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헐떡거리던 첫 여행에 부치는 답장
바닷가에서 헐떡거리던 첫 여행에 부치는 답장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의 편지를 읽는 순간
나는 그날의 바닷바람을 다시 느꼈어요.
차갑고 거세게 불던 그 바람,
그리고 그 바람 속에서
우리 둘만 이상하게 따뜻했던 그 순간들.
당신이 기억하는 그 모든 것을
나도 똑같이 기억하고 있어요.
아니, 어쩌면 조금 다르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같은 순간을 겪었지만,
각자의 심장은 다른 속도로 뛰고 있었을 테니까요.
내 머리카락이 당신 얼굴을 스쳤던 그 순간,
나는 정말 바람 탓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거짓말이었어요.
바람이 불기 전부터
나는 이미 당신에게 기울고 있었으니까요.
다만 바람이 핑계를 만들어준 것뿐.
당신이 웃었을 때
나는 안도했어요.
'아, 들키지 않았구나'라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 같아요.
우리는 그때 서로의 마음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나… 너랑 같이 걷는 게 너무 좋아.
근데 왜 이렇게 설레어서 헐떡거리냐."
내가 했던 이 말을 당신이 기억하고 있다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요.
그 말은 정말 진심이었어요.
당신과 걷는 것만으로도
내 호흡은 평소와 달라졌고,
심장은 제멋대로 뛰었고,
발걸음은 자꾸만 당신 쪽으로 기울었어요.
당신은 그날 확신했다고 했죠.
"여행이란 그 사람의 숨을 가장 가까이서 듣는 일"이라고.
나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당신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당신이 언제 긴장하고,
언제 편안해지고,
언제 설레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당신 말대로,
여행은 서로를 배우는 과정이었어요.
나는 그 여행에서
당신이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얼마나 평화로운 얼굴을 하는지,
길을 잃어도 오히려 그 과정을 즐기는
여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 옆에 있을 때
당신의 어깨가 조금 더 편하게 내려온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당신도 나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고 했죠?
내가 조금 빨리 걷는다는 것,
파도 소리를 좋아한다는 것.
웃긴 건, 나는 당신과 걸으면서
내가 평소보다 천천히 걷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당신 옆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서
무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췄던 거죠.
"서툼과 설렘이 서로 얽혀 있던 시기"
당신이 그렇게 표현했지만,
나는 그 서툼이 좋았어요.
완벽하지 않아서 더 진실했고,
익숙하지 않아서 더 조심스러웠고,
그 모든 게 사랑의 시작답게 느껴졌어요.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됐지만,
가끔은 그날의 서툼이 그리워요.
처음으로 손을 잡을까 말까 망설이던 순간,
어깨가 스칠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던 느낌,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아직 다 꺼내 보이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전하던 그 시간들.
당신이 그날 바닷길 끝에서 중얼거렸던 질문,
"이 사람이랑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걷게 될까."
나도 같은 질문을 했었어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답했죠.
'가능한 한 모든 길을, 평생을 걸으면 좋겠다'고.
당신은 그 답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어요.
우리는 함께 걸을 거예요.
바닷길도, 산길도, 도시의 거리도,
그리고 우리만 아는 작은 골목길들도.
계절이 바뀌고,
우리가 나이 들고,
발걸음이 느려져도,
우리는 계속 함께 걸을 거예요.
당신 옆에서 헐떡거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 우리가 함께 걸었던 바닷길은
우리 사랑의 시작이었어요.
서툴렀지만 진실했고,
불안했지만 아름다웠고,
완벽하지 않았지만 완전했던 시작.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걷고 있어요.
그날과 같은 마음으로,
조금 더 깊어진 사랑으로,
변하지 않은 설렘으로.
당신이 말한 대로,
당신과 함께 걷는 길이라면
내 호흡도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더 깊어지고,
더 자연스러워지고,
더 당신과 맞춰질 거예요.
그날의 바람보다 더 깊이
내 마음을 흔들었던 당신,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을 흔들고 있는 당신에게,
이 편지를 보내요.
언제나,
당신과 함께 바람을 마주하고 싶은,
당신 옆에서 헐떡거리며 걷고 싶은,
그리고 평생 당신과 여행하고 싶은
— 나로부터.
P.S.
다음에 바닷가에 가면,
이번에는 당신의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스치게 해줄래요?
바람 핑계 없이,
그냥 당신이 내게 다가와도 좋으니까요