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창가에 앉아 본 당신의 옆모습
기차 창가에 앉아 본 당신의 옆모습
사랑하는 당신에게.
우리의 첫 여행에서 바닷가를 걸었던 기억
다음으로
가장 또렷하게 떠오르는 순간은
역시 기차 안에서의 당신의 옆모습입니다.
그날, 우리는 창가 자리에 나란히 앉아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죠.
기차는 잔잔한 흔들림으로 몸을 맡기기에 충분했고,
우리는 말이 없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당신의 옆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은 아마 눈치채지 못했겠죠.
사람의 얼굴은
정면보다 옆모습에 진심이 담기는 순간이 많은 것 같아요.
말을 하지 않을 때,
생각이 길어질 때,
그리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감정이 스칠 때.
그날의 당신은
바람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어디론가 멀리 가고 싶어 하는 눈빛,
또는 이미 마음으로는 어딘가에 닿아 있는 눈빛.
나는 그 표정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이 사람의 마음은 참 멀리 흐르는구나.”
그 순간 당신의 마음이
어떤 곳으로 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흐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요.
오히려 조용히 옆에 머물며
당신의 마음이 지나가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싶었습니다.
기차는 작은 소리로 흔들렸고,
당신의 머리칼이 살짝 떨렸고,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당신의 볼 위에서 멈추어 있었습니다.
그 부드러운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나는 조심스레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당신의 옆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온도를 가졌어요.
지켜보고 싶어지는 온도,
다가가고 싶지만 조심하게 만드는 온도.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참 고요하게 만들어주는 온도였습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당신의 옆모습이
내 마음을 이렇게 오래 잡아둘 줄은 몰랐다고.
사랑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오랫동안 궁금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날의 기차 안에서,
나는 이미 어느 정도 길을 걸어 내려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당신이라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각자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지만
우리의 마음은 같은 속도로 흔들리고 있었어요.
기차가 어느 역에 도착해
잠시 멈추었을 때
당신이 고개를 돌려 내게 웃었죠.
그 웃음이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
햇빛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 웃음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어요.
“너, 나랑 같은 곳 보고 있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주 작은 끄덕임으로
당신에게 대답했어요.
그날 이후로
나는 누군가의 옆모습이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기차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당신의 옆모습 앞에
천천히 멈춰 서 있다고.
언제나,
당신이라는 풍경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싶은
— 나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