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세 번의 크릿 (Crit)
새로운 패션 관점을 토대로, 나의 프로젝트의 방향성은 바뀌게 되었다.
지속 가능한 인증서를 원단이나 브랜드 (비즈니스)에 부여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디자이너들에게 부여한다면?
크릿 (Crit)은 ‘Critical Review of Literature’의 약어로, 학술 논문이나 연구 프로젝트에서 문헌 검토 및 비판적 평가를 의미한다. 이는 학문적인 품질을 유지하고 향상하며, 연구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검증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유닛에서는 다양한 활동들과 더불어 튜터들과 1:1 튜토리얼을 비롯해 세 번의 크릿이 진행되었다.
첫 번째 크릿은 동료들 간의 평가 방식인 Peer-to-Peer Review (피어-투-피어 리뷰)로 교수나 상사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에 익숙해있던 나에게 굉장히 새로운 방식이었다. 우리 학과의 교수진들은 첫 크릿인 만큼 교수진의 영향이 개개인의 프로젝트에 영향을 받지 않고 또한 동기들과 생각을 나누기를 바라기에 동료 간의 평가 방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들의 뜻처럼 첫 크릿이라 많이 긴장되었지만 동기들과 평가 방식이 진행되다 보니 조금은 더 날 것(Raw)으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동기들의 연구 프로젝트를 탐험할 수 있었던 첫 크릿은 고 여러모로 동기부여가 되었고 나의 개인적인 성장을 탐색하는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첫 번째 크릿 이전에 튜토리얼이 있었고 나는 앞서 연구들을 통해 첫 튜토리얼에서 이미 방향성을 잡아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나의 첫 번째 튜토리얼의 튜터였던 Julia는 바로 방향성을 잡지 말고, 더 폭넓은 관점으로 탐구를 권장하는 건설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알기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빠른 결정을 내려버리는 나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또한 이를 통하여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디자이너의 초점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연구도 함께 진행하여 첫 크릿 때 추가로 소개했다. 하지만 첫 번째 크릿의 동료 간 리뷰 중, 내가 소비자 중심 개념보다는 디자이너의 시각을 우선시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깨달았고 동기들도 나의 디자이너 시각이 담긴 메니페스토에 더 진정성이 실린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이 과정을 통해 디자이너로서의 영역을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성에 대해 더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시 디자이너의 초점을 기반으로 둔 탐구에 집중했다.
또한 첫 번째 크릿은 패션 자서전 프로젝트 처럼, 많은 동기생들의 Manifesto는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얽혀있었다. 동기들의 메니페스토와 대조적으로, 나의 메니페스토는 패션 산업의 재평가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에, 이후 튜토리얼에서 튜터들은 이 사실을 강조하며 나의 프로젝트가 덜 '개인적'으로 인식되고 기업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은 나 또한 혼란스러웠다. 나의 메니페스토는 내가 주체가 되어 전개되어야 하겠지만, 내가 바라는 지속 가능한 패션은 ‘나 자신’이 주체가 아닌 실질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깊은 ‘자기 성찰’의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왜 지속 가능한 패션에 ‘집착’하는가?
나는 중학교를 그만두어야 했고, 생존을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14살 때, 아는 지인의 부탁으로 한 옷 가게에서 일일 알바를 하다가 이상백 디자이너의 패션쇼 포스터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마음속에 누군가 찬물을 끼얹었는 듯한 느낌, 그리고 무언가가 울려 퍼지며 처음으로 ‘잘’ 살아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 감정과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에게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은 내 삶의 첫 목표가 되었다. 첫 목표에 대한 열망은 내가 중학교에 복학할 용기를 주었고, 소녀 가장으로서의 삶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의 꿈은 '돈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직업' 이라며 종종 비아냥 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그랬기에 더 악착같이 살아냈다.
이 꿈 덕분에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았고, 덕분에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다.
