 기르지 못하는 엄마가 있었다. 시어머니와 육아관이 달라 고민하던 그 엄마는 자기주장이 약한 편이어서 교육이나 생활 등의 육아 문제로 갈등이 있을 때면 자신의 생각을 접고 시어머니의 생각을 따랐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일관적인 태도를 보일 수 없었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의 기질은 점차 까다로워졌다. 시어미니에게 육아를 전적으로 맡긴 경우라면 다르지만,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엄마라면 이런 갈등 상황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위해서 일 년간만이라도 떨어져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아이가 엄마의 일관적인 양육 태도에 완전히 적응한 뒤에 손자를 만나는 것이 아이의 정신 건강에 좋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말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나를 찾아왔던 한 엄마는 너무나 우울해 아이를 기르는 것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사연을 들어 보니 결혼한 뒤 친정 근처에 살다가 남편 직장 문제로 최근 들어 이사를 했단다. 전에는 친정 엄마와 언니가 함께 있어 힘이 되었는데 먼 곳에 혼자 떨어져 지내다 보니 그것이 우울증으로 번진 것이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날이 많아졌는데,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고칠 수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 엄마가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다는 데 있지만 이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결국 지금 당장 아이가 받을 혼란을 생각해서 그 엄마는 다시 친정집 근처로 이사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가 처한 상황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결부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분이 좋을 땐 한없이 잘해 주다가도 문제만 생기면 엉뚱하게 아이에게 화풀이하는 엄마들, 자신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이런 엄마가 너무나 많다. 항상 머릿속에 아이와 자기 주변의 상황을 떼어놓고 생각하는 연습부터 하자. 그리고 단기간에 일관적인 태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렵다면 원칙을 세우기에 앞서 인내심부터 기르자. 어느 상황에서건 아이를 위해 인내한다는 마음을 갖고 시작하면 길이 보이게 마련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광고가 생각이 난다. 학습지 광고였는데 이제 말이나 제대로 할까 싶은 아이가 그림책을 줄줄 읽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광고가 나간 뒤 엄마들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 "선생님, 그 광고 보셨어요?" 우리 애는 말도 잘 못하는데 걔는 어떻게 책을 줄줄 읽을까요?" 개중에는 광고 찍기 전에 애한테 먼저 외우게 했을 거라고 의심하는 엄마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당시 그 여파는 굉장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광고가 효과를 톡톡히 봤는지 유아용 학습지 업체들이 엄청난 대목을 맞았다고 했다. 그처럼 학습지 열풍이 불었을 때 나는 엄마들에게 학습지를 얼마나 시키는지 물어봤다. 백이면 백 안 시키는 엄마가 없었다. 학원보다는 싼 값에 할 수 있다. 적어도 그냥 놀게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등의 이유를 대며 말이다. 결국 막연하게 남들 하는 대로 쫓아가는 거였다. 내 아이만 뒤처지면 안 되니까.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애 가르치는 일이라며 눈을 부릅뜨는 엄마들을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 과연 누구를 위한 공부일까, 혹시 아이한테 꼭 필요하거나, 아이가 원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엄마의 불안을 없애기 위한 공부가 아닐까, 좋다면 무조건 시키고 보는 엄마들의 마음엔 공통적으로 이런 심리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일단 시키고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안 하는 것보단 그래도 뭔가 얻는 게 있겠지…….' 그러면서 엄마들은 애써 불안감을 떨치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이 학습에 있어 '어떻게든 되겠지' 같은 주먹구구식 방법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99명에게 100퍼센트 효과가 있는 학습법이 1명에게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한 명이 바로 우리 집 아이일 수 있다. 만일 그 학습이 아이에게 맞지 않았을 경우 아이가 받는 정신적인 부담감, 실패로 인한 좌절, 정서 발달의 저해 등은 이후 학습 동기를 떨어 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즉 평생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로 남을 수 있다는 거다. 때문에 밑져야 본전이니 무조건 시키고 보자는 것처럼 위험한 발상은 없다. 왜 이걸 시켜야만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이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부터 곰곰이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건지, 또 아이가 원하는 건지 다시 한번 물어야 한다. 그걸 잘 모르겠거든 명확한 이유를 찾을 때까지 차라리 안 시키는 게 낫다. 잠시 잠깐에 불과한 위안과 내 아이를 맞바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느림보 학습법이란 아이의 뇌 발달에 맞는 학습법을 말한다. 그런데 뇌 발달을 제대로 알고 거기에 맞추기란 쉽지 않다. 지금 내 아이가 어느 정도의 발달 단계에 와 있는지, 때문에 어떤 학습이 필요한지 아는 게 어디 쉽겠는가. 그래서 어떤 엄마들은 대뜸 이런다. "선생님이야 전문가시니까 잘 알겠지만, 우리 같은 보통 엄마들이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나 모든 엄마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단 내 아이에게 평소 충분한 관심을 보이고 늘 지켜보던 엄마여야만 한다. 그 방법이란 '무조건 아이가 좋아하는 걸 시키는 것'이다. 뇌발달이니 뭐니 해서 어럽게 생각하지 말고 그저 아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어 하는 걸 시키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꼭 따져 볼 것이 있다. 