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네 이름을 데려오던 날〉
사랑하는 당신에게,
오늘은 이상한 하루였어요.
길을 걷는데, 바람이 불어오더니 그 결이 너무 부드러워서—
문득, 당신의 손길이 닿는 듯했어요.
나는 멈춰 서서 잠시 숨을 고르고, 숨 끝에 침잠한 당신의 향을 찾아 헤맸습니다.
우스울 만큼 그리운 하루였어요.
바람에 실린 먼지 하나,
길가에 핀 국화의 고요한 향기,
전봇대에 매달린 느슨한 전선이 흔들리며 낸 떨림까지—
모두 당신을 이야기하는 듯해서,
마치 세상이 작은 엽서들을 계속 내 손바닥에 올려놓는 느낌이었어요.
당신은 오늘도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고 갔군요.
당신과 떠났던 첫 여행지가 생각나요.
해안도로를 달리던 오래된 버스,
삐걱대는 창문,
우리를 따라오던 파도 소리.
그 버스 좌석에서 당신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죠.
“저 바다는, 네가 웃을 때처럼 끝이 없어.”
나는 그 순간,
당신이 말하는 ‘끝이 없음’이
바다가 아니라—
내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당신에게 끝없이 기울어지고 있어요.
마치 숨이 내게 일을 하듯 자연스러워서,
의식하지 않으면 잊어버릴 만큼 당연하고,
당연해서 더 소중한 사랑.
여행지의 밤 공기를 함께 마시던 기억도 또렷합니다.
달빛이 외등 위에 얹혀 흔들리던 작은 골목,
바람 소리에 섞여 들리던 먼 파도음,
그리고 그 사이에 작고 고요하게 머물던 당신의 체온.
당신은 잠들기 전에 내게 말했어요.
“나는 네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 말을 듣던 순간,
나는 차마 말하지 못한 고백을 속으로 품었어요.
“나는… 호흡하는 것조차 너 때문이야.”
그 말이 너무 무거울까 두려워
입 밖에 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어요.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이 내 진심의 가장 정확한 형태가 되었거든요.
사랑하는 당신,
당신과 나의 여행은 아마 평생 계속될 거예요.
우리가 잡은 손을 놓지 않는 한—
우리 둘의 길은 계속 이어질 테니까요.
어쩌면 사랑이라는 건
서로의 심장을 잠시 빌려
그 호흡을 함께 쓰는 것인지도 몰라요.
나는 당신의 호흡을 들으며 살아가고,
당신은 내 심장의 박동을 듣고 안심하는 것.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숨이 되어
하루를 건너고,
밤을 품고,
새벽을 맞겠죠.
그렇게 또 한 계절이 가고 와도
나는 여전히—
당신 때문에 숨 쉬고,
당신 때문에 살아 있고,
당신 때문에 나이 들겠지요.
그러니 부디 그 자리에 있어 주세요.
내가 숨을 잃지 않도록,
내가 세상 앞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지금 당신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바람이 불 때, 그 결 끝에서
내 이름이 가만히 스치진 않았나요?
오늘 밤, 당신이 잠들기 전
당신의 호흡이 조금 더 따뜻해지길,
그 온기가 내 이름을 품고 있길 바라요.
늘,
그리고 언제나,
당신에게 기울어 사는 사람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