그렇게 패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3개월 전부터 시작된 패션인으로서의 삶은 나의 꿈에 대한 환상은 노동 착취, 열정 페이 등 국내 패션 산업의 화려함에 가려진 그 실체를 몸소 겪으며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 TV 프로그램 디자이너 대회에서 우승하여 얻은 나의 첫 직장에 월급은 최소 임금에 1/3도 안되는 40만원 이었고 나는 하루에 점심시간 없이 12시간을 일해야했다. 처음으로 최저 몸무게를 찍으며 내 삶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국내 패션 산업에 도망치기위해 또 나의 꿈에 대한 희망을 위해, 해외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본, 캐나다, 호주, 영국 - 나의 '패션인'로서의 삶은 한국에서보다 풍족해졌지만, 내가 일했던 모든 국가들에서의 경험은 패션 산업이 환경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 패션 제품들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가 만들어내는 것들의 영향과 그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디자이너의 역할, 디자이너로서 가져야 할 책임과 가치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고 패션 산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그렇게 지금까지도 더 나은 패션 산업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나의 진로를 좌우해왔다. 나는 지속가능한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미국학교의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고 졸업후 런던의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고, 또 다시 영국의 대학원생이 되었다.
10대의 나는 생각지 못했던 여정과 선택이 계속되었지만, 나름 책임감 있었던 선택들이 내게 하루 하루 의미있는 삶을 살게 해준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결국, 내 경험을 되돌아볼 때, 나의 메니페스토는 충분히 개인적이었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나의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 직업이다. 그렇기에 이 직업이 큰 의미인 것처럼, 더 나은 직업이 되도록 만들겠다는 나만의 집착도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집중과 가치는 나의 개인적인 헌신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나의 메니페스토를 바라보는 관점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는 내 프로젝트를 신중하게 재평가되어야 할 필요성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넓은 산업적 의미에 가려진 개인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인 초점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지속적인 내면성찰은 내 개인적인 성장의 중추로서, 내 작업에 보다 개인적인 손길을 주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초기에는 나의 프로젝트는 개인적인 요소가 부족하다는 인식을 받았지만, 더 깊은 연구와 작업을 통해 이 의미와 깊이에 대한 진가를 받게 되었다.
두 번째 크릿은 내 성격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탐색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동기들이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을 바탕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동안, 나는 매 차례마다 새로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삶을 돌아봤을 때 내가 쏟은 노력들은 어떠한 방향에서도 내게 배움이 되었지, 헛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한, 나의 메니페스토 프로젝트로 두 개의 웹사이트와 지속 가능한 패션 디자이너 자격증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기에 튜터들에게 나의 결과물에 물리적 아티팩트(Physical Artifact)가 필요하지 않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3D 프린팅을 활용한 멘딩 케이스 디자인을 시작한 상태였기에 이를 계속해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말 전에 끝내고 싶었던 이 작업은 DLL 테크니션의 지원 부족으로 인해 중단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감정을 낭비하지 않고 나의 원래의 프로젝트의 핵심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했다. 이 경험을 통해 예기치 않은 상황을 고려하여 유연성을 가지고 계획을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때로는 더 큰 목표를 위해 특정 측면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의 완벽한 결과를 얻으려는 경향의 장단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완벽주의 장점은 모든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 덕분에 한번 읽은 연구자료나 책은 각 목록, 서론부터 결론까지 읽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을 즐길 때도 있지만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덕분에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해 더 폭넓고 다양한 측면에서 깊게 이해를 할 수 있었고, 나의 연구와 프로젝트 개발에 대한 접근 방식을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지속가능한 패션 디자이너 자격증을 위한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 산업적인 모든 방면을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과정은 탐색해야 했기에 겨울 방학 (2023년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폴란드 친구 집에서부터 2024년 파리에서 새해를 포함한 기간까지)에도 마지막 크릿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그 완벽주의의 단점은 마지막 크릿에서 빛을 발했다. 무리한 탓인지 마지막 크릿 발표 며칠 전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열병과 함께 목소리가 안 나오는 상태가 되었고, 그로 인해 마지막 발표를 위해 AI (인공 지능) 텍스트 음성을 사용한 비디오를 제작했다. 거기에 10분의 시간제한이 있는 크릿 발표는 나의 작업의 방대한 양을 줄이는데 어마한 시간을 사용했다. 그리고 마지막 크릿에서 튜터들은 웹사이트 설명부터 계정 만들기, 로그인, 고객서비스 페이지 등등을 포함한 웹사이트와 AI 음성 때문에 너무 상업적인 색이 강하여, 개인 메니페스토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비평했다. 이로 인해 다시 한번 나의 완벽 주의와 워커홀릭에 대한 자가 반성의 시간은 덤이었다.