좋아하는 게 있으면 싫어하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이때 싫어하는 것을 파악하되 왜 싫어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보통 엄마들은 아이가 좋아하는 건 금세 알면서 싫어하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고, 무심코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왜 싫어하는지, 이게 과연 일시적인 변덕인지(아이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변덕을 부릴 수 있다), 아니면 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인지 깊게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무언가를 싫어하는 데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다. 그 자체가 아이와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아이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아이가 충분히 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환경적인 이유 때문에 동기가 안 생겨서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아이가 무언가를 싫어한다는 건 일단 아이한테 어떤 어려움이 있다는 증거다. 이럴 때는 먼저 그 어려움의 원인을 찾아 없애 주어야 한다. 그것은 학습의 기본 바탕을 마련하는 작업일뿐더러 내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무조건 멈추면 된다. 싫어하는 걸 통해서는 절대 제대로 된 학습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따져 보면 느림보 학습법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뇌 발달에 맞춘다는 것은 아이가 쉽게 잘할 수 있는 것부터 한다는 걸 의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무언가를 시키려 들기 전에 먼저 아이의 흥미도와 준비도를 살펴보면 된다. 그런데 만일 준비도와 흥미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학습에 들어가면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아이들은 무조건 피하려 든다. 툴툴거리면서 어떻게든 안 하려고 거짓말을 한다든지, 해도 마지못해 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니면 앵무새처럼 무조건 외우려 들 수도 있다. 엄마의 말을 따라(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엄마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생각은 전혀 안 하고 무조건 외워 버린다는 거다. 나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많이 걱정된다. 무조건 외우려고 들 경우 다른 것도 한창 발달해야 할 시기에 뇌가 한쪽 방면으로만 고착될 우려가 있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달력을 한 번 보고 외워 버린다든가 하는 자폐증의 예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요즘 세상은 빠르게 돌아간다. 그런데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아이를 공부시키는 것도 속도전을 방불케 한다. 두 살 때 유치원 과정을,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초등학교 3~4학년 과정을, 초등학교 5~6학년 때는 중학교 과정을 미리 가르친다. 마치 똑같은 과목을 남보다 빨리만 습득하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처럼 말이다. 빨리 가려면 이해가 안 된 채 넘어가거나 무작정 외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아이가 스스로 고민하고 탐구해 해답을 얻는 시간들은 자꾸만 줄어든다. 이처럼 깊이 대신에 속도만 중시하는 우리나라 교육법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가지 엄마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느림보 학습법은 개인차가 크게 난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의 뇌 발달 정도가 제 각각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이의 발달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부모들이 느림보 학습법의 실천에 있어 중요한 몫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이 학습법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앞서 얘기했듯이 뇌 발달은 사춘기까지 계속되므로 조급함을 버리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같은 나이의 옆집 아이와 비교하거나, 공부시킨 시간에 비례하는 결과를 요구하는 식의 태도는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일 뿐이다. 결국 느림보 학습법이란 엄마가 아이를 제대로 이해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니 그것이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정형화된 학습법에 현혹되지 말고 지금 내 아이가 무얼 원하는지, 또 무얼 싫어하는지, 싫어한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보자. 그럴 때에만 세상 그 어떤 아이라도 인생의 우등생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뇌 발달 분야의 전문가인 서유헌 교수(서울대 의대 뇌연구원)의 연구(註)에 따르면 언어나 수와 관련한 학습은 뇌 발달상 만 6세 이후에 시키는 게 옳다. 언어력과 관련한 측두법과 수학, 물리적 기능을 담당하는 두정엽이 이 시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발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가 학령기 전에 영어, 수학, 한글을 잘 못한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아이의 뇌가 그런 교육을 제대로 받아들일 만큼 발달하지 않았구나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럼 만 6세 이전에 아이들의 뇌 발달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떤 학습이 필요할까? 일단 만 3세 정도까지의 뇌는 어느 한 부분에 치중하지 않고 모든 부분이 골고루 왕성하게 발달한다. 때문에 시각적 자극처럼 어느 한쪽으로 편중된 학습은 좋지 않다. 예를 들어 물고기에 대해 학습을 시킬 때도 단순히 그림책이나 영상을 보여 주는 것보다는 오감을 이용해 직접 보고 만지게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아이의 정서적 측면이 크게 발달하므로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게 생각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만 스스로에 대해,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며 이는 곧 자신감으로 직결된다. 