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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4)

기차 창가에 앉아 본 당신의 옆모습에 부치는 답장

by seungbum lee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의 편지를 읽고 나서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날, 당신이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나는 정말 몰랐거든요.

아니, 어쩌면 알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시선이라는 건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당신의 시선이 내 옆모습에 머물 때

나는 창밖을 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당신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어요.

당신은 내가 어디론가 멀리 가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고 했죠.

맞아요. 나는 그때 멀리 가고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요.

나는 미래로 가고 있었어요.




당신과 함께할 미래로.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나는 상상하고 있었어요.

앞으로 우리가 함께 볼 풍경들,

함께 탈 기차들,

함께 맞이할 아침들을.

그리고 동시에 과거로도 가고 있었어요.

당신을 만나기 전의 나,

혼자 기차를 타고 창밖을 보며

무언가를 그리워하던 날들로.

그 날들과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당신은 내 마음이 멀리 흐르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실 당신은 이미 그 흐름의 중심에 있었어요.

내 마음이 흐르는 모든 길의

시작점이자 도착점이 당신이었으니까요.

"사람의 얼굴은 정면보다 옆모습에 진심이 담긴다"

당신의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정면으로 마주 보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만들죠.

보여주고 싶은 표정을,

감추고 싶은 마음을 조절하면서.

하지만 옆모습은

그런 조절이 어려운 순간이에요.

자신도 모르게 진짜 표정이 나오는 순간.

그래서 당신이 본 내 옆모습은

아마 가장 솔직한 나였을 거예요.

기차가 역에 멈췄을 때

내가 고개를 돌려 당신에게 웃었던 순간,

당신은 기억하죠?

나는 그때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돌아본 거예요.

당신의 시선을 확인하고 싶어서,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알고 싶어서.

그리고 당신의 눈을 마주쳤을 때

나는 확신했어요.

'아, 이 사람도 나를 보고 있었구나'라고.

당신이 물었던 것처럼

"너, 나랑 같은 곳 보고 있지?"

네, 맞아요.

우리는 같은 곳을 보고 있었어요.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지만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건

서로였으니까요.

당신은 나라는 풍경을 보고 있었고,

나는 당신과 함께할 미래라는 풍경을 보고 있었어요.

창밖의 풍경은 빠르게 지나갔지만,

우리 사이의 풍경은

천천히,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죠.

"당신의 옆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온도를 가졌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궁금해졌어요.

내 옆모습이 어떤 온도였는지.

당신은 그 온도를

"지켜보고 싶어지는 온도,

다가가고 싶지만 조심하게 만드는 온도"

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당신이 다가와주기를 바라고 있었어요.

조심스러워도 괜찮으니,

천천히라도 좋으니,

내게 더 가까이 와주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당신은 그렇게 해줬죠.

말로 하지 않아도,

당신의 시선이,

당신의 존재가,

당신의 숨결이

조금씩 내게 가까워지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랑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당신도 궁금해했다고 했죠.

나도 같은 질문을 했었어요.

그리고 이제 알 것 같아요.

사랑은 한 순간에 시작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어느새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것이라는 걸.

기차 안에서의 그 순간도

그런 작은 순간 중 하나였을 거예요.

당신이 내 옆모습을 바라보던 그 시간,

나는 몰랐지만

당신의 마음속에서는

사랑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였어요.

당신의 존재를 피부로 느끼며

창밖 너머의 미래를 상상하던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도

사랑은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었어요.

"기차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당신의 옆모습 앞에 천천히 멈춰 서 있다"

당신의 이 고백이

내 가슴을 울렸어요.

나도 같은 마음이니까요.

그날의 기차는 이미 오래전에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우리는 여전히 함께 움직이고 있고,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고,

여전히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어요.

다만 이제는

당신도 내 옆모습을 볼 수 있고,

나도 당신의 옆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됐을 뿐이에요.

언젠가 다시 기차를 타게 되면,

이번에는 내가 당신의 옆모습을 바라볼게요.

그리고 당신이 어떤 풍경을 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용히 귀 기울이며 함께 있어줄게요.

당신이 내게 해준 것처럼.

그날의 옆모습을 기억해준 당신에게,

지금도 당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 나로부터.

P.S.

다음에 기차를 탈 때는,

창밖만 보지 말고

가끔 나를 봐주면 좋겠어요.

내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도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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