또한 세 번째 크릿에서 만난 동기들의 나의 메니페스토들은 시각적 또는 촉각적으로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이 많았다. 나의 연구 중심적인 초점과 달리 동기들의 창의적이고 물리적인 결과물과 비교할 때 나의 연구 과정에 대한 조금의 후회의 감정이 남았다. 그들의 작업에서 그들이 집중력과 진지함을 유지하면서 또한 그 과정을 즐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었지만 나의 연구자료는 꽤나 차갑고 튜터들의 피드백처럼 상업적이었기에 나는 사실 그 과정을 즐기기보다는 무언의 압박감을 가득 안은채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후 튜터와 동기들과의 함께한 토론은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개인적인 성장을 우선시하는, 더 여유로운 접근 방식을 채택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세 번째 크릿 후에도 독감은 계속되었다. 영국에서는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지 않고 Paracetamol (진통제)를 먹으라고 하는데 하루에 8알까지 먹어도 약이 듣지 않는 상태가 되어, 결국 응급실에 갔어야 했다. 열이 40도 가까이 되었기에 응급실에서 종합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바이러스 감염이 있지만 다행히도 나의 백혈구가 열심히 일하고 있기에 휴식을 취하면 금방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진통제의 효과가 없다고 과다복용하지 말고 Paracetamol과 이부프로펜 (타이레놀) 각 한알씩 함께 복용하기를 권장받았다. (그리고 정말 효과가 있었다!) 영국살이 3년 차에 첫 응급실 방문과 열과 두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며칠을 보내며, 다시 한번 건강이 최고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무언가를 열심히 해내려고 하더라도 웰빙 (Well-being) 하지 못한다면 끝까지 해낼 수가 없기에, 균형을 찾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2주간의 지독한 독감 앓이를 끝으로 나의 몸은 점차 회복되었고, 건강을 위해 스스로 과부하 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노력했다. 이를 위해 아침 운동과 명상을 다시 시작하고, 일하는 시간을 제한하기 위한 타이머를 설정하여 잠도 12시 이전에 자려고 노력했다. 이 와중에 잊고 있었던 UAL에서 제공하는 디지털 스크리닝을 통해 내가 ADHD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완벽주의 + OCD + 극심한 계획형인 내가 ADHD라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이러한 독특한 특성을 이해하면서 불필요한 완벽주의와 타협하는 것을 선택했고, 최종 제출 전 마지막 과정을 즐기면서 더욱 만족스러운 여정과 결과를 얻게 되었다. (물론 점수는 아쉬웠지만!)
결론적으로, Fashion Futures 석사과정의 첫 번째 유닛은 나의 학문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내면성찰을 통해 향후 여정에서 마주하게 될 도전들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 주었다. 나의 메니페스토를 제작하는 과정은 도전과 깨달음 그리고 조율을 통해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나의 시각과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재 형성하고 변화시켰다. 이는 패션계를 Dystopia (디스토피아;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극단화되어 초래할지도 모르는 암울한 미래상.) 로만 바라보던 나의 시각을 시스템을 재구축함과 더불어 생태학적 지식 (Ecoliteracy)을 강조하여 변화된 것을 포함한다. 하지만 패션 디자이너의 역할을 ’ 재가치화‘하는 데 대한 헌신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