이때 엄마와의 스킨십은 아이의 정서적 안정에 있어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아이를 안아주고 눈을 맞추며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게 곧 정서적 안정을 가져오고 이것이 바로 두뇌 발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뒤 만 5세 정도까지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한다. 사고력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선 무작정 지식을 외우게 하는 것보다는 아이들로 하여금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좋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흔히 끊임없이 상상의 날개를 펴는데 이때 다양한 경험을 하면 생각하는 힘이 저절로 키워진다. 다만 그 과정에 있어 직접 사물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해야만 보다 강력한 정보의 축적이 이루어진다. 즉 앉아서 종이와 연필로 공부하는 것보다 말 그대로의 체험 학습이 중요하다는 거다. 그런데 불가능한 것, 그래서 해 봤자 안 될 것들이 있다. 어린아이의 학습이 그렇다. 시켜서 좋아진다면 모를까, 오히려 부작용만 일으키는데 억지로 강요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옆집 아이와 비교하면서 괜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다섯 살 때까지는 아이를 마음껏 놀게 하라. 아이로 하여금 직접 부딪치고 경험하며 세상을 알아가게 하라. 그것이 곧 아이와 당신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
(註) 인간의 뇌는 크게 3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생명유지의 뇌, 2층은 감정과 본능의 뇌, 그리고 마지막 3층은 공부와 이성의 뇌다. 이러한 뇌는 20년 동안 서서히 발달하는데, 시기별로 뇌의 발달 부분과 각 부분이 기능하는 영역이 다르다. 그래서 아직 인지기능이 발달 안 된 유아에게 모국어가 아닌 인위적인 언어교육을 하면 원래 이 시기에 발달해야 할 감정과 본능의 뇌가 잘 발달하지 못한다. 언어를 관장하는 측두엽은 7~8살은 되어야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언어교육은 초등학교에 가서 시키는 게 맞다. 또한 각각의 뇌기능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연결되어 기능하기 때문에 1, 2층의 기초공사가 제대로 되어야 3층의 고차원적 기능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기 이전에 감정과 본능의 동물이며, 따라서 감정과 본능의 뇌가 제대로 발달해야만 고차원적인 이성의 뇌가 잘 발달할 수 있다. 즉 언어 뇌는 7살 되어서야 본격 자라고 감정조절 뇌는 유아기가 중요한데 그 시기에 언어 공부를 시키니 뇌 발달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과 비교하는 마음 버리고 아이 뇌 발달의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공부와 이성을 담당하는 3층 뇌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위는 감정조절 기능을 하는 전두엽이다. 감정조절 외에도 인간사고의 가장 고차원적 기능들, 즉 창의적 계획 수립, 선택적 주의 집중, 호기심, 동기부여 같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전두엽이 극도로 발달하는 시기가 바로 유아기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무엇보다 우선해 도덕성과 인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요즘 많은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도 대부분 이 전두엽이 발달하지 못해 생기는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옛말이 딱 맞다. 만 세 살이면 전두엽이 가장 빠르게 발달하기 때문에 이때 인성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더 자란 뒤에 하면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고 아주 힘들게 된다. 지금 유치원에서 인성교육은 제대로 안 하고 인지교육만 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전두엽 발달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전두엽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감정조절’이 약한 아이들은 학교폭력이나 게임중독 같은 것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뇌 발달과 맞지 않는 조기교육(인지교육)이 아이들에게 가장 나쁘다. 이제는 부모들이 남보다 일찍 하면 우리 아이 뇌가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뇌는 천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가 수천조의 회로로 연결되어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이들은 붙어 있지 않고 각각 미세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그래서 뇌세포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려면 이 틈을 오가는 ‘신경전달물질’이 필요하다. 신경전달물질은 뇌가 쉬며 잠을 자고 일어난 오전에 가장 많고 저녁이 되면 점차 고갈되어 정보전달력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런 상태에서 계속 뇌에 뭔가를 집어넣으면 과부하가 걸려 뇌 기능에 이상이 올 수 있다. 중고등 학생들도 8시간은 자야 한다. 근데 애들이 밤늦게까지 학원 다니느라고 잠을 안 재우니까 학교 가서 아침에 자고 오후엔 졸고 그리고 저녁에 정신 차리면 학원에 간다. 그렇게 학교에서 하루 종일 자고 나서 가니깐 학원에서는 공부 잘 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잠은 신경전달물질을 만드는 것 외에 낮에 입력된 정보에 대한 기억을 재정비하는 기능도 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잘 못 자는 사람들이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려면 성인은 8시간, 초등학생은 10시간, 영아들은 20시간 정도는 잠을 자야 한다. 70억 인구가 얼굴이 다르듯이 뇌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아이를 절대 다른 아이, 또는 형제자매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 뇌가 다른데, 어떻게 비교를 할 수가 있겠는가. 그 애만이 잘하는 것이 있는데 그걸 안 하니깐 못하는 거다. 부모들이 아이의 뇌를 잘 관찰해야 한다. 아이들을 부모 욕심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알고 그것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돼야 한다.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보이지 않을 리 없다. 인간의 3층 뇌 회로는 1, 2층 뇌 회로가 활짝 열려야 활발하게 기능하기 때문에, 감정과 본능을 충족시키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재미있게 할 때 비로소 이성적인 공부도 잘하게 된다.
인간이 가지는 동기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그 원리는 학습에 있어서도 100퍼센트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아이 스스로 학습의 동기를 찾게 되면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그러나 만일 동기가 불충분한데도 억지로 학습시킬 경우 단순히 결과가 미진한 걸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앞날에 치명적인 방해 요소로 남게 된다. 반복해 말하지만 아이의 학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동기 부여'다. 동기가 부여될 때만이 가장 빨리, 효율적으로 학습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엄마는 아이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인지, 동기가 될 만한 게 무엇인지 알아내 그걸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도 안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스스로 동기를 찾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아이 스스로 준비가 될 때까지, 그래서 채비를 마치고 "Ready go!"라고 외칠 때까지 말이다. 때론 언성 높여 백 번 시키는 것보다, 그 동기가 비록 하찮은 것일지라도 스스로 마음먹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지혜가 훨씬 더 큰 성과를 낳는다.
만 3~5세는 일생을 통틀어 감각적인 아이큐가 가장 발달하는 시기이다. 이걸 바꿔 말하면 실제로 보고 듣고 만지지 않고서는 그 정보가 뇌에 축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 6세 미만의 아이에게는 사실 책을 보면서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것이 뇌 발달상 무리이다. 따라서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직접 보여 주고 만지고 느끼게 하는 게 훨씬 효과가 있다. 책을 보여 주면서 "이게 바다야"하기보다는 한 번쯤 바다에 데리고 나가 바닷가 바람의 느낌은 어떻고, 냄새는 어떻고, 바닷물의 맛은 어떤지 직접 경험하게 해야 뇌의 기능이 빠르게 발달한다는 거다. 그런데 아주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초등학교에 가서도 직접 경험이 주는 효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걸 일찍 간파한 미국의 경우 초등학교 과정에서 체험 학습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는 체험 학습이란 한국에서처럼 뜬금없이 박물관을 견학하는 식이 아니다. 정말 그 시기에 맞는 지적 정보들을 이론적으로 익힌 다음, 아이 생활 아주 가까이에서 경험으로 느껴 보게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실생활과 분리되지 않는 학습, '배운 것 따로 생활 따로'가 아닌 학습, 그것은 비단 학습 자체에 대한 효과뿐만 아니라 아이로 하여금 학습에 있어 보다 능동적인 자세를 갖게 한다. 그저 배운 걸로 그치지 않고 스스로 궁리하고 응용함으로써 학습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바로 평생 학습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주체성'과도 직결된다. 현재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에서는 바로 이 점이 무시되고 있다. 선생님은 가르치고 아이는 듣고 ……. 이런 수동적인 학습 자세는 결국 이 사회에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사람보다는 수동적으로 베끼고 따라 할 줄만 아는 기계적인 인간만을 만들어낼 뿐이다. 표절 시비니 지적 재산 침해니 하는 문제들이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아이가 무얼 배우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언제 어디서 그것을 아이와 함께 실생활에 적용시킬지 고민해 보자. 체험보다 더 훌륭한 교육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생활 속의 공부'를 만들어 줄 사람은 부모를 비롯한 양육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명심하자.
첫 번째 "아이심리백과(0~2세)"는 부모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20가지 베스트 질문과 아이 울음·수면 습관·기질과 성격·놀이와 학습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아이의 신체 발달과 정서 발달, 문제 행동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0~2세 육아의 핵심을 들려준다. 또 이 시기 부모들이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아이의 위험 신호 10가지를 수록해 발달 상황을 자가 진단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힘겨워하는 부모들이 순간순간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펼쳐 보고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아이심리백과(3~4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고, 떼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고집도 세지는 3~4세 아이 키우기의 핵심을 전달한다. 이런 아이를 상대하려니 당연히 부모는 지치고 힘들지만, 그럴수록 육아 원칙을 세워 일관성 있게 대해야 아이가 자신감과 독립심을 키울 수 있다. 그래서 20가지 베스트 질문과 배변·잠·자기 조절·말·습관·교육 기관·형제 관계·사회성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3~4세 아이 키우기의 핵심을 전달한다. 또 이 시기 부모들이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아이의 위험 신호 5가지를 수록해 발달 상황을 자가 진단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매일 아이와 힘겨운 전쟁을 치르는 부모에게 아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더불어, 반복 상황에 대처하는 현실적이면서도 실현 가능한 답을 정리했다(책